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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동물] 성서 동물의 세계: 비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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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5 조회수4,100 추천수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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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동물의 세계 : 비둘기(Coloumba)

 

 

팔레스타인만큼 야생 비둘기의 생육에 적합한 곳은 적을 것이다. 그곳에는 비둘기가 좋아하는 클로버나 그 밖에 콩과(荳科)에 속하는 식물이 많을 뿐만 아니라 건조한 깊은 골짜기의 석회암 구멍이 솔개나 매의 습격을 피하기에 알맞은 둥우리를 제공해 준다. 겐네사렛의 평야로 이어지는 골짜기는 `비둘기의 골짜기‘라고 부를 정도로 많은 비둘기가 서식하고 있다. 이런 산악지대나 바닷가의 바위 사이에 서식하는 비둘기는 집비둘기(Coloumba domestica)의 조상이라고 하는 양비둘기(C. livia)이다. 이 양비둘기는 인가(人家)에 멀리 떨어진 동굴이나 낭떠러지에 둥지를 짓고 나무에는 짓지 않는다.

 

“바위틈에 숨은 나의 비둘기여! 벼랑에 몸을 숨긴 비둘기여, 모습 좀 보여 줘요.”(아가 2, 14). 양비둘기의 생태가 잘 나타나 있는 구절이다.

 

이 양비둘기보다 몸집이 조금 작은 에집트 양비둘기(C. schimperi)는 남부의 온대지방이나 요르단의 골짜기 등지에 서식하고 있다. 이 비둘기도 주로 바위에 둥지를 짓는다.

 

“모압 백성들아,벼랑에 둥지 트는 산비둘기처럼 성을 버리고 바위 틈에 가서 살아라.”(예레 48, 28)라는 비둘기가 바로 이 C. schimperi라고 생각된다. 이 비둘기는 에집트에서 아비시니아에 걸쳐 서식하고 있다. 에제키엘이 이스라엘의 몰락을 “산으로 도망친 자도 모두 제 죄벌을 받아 비둘기처럼 신음하며 죽을 것이다.”(에제 7, 16)라고 양비둘기의 습성에 비유하여 예언하고 있다.

 

여름에 팔레스타인에 날아오는 C. oenas도 바위 짬에 둥우리를 짓는데 이것은 수가 많지 않다. 이 비둘기는 날개가 금속처럼 반짝이는 것이 특색이다. “비둘기의 날개는 은을 입었고 그 깃은 금빛으로 버쩍이었다. 전능하신 이가 그 왕들을 흩으실 때, 살몬산을 덮은 눈과 같이 번쩍이었다.”(시편 68, 13). 다윗은 이 비둘기가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것을 상기하고 이렇게 읊었을지도 모른다.

 

비둘기는 날개의 힘이 강하다. 이 양비둘기류는 특히 그렇다. “비둘기처럼 날개라도 있다면 안식처를 찾아 날아 가련만”(시편 55, 6).

 

겨울에 많이 떼를 짓는 것은 영어로 Ring dove 또는 Wood pigeon이라는 Columba palumbus로 길르앗 숲이나 갈멜 근처의 수림에 운집하여 나무에 둥지를 짓는다.  산비둘기류도 서너가지 서식하는데 Turtur communis 또는 T. auritus가 가장 많다. 이 산비둘기는 봄이면 어김없이 돌아온다. “w자, 겨울은 지나가고 장마는 활짝 걷혔소. 산과 들엔 꽃이 피고 나무는 접붙이는 때 비둘기 꾸르륵 우는 우리의 세상이 되었소.”(아가 2, 11-12). 혹은 “하늘을 나는 고니도 철을 알고 산비둘기나 제비나 두루미도 철따라 돌아 오는데”(예레 8, 7)는 구절이 이것을 의미한다. 3월 말에는 보이지 않던 이 비둘기가 4월 중순이 되면 들과 산을 온통 뒤덮는다.

 

그리고 다른 맹금(猛禽)은 주로 아침에 우는데 이 산비둘기는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끊임없이 구슬픈 소리로 운다. “산비둘기 같은 당신의 이 백성을 저 들짐승에게 넘겨 주지 마소서”(시편 74, 19), 시인은 산비둘기의 울음소리가 무척 애절하게 들렸던 것 같다.

 

염주비둘기(Turtur risorius)는 1년 줄곧 사해연안의 나무나 물가에 8-9마리씩 떼를 지어 서식한다. 여름이면 널리 요르단 골짜기의 길르앗이나 타볼산에도 날아간다. 구구 우는 소리가 구슬프다. 양비둘기나 산비둘기류가 모두 이런 구슬픈 목소리로 울기 때문에 성서 기자들은 “비둘기 같이 슬피운다”(이사 38, 14; 59, 11)고 쓰고 있다.

 

종려비둘기라고도 부를 수 있는 T. senegalensis는 염주비둘기보다 널리 분포되어 서식한다. 그리고 예리고나 싯딤, 사해 근처를 제외하면 수는 그다지 많지 않다. 이 비둘기는 예루살렘의 성전 구내나 뜰에서 거의 사육하다시피하여 상당히 많이 서식하고 있었다. 사람들과도 친숙하여 조금도 두려워 하지 않았다. 본래 아라비아나 북아프리카의 종려나무 숲에 떼를 지어 모여 살던 비둘기이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방랑할 때에는 제물로 바쳤을 것이다. 이 비둘기는 일정한 지역에 상주하므로 철새라고 볼 수 없다.

