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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물] 사랑의 증거자 필레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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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3 조회수3,755 추천수0

[성서의 인물] 사랑의 증거자 필레몬

 

 

필레몬은 사도 바오로에게서 세례를 받고 신도가 된 사람이었다. 필레몬은 골로사이에 살고 있던 큰 부자였다. 사도 바오로와는 사목자와 신자의 관계뿐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 그런데 어느 날 하인 하나가 필레몬에게 급하게 전갈을 알렸다. 필레몬의 집에서 도망쳤던 오네시모라는 종이 한 통의 편지를 들고 찾아왔던 것이다.

 

"주인님, 오네시모가 찾아와서 주인님을 뵙고 싶어합니다."

 

"누구라고? 오네시모라고 했나, 자네?"

 

오네시모는 벌써 오래전에 자신의 집에서 몸 붙여 살던 몸종이었다. 그는 몹시 게으른 종이었는데 어느 날 주인의 돈을 도둑질을 하고 도망친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노예제도가 존재했기 때문에 오네시모처럼 주인의 집에서 도둑질을 하고 도망친 경우에 잡히면 엄벌에 처해지는 경우가 보통이었다. 순간 필레몬은 오네시모에 대한 생각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속으로 이놈을 당장 절단 내리라고 마음 먹었다.

 

"어서 오네시모를 데리고 들어오너라."

 

잠시 뒤에 오네시모가 필레몬 앞에 나와 머리를 조아리고 엎드렸다. 이상하게 오네시모는 비굴하거나 유치한 모습이 아니었다. 어찌 보면 당당한 품위를 안으로 감추고 겸손한 모습을 나타내는 느낌을 줄 정도였다.

 

"주인님, 그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주인님의 종, 오네시모가 인사 드립니다."

 

필레몬은 아무 말 없이 굳은 얼굴로 오네시모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오네시모는 가만히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편지 한 통을 필레몬에게 건네주었다. 그 편지는 사도 바오로가 필레몬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한편으로 놀랍고 반가워서 필레몬은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로 물었다.

 

"네가 어찌 바오로 선생을 아느냐?"

 

"소인이 바오로 선생님을 로마의 감옥에서 뵈었습니다. 그 분에게 하느님의 복음을 배웠고 세례도 받았습니다. 그간의 사정을 다 말씀을 드렸더니 이 편지를 저에게 쥐어주시며 주인님을 꼭 찾아보라고 신신당부하셨습니다."

 

필레몬은 반가운 마음으로 오네시모가 전해준 편지를 받아 들고 읽어 내려갔다. 그는 마치 오랜 벗을 만난 듯 얼굴은 불그스레 흥분되어 있었다.

 

"…그리스도 예수를 위해서 갇혀있는 나 바오로와 교우 디모테오가 친애하는 우리 동료 필레몬과 그의 집에 모이는 교우들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필레몬, 나는 항상 당신을 생각하면서 언제나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다정한 인사와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 후 오네시모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네시모를 그대에게 보냅니다. 그가 전에는 쓸모없는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그대에게나 나에게나 쓸모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그를 그대에게 돌려보냅니다. 그것은 마치 심장을 떼어보내는 것 같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감옥에서 오네시모를 만나서 가르치고 제자로 삼았던 것이다. 그런데 오네시모가 노예의 신분으로 도망쳤다는 고백을 듣고 필레몬에게 보냈던 것이다. 필레몬은 사도 바오로의 편지를 읽자마자 바로 오네시모를 용서했다. 필레몬은 무조건적으로 사도 바오로의 말을 신뢰했던 것이다. 필레몬은 단순히 사도 바오로의 부탁으로 겉으로 용서한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오네시모를 용서했다. 그처럼 필레몬은 자신의 삶 속에서 복음의 말씀을 살았던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을 배반하고 도망쳤지만 다시 용서를 청하러 돌아온 오네시모를 용서했을 뿐 아니라 한 사람의 인격체로 받아들였다. 필레몬은 애정이 많고 다정 다감한 사랑의 사람이었다. 필레몬은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이웃을 용서하라는 주님의 말씀(마태 18,22)을 그대로 실천했다.

 

진정한 용서는 하느님의 자비의 가장 큰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자신에게 해를 끼치고 배반한 이를 용서한다는 것은 인간적인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 다른 이에 대한 진정한 용서는 하느님의 도우심과 성령의 은총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복음을 받아들인 필레몬은 자신도 죄인임을 절감했을 것이다. 어쩌면 인간이 다른 인간을 용서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인지 모른다. 용서는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필레몬처럼 용서하고 그리고 용서하려고 노력하는 한 하느님을 가장 잘 닮아 가는 것이리라.

 

[평화신문, 2002년 3월 3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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