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동물] 성서 동물의 세계: 사다새(펠리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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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4-11-03 | 조회수4,468 | 추천수0 | |
파일첨부 성서동물_사다새.hwp [357] | ||||
성서 동물의 세계 : 사다새(Pelicanus)
물새의 하나로 날개의 길이가 65-80센티가량 되며, 특히 부리가 길고 앞끝이 구부러져 있다. 레위기 11,18과 신명기 14,17의 `사다새‘가 이 Pelicanus를 가리킨다.
팔레스타인에는 두 종류의 Pelicanus가 있는데 하나는 Pelicanus onocrotalus이고, 다른 하나는 P. crispus이다. 이것은 일종의 사다새로 몸집이 훨씬 크다.
이사야 34,11에 보면 에돔의 멸망을 예고하고 “사다새나 고슴도치가 드나들고 부엉이나 까마귀가 깃들이는 곳이 되리라.”는 말씀이 있다.
스바니야 2,13-14에 “야훼께서 북녘으로 손을 뻗으시어 아시리아를 멸하시리라. 니느웨를 쑥밭으로 만드시리니, 사막처럼 메마른 곳이 되리라. 골짜기에 사는 갖가지 짐승떼가 그 복판에서 쉬고 남은 돌기둥 위에서는 갈가마귀나 올빼미가 밤을 지새우며”라는 말씀에서 `갈가마귀와 올빼미“는 영역에서는 사다새 (pelicanus)와 왜가리(heron)으로 번역했다. 우리의 공동번역은 황폐한 모습을 떠올리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한 갈가마귀와 올빼미로 그 을씨년스러운 장면을 연출한 것으로 보인다. 원어에 가까운 번역은 영역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니느웨는 에돔과 달라서 티그리스 강변과 그 늪지대에 사다새가 살기에 적합하다. 시편 102,5-6에 “장탄식에 지쳐 버려 뼈와 살이 맞닿았습니다. 나는 마치 사막 속의 사다새 같이 마치도 폐허 속의 올빼미처럼 지붕위의 외로운 새와도 같이 잠 못 이루옵니다.”는 말씀도 맥락은 같다. 사막은 사다새가 즐겨 사는 곳이 아니다. 사다새류는 먹이를 먹으면 사람들이 살지 않는 곳에 날아가 어깨 쭉지에 머리를 파묻고 생각에 잠긴 사람처럼 잠자코 있다. 그런 이미지가 히브리 시인의 머리에 떠올랐을 것이다.
사다새는 물고기를 잡아서 아래 주둥이에 달린 먹이 주머니에 삼켜 무거워진 몸을 강한 날개를 퍼덕이며 멀리 날아가, 자기 둥우리에 돌아가면 자기도 꺼내 먹고 새끼도 먹게 한다.
둥우리는 바위가 많은 섬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갈대와 풀잎사귀를 겹겹이 쌓은 둥우리 속에 알을 두어 개 낳는다. 새끼에게 먹이를 줄 때에는 먹이 주머니를 새끼의 가슴에 대고, 그 속의 물고기를 밀어낸다. 붉은 부리가 흰 가슴에 닿으면 피가 흘러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사다새가 부리로 자기 가슴을 찢어 흘러 내리는 피로 새끼를 키운다는 전설은 여기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하여 새끼를 키우는 사다새가 하느님의 사랑을 표시한다는 종교화(宗敎畵)가 생기게 되었다.
이것이 사다새인지 독수리인지에 대해서는 이론이 있을 것이다. 자기의 피로 새끼를 키우는 새의 이야기는 본래 에집트에 있었는데, 그 새는 독수리나 솔개류였다. 그 이야기가 그리스에 전해지고 로마에 전해졌다. 그리하여 어느새 그 새가 사다새로 변하고, 죽은 새끼도 3일 이내면 어미새가 자기 가슴을 찢어, 피를 새끼의 부리에 쏟아 부으면 되살아난다는 이야기로 바뀌었다. 그리하여 인류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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