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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동물] 성서 동물의 세계: 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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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5 조회수3,980 추천수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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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제목(有蹄目, Sus Scrofa)

 

발굽을 가지고 있는 종류이며, 그 수가 기수(奇數,홀수)인 종류와 우수(偶數, 짝수)인 종류가 있다.

 

우제류(偶蹄)

 

발굽의 수가 짝수다.

 

 

성서 동물의 세계 : 돼지(S. scrofa domestica)

 

 

성서에 멧돼지를 분명히 가리키는 말은 "멧돼지들이 나와서 휩쓸게 하시며 들짐승이 먹어 치우게 하시옵니까?"(시편 80,13)는 구절뿐이다. 시편 80편의 저자 부삽은 이스라엘 백성의 위기를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인의 웃음거리가 되어 있다. 하느님께서는 일찍이 이 백성에게 은총을 베풀어 마치 포도나무를 옮기시는 것처럼 이집트에서 불러내어 뭇 민족을 쫓아내시고 이들을 옮기셨다(시편 40,8).

 

그런데 어찌하여 주께서는 "그 담을 헐으사 길에 지나는 모든 자로 따게 하셨나이까"(시편 80,12)하고 아삽은 멧돼지나 재칼이 와서 해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었다. 즉 시인은 황폐한 전원을 쇠퇴한 국력에 비유하고 있다.

 

팔레스타인과 같은 "보리와 밀과 포도의 나라"에서 멧돼지가 이 농사를 망쳐 놓으면 농가에 큰 타격을 준다. 멧돼지는 하루 밤에 포도원을 짓밟아 농부가 1년 동안 땀 흘려 일한 보람이 물거품으로 돌아가게 하는 경우도 있다.

 

팔레스타인의 멧돼지는 소아시아 중앙 유럽 그밖에 다른 지역에도 서식하는 유럽 멧돼지(Sus scrofa)이다. 팔레스타인에는 요단강 연안의 울창한 숲 속에 멧돼지가 많이 살고 있다. 이곳 멧돼지들은 밤이면 밭을 망쳐 놓고 새벽녘에 굴로 돌아온다. 그리하여 예리고 일대에서는 특히 이 멧돼지의 피해가 심하다. 이 때문에 보리가 여물 무렵이면 농부들은 야경을 서서 멧돼지를 쫓아낸다.

 

트리스트람에 의하면 멧돼지는 모압이나 그릿 골짜기에 많이 서식하여 크게 번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헤르몬 산 기슭에 있는 포도원은 특히 멧돼지의 피해가 크다고 한다. 멧돼지는 튤립의 뿌리를 즐겨 먹는다.

 

멧돼지 사냥은 세계 어디서나 성행하였다. 사람들은 멧돼지를 잡으러 말을 타고 창을 휘두르면서 산과 들로 나섰다.

 

돼지는 멧돼지의 변종일 것이다. 아시아종(種)의 돼지는 스마트라 일대의 멧돼지(Sus vittatus)를 길들인 것으로 이것이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도입되었다. 유럽종(種)의 돼지는 앞에서 말한 유럽 멧돼지를 길들인 것이다. 지금은 유럽산(産) 멧돼지가 우리나라에도 많이 들어와 있다.

 

"돼지는 굽은 갈라졌으나 새김질을 하지 아니하므로 부정한 것이다. 이런 것들의 고기는 먹지 못할 뿐 아니라 그 주검을 건드려도 안 된다."(신명 14,8), 모세의 율법에서 부정하다고 한 동물의 종류는 많다. 그런데 돼지를 금기로 생각하는 경향은 후대(後代)에 이를수록 점점 강했던 것 같다(예컨대 낙타도 부정(不淨)한 동물로 생각했으나 돼지처럼 부정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방인과 차츰 접촉하면서부터 "예쁜 여자가 단정하지 못한 것은 돼지 코에 금고리다."(잠언 11,22)라는 관찰도 하게 되었다. 포로가 되어 쓰라린 경험을 한 후의 히브리인들은 이방인 바빌론의 지배에서 정신적 문화적 지배로부터 벗어나려고 했다. 이방의 것이 하나에서 열까지 혐오스럽게 생각되었다. 바빌론을 정신적 문화적 차원에서 제압하고 있다면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스라엘인들은 이방인이 기르고 있는 돼지에게서 이방인의 모습을 보았던 것 같다.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말라."(마태 7,6)는 말씀에도 이런 심리가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탕자의 비유에서 작은아들은 돼지를 기르게 되었는데(루가 15,15) 이것은 하느님의 선민 이스라엘의 자존심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긴 것을 암시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이스라엘이 로마의 지배를 받아 기독교가 싹틀 무렵의 이스라엘인들에게도 있었을 것이다. "돼지는 몸을 씻겨 주어도 다시 진창에 딩군다."(2베드 2,22)는 이단자를 가리킨다.