 

이스라엘인들이 언제부터 비둘기를 기르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다. 사람이 키우는 것은 양비둘기의 변종인 집비둘기이다. 렙시우스(Lepsius) 교수는 에집트에서는 제5왕조(第五王朝) 시대부터 비둘기를 길렀다고 말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기원전 3천년경부터 비둘기를 길렀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보다 조금 후대의 일이지만 고양이를 기르기 시작한 것도 에집트인이라 한다. 비둘기도 일찍부터 그들이 키웠을 것이다. 구약성서에는 가금에 대해 상세히 기록하고 있지 않다. 이사야 60,8에서 “누가 저렇게 구름처럼 두둥실 날아 드느냐? 둥지로 돌아 오는 비둘기처럼 날아 드느냐?”라는 구절에서 이 비둘기는 집비둘기를 가리키는 것 같다. 그러나 비둘기는 이스라엘인이 양이나 송아지와 함께 먼 옛날부터 제물로 바쳤으므로 비교적 일찍부터 길렀을 것이다.

 

지금도 시리아의 마을에서는 집집마다 비둘기를 기르고 있다. 집비둘기는 바빌론에서 시리아에 전해졌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리스인은 시리아에서 비둘기를 기르는 방법을 배었다고 한다. 기원전 5세기 경에는 그리스에서 비둘기를 기르고 있었다. 이 비둘기의 사육을 그리스는 로마에 전하고 로마에서 전 유럽으로 전해졌다.

 

성서에서 비둘기는 노아의 방주에 맨 처음 나타난다. 방주에서 날려 보낸 비둘기가 처음에는 곧 돌아오고 다음에는 올리브나무의 잎사귀를 물고 돌아왔으며 세 번째에는 돌아오지 않았다(창세8,8-12).

 

“야훼께서 말씀하셨다. ....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한 마리씩 나에게 바쳐라.”(창세15,9).

 

산비둘기와 집비둘기는 번제에도(레위5,7), 부정을 씻는데도(레위5,7), 더러운 피를 맑게하는 데에도(레위15,14), 여자가 자식을 낳은 후에도(레위12,18) 하느님께 제물로도 바쳤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이 수요에 응하기 위해 성전 구내에 비둘기를 파는 노점까지 생겼다(마태21,12). 예수께서 태어났을 때에도 부모는 이 노점에서 비둘기를 사서 하느님께 바쳤을지도 모르지만 후년에 예수께서는 성전 구내에서 이런 비둘기 장수를 쫓아내었다(요한2,16).

 

비둘기의 온유한 성격과 아름다움이 아가서에는 1, 15. 4, 1. 5, 12. 6, 8-9 등에 여러 차례 언급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비둘기는 지조가 있는 깨끗한 새로 알려져 있다.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마태10,16)는 말씀은 잘 알려져 있다.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오심을 보신”(마르1,10) 예수님의 출발은 특별하다. 다른 사람들의 눈이 아니라 예수님의 눈에 그렇게 보인 것이 흥미롭다. 비둘기는 초대 크리스천을 비롯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순결과 희망을 상징하고 있다.

 

성서에는 비둘기와 관련된 여러 가지 이야기가 쓰여 있다. 히브리어의 yonah는 구슬을 비둘기의 울음 소리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한다. 그리고 예언자 요나의 이름도 비둘기를 의미한다. 이것을 영어로 Pigeon 혹은 Dove 라고 번역하고 있다. 그리고 tor는 울음 소리를 그대로 옮긴 말일 것이다. 영역은 Turtle로 되어 있다. 이 영어는 라틴어에서 비롯된 의성어로 생각된다. 이 양자를 합쳐서 tor-yonah라고 한 것은 Turtle-dove라고 번역하고 있다. 또 하나 창세기 15,9에서 gozal을 young pigeon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신약에 와서는 peristera라는 희랍어를 대체로 Dove로 번역하고 공동번역 성서는 비둘기)로 되어 있다. 루가복음 2,24절에는 `어린‘이라는 형용사가 붙어 있다. 영어에서 pigeon은 야생비둘기, Dove는 집비둘기를 의미하지만 이것도 엄격한 구별은 아니다.

 

시리아 지방에는 비둘기가 많으므로 그 똥도 많다. 인가에서 기르고 있는 비둘기집은 말할 것도 없고 비둘기들이 서식하는 바위를 허옇게 뒤덮은 똥도 해조의 똥과 마찬가지로 비료로서 소중히 쓰인다. 특히 오이류의 비료에 적합하다.

 

옛날 시리아의 아람 왕이 대군을 이끌고 사마리아 도성을 포위하여 식량의 반입을 막게 되자 사마리아인들은 굶주림에 견디다 못해 자식까지 잡아 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나귀 머리 하나에 은 80세겔, 비둘기의 똥 4분의 1캅에 은 5세겔이나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열왕하6,24-25). 이 `비둘기의 똥‘이라는 말이 문제가 되어 해석이 잘 되지 않았다. 요세푸스는 `비둘기의 똥’이 소금의 대용(代用)이 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료로 사용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인분으로 불을 피워 구워 먹어라”(에제4,12)는 구절에 의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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