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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물] 예수님 대신 석방된 사형수 바라파(바라빠) (마르 15,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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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3 조회수4,276 추천수0

[성서의 인물] 예수님 대신 석방된 사형수 바라파(마르 15,6-14)

 

 

음습한 감옥에 누워 있는 바라파는 막 잠에서 깨어 있었다. 감옥 창문 사이로 가늘게 한자락 들어온 햇볕이 따사롭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몸은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지만 이상하게도 머릿속은 맑았다. 바라파는 잠시 일어나 앉아서 얼마 전 자신이 동료들과 함께 폭동을 일으켰던 생각에 잠겼다. 그는 폭력을 써서라도 로마의 압제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바라파 자신은 구사일생으로 살았지만 체포돼 재판을 받고 곧 죽을 목숨이란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늘 씩씩한 모습을 남들에게 보였지만 어두운 감옥에 갇혀 사형 당할 것을 생각하니 두려움으로 갑자기 오싹한 기운을 느꼈다. 한편으로는 한없이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때 갑자기 철창문이 꽝하고 열리더니 간수의 발소리가 귓전을 어지럽혔다.

 

"죄수 바라파!"

 

간수는 감옥이 울리는 큰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어서 밖으로 나와라!"

 

"왜 그러십니까?"

 

"죄수 주제에 무슨 잔말이 많아. 닥치고 어서 나와."

 

바라파는 순간 자신의 운명이 다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꾸물거리는 바라파 머리 위로 사정없이 채찍이 날아들었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감옥 문을 나섰다. 지하 감옥의 긴 터널을 벗어나 계단을 올라 밖으로 나왔다. 갑자기 햇빛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려 눈이 부셨다. 창을 든 로마 군인들이 아무 말 없이 자신을 거칠게 밖으로 내몰았다. 그리고 군인 중에 한 명이 자신을 향해 소리쳤다.

 

"너는 석방되었다. 어서 나가라."

 

바라파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석방이라니 무슨 소리인가. 드디어 감옥 문을 나서니 바라파의 동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게 서로 끌어안고 입맞춤을 했다. 동료들이 바라파가 석방된 까닭을 설명해주었다.

 

"바라파, 자넨 예수라는 사람 대신 석방되었네."

 

"예수라니? 그 예언자라는 사람 말인가?"

 

바라파는 이미 예수에 관한 소문을 간간이 들어 알고 있었다. 당시에는 명절이 되면 죄수 하나를 놓아주는 관례가 있었다. 유다인들이 고발한 예수를 빌라도 총독이 조사해 보았는데 죄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총독은 예수를 놓아주려고 하는데 유다인 지도자들과 군중들이 거칠게 반대했다는 것이다. 바라파를 석방하라는 유다인들의 성화에 못이겨 총독도 바라파를 석방했다는 것이다. 감옥 안에서 형 집행을 기다리며 가슴 조이던 바라파. 그가 돌연 석방된 것은 분명히 기적이었다.

 

바라파는 갑자기 예수라는 사람이 궁금해졌다. 그는 얼마 후 골고타 언덕으로 오르는 예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예수는 꼿꼿한 자세로 시선을 앞에 고정한 채 십자가를 지고 서 있었다. 매질을 당했는지 몸에는 상처를 입고 있었고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고 있었다. 예수의 얼굴은 피범벅이 되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아 보였다. 고통스러운 얼굴이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위엄이 있어 보였다.

 

바라파는 예수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백성들 중에는 조롱을 하고 욕설을 퍼붓는 사람도 있었다. 간신히 다른 이의 도움을 얻어 예수는 골고타 언덕에 도착했다. 사형집행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드디어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혀 다른 죄수 두 사람과 함께 매달렸다. 바라파는 십자가에 죽어 가는 예수가 자신의 자리에 대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멀찍이 바라보니 십자가에 ‘유대인의 왕’이라는 글씨가 보였다.

 

바라파는 예수가 숨을 거두었을 때 "저 사람은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바라파는 예수가 자신의 인생에 깊이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결국 예수의 죽음을 통해 자신은 자유롭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수 대신 석방된 죄인 이름을 딴 '미션 바라파'("3일만에 읽는 성경이야기", 나카무라 요시코 저, 서울문화사, 154쪽 참조)라는 선교 단체가 일본에 있다고 한다. 구성원들은 본래 폭력배였으나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어 목사, 전도사 또는 사업가로 변신, 일본 전국을 비롯하여 해외에서까지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한결같이 "자신을 구해 준 것은 기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고 고백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 모두는 그분 때문에 목숨을 건진 바라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시간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평화신문, 2002년 5월 5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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