 

돼지라고 해서 결코 더러운 것을 좋아할 리가 없다. 돼지가 진창에서 딩구는 것은 몸의 열기를 식히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이것은 돼지를 기른 적이 없는 이스라엘은 미처 알지 못했다. 매일 몸을 씻어야하는 정결례를 중시하던 이스라엘인은 진창 속에서 딩구는 돼지에게 더러운 영이 산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술에 취해 길가에 딩구는 사람은 돼지와 비유했다. 이런 부정한 돼지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이스라엘인으로서는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여러 가지 피부병도 돼지고기를 먹기 때문에 생긴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전염병은 열에 아홉 가지는 돼지가 옮긴다고 생각했다. 열대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기름기가 많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먹지 않는 사람이 적지 않다. 열대지방의 회교도들도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그러나 이스라엘인이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단지 위생관념에서가 아니다.

 

시리아 왕 안티오쿠스 4세가 팔레스타인을 지배했을 때, 그리스 문화에 접하여 그리스의 종교를 최고라고 생각한 왕은 이스라엘인을 그리스화(化)하기 위해 왕은 열심히 이 속국 백성의 종교를 비롯한 구습(舊習)을 고치려고 했다. 마카베오의 반란은 이 그리스화에 대한 반동이며 유대교의 박해에 대한 반항이었다.

 

그리스에는 추수하는 날에 흰 돼지를 잡아 제물로 바치는 습관이 있었다. 다신교냐 일신교(一神敎)냐 혹은 헬레니즘이냐 헤브라이즘이냐 양자택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 마카베오 시대의 이스라엘인이었다. 그들은 헤브라이즘을 택했다. 그런데 이방의 왕은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고 돼지고기를 먹으라고 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요구를 단호히 거절했다(마카 6, 18-31. 7,1-41).  그들은 돼지고기를 먹고 부정(不淨)한 몸으로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들에겐 돼지고기를 먹는 것은 율법 전체를 어기는 일이었다. 그리고 돼지를 기르는 것은 그리스의 학문을 배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가의 체면을 해치는 일이었다. 이스라엘인은 돼지는 이교(異敎)의 상징이며 악의 표상이라고 생각했다. 예수 시대는 마카베오 시대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았다. 더러운 영이 돼지에게 들어간다는(마태 8,30- ;마르 5,11;루가 8,32- 참조) 발상도 이런 시대적인 배경을 갖고 있다.

 

그러나 더욱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려고 한다. 돼지는 한꺼번에 많은 새끼를 낳는다. 그리고 1년에 두 번 새끼를 갖는다. 또 그 새끼는 무척 빨리 자라 1년도 안되어 다시 새끼를 낳는다. 이런 왕성한 생식력 내지는 번식력이 여러 나라 사람들의 눈에 자연의 풍요로움으로 비쳤다. 먼 옛날 이런 힘이 작용하여 스스로 삼라만상이 생겼다는 자연관(自然觀)은 하느님이 천지 만물을 지으셨다는 견해에 위배된다. 이 자연을 경배하는 국민은 땅에서 곡식을 많이 거두고 가축이 번식하게 해 달라고 간구하기 위해 돼지를 잡아서 신들에게 제물로 바쳤다.

 

그러나 하느님의 선민 이스라엘인으로서는 율법에 돼지를 부정한 동물로 규정하고 있는 이상 이런 일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었다.

 

"그들이 무덤 사이에 앉으며 은밀한 처소에서 지내며 돼지고기를 먹으며 가증한 물건의 국을 그릇에 담으면서"(이사 65,4), 또는 "드리는 제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고"(이사 66,3), 또한 "스스로 거룩히 구별하며 스스로 정결케 하고 동산에 들어가서 그 가운데 있는 자를 따라 돼지고기와 가증한 물건과 쥐를 먹는 자"(이사 66,17)라는 말씀들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후대(後代)의 기사이므로 이국풍에 젖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돼지나 개나 쥐와 함께 이스라엘의 한 지파의 토템(totem)으로 그들이 어느 때 그런 제사를 은밀히 올렸을지도 모른다.

 

이집트인은 돼지를 부정하다고 생각했으나 자연의 생산력을 의미하는 Isis, Osiris 두 신을 찬양하기 위해 해마다 한 번 만월이 되었을 때 돼지를 잡아 제물로하여 제사를 드린 후에 나눠먹었다. 가난하여 돼지를 잡지 못하는 사람은 밀가루로 돼지의 형상을 만들어 제물로 바쳤다.

 

돼지는 굴신이 자유로운 코로 땅을 파고 나무 뿌리 등을 먹는다. 그리고 이집트의 델타 지방에서는 농사에도 돼지를 이용하여 범람한 나일강의 물이 빠지면 뿌리와 씨를 새가 쪼아먹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돼지가 밭 위에 뒹굴면 씨앗이 땅 속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리스에서도 농사의 신 데메테르(Demeter)에게 돼지를 잡아서 제물로 바쳤다. 우리나라에서도 큰 고사를 지낼 때에는 으레 돼지 대가리가 젯상 위에 오르는데 이런 풍속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그 이면에는 돼지의 강한 번식력이 모든 일의 번성을 상징한다는 뜻이 담겨 있을 것이다.

 

시리아인은 Hierapolis에서의 대제전에 돼지고기를 먹지도 않고 또 제물로 바치지도 않았다. 그것은 하나의 금기(禁忌) 사항이었다. 크레테인은 인도인이 소를 신성시하는 것과는 달리 돼지를 신성시하여 그 고기를 먹지 않았다. 이스라엘인의 조상들도 돼지고 농사를 가르쳤다고 해서 그 고기를 먹지 않는 풍습이 생겼을 것이다.

 

농사를 짓게 되자 사람들은 가축을 따라 사방을 전전하던 때와는 달리 일정한 지역에 눌러 살게 되었다. 그리하여 로마의 농사의 여신 케레스(Ceres - 그리스의 Demeter에 해당함)는 고을의 신 곧 시정(市政)의 신이 되었다.

 

아테네 사람들은 돼지의 피를 뿌려 죄를 보상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로마인은 돼지를 제물로 바치고 행실을 바로 잡았다. 로마에는 신부가 처음으로 신랑의 집으로 갈 때에는 돼지의 비계살을 문기둥에 달아매는 풍습이 있었다. 그리고 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돼지 고기는 인간의 고기와 비슷하다고하여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대신에 돼지 고기를 신들에게 바쳤다.

 

고대 이집트인이 그린 심판의 그림에 이런 것이 있다. 재판관인 오시리스신(Osiris)은 홀(笏)을 손에 들고 앉아 있다. 그 앞에서 죽은 자의 행위를 저울로 측정한다. 그러자 악행이 선행보다 많게 된다. 오시리스 신이 홀을 흔든다. 안된다는 신호이다. 그리하여 그는 극락에 가지 못하게 된다. 그는 돼지로 변하여 세상에 돌아간다. 두 마리의 비비가 그를 쪽배에 태우고 노를 저어간다. 사람이 도끼로 극락행의 길을 절단한다. 그리고 이 죽은 자가 계단을 올라와 오시리스 신 앞에 선다. 이들의 운명은 아직 알 수 없다.

 

고대 민족들은 이처럼 소박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연과 자연이 지닌 힘을 경배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이런 처지에서 유대교의 제사장이 이교를 상징하는 돼지를 점점 싫어하게 된 것은 당연하다. 이런 태도는 초대 교회에도 계승되었다. 그리고 후에 회교도가 돼지를 혐오하게 된 것도 유대교와 상통된다.

 

오늘날 팔레스타인에는 돼지를 기르는 사람이 매우 적다. 기독교도인 토박이들은 이웃인 유대교도나 회교도의 눈길을 의식하여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그곳에서 돼지고기를 잘 먹는 사람은 모든 음식을 정결하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을 믿는 유럽인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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