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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동물] 성서 동물의 세계: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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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5 조회수4,800 추천수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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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동물의 세계 : 양(羊 : Ovis)

 

 

창세기 4,2에 "아벨은 양치는 목자"라는 기사가 있다. 이것은 이스라엘인이 유목민족임을 단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

 

이스라엘인은 양이나 염소의 무리를 tzon이라고 하며 양이나 염소의 단수는 seh이고 숫염소를 ayil, 암염소를 rakhal이라고 한다. 라헬, 즉 암염소는 야곱이 사랑한 아내의 이름이다(창세 29,6). 여기서 이 가축과 인간과의 인연을 엿볼 수 있다. 새끼양을 keseb라고 한다. 이 새끼양은 제물로 많이 사용했다. 이 새끼양은 kebesah라고도 한다. Tolah란 이보다 좀 더 작은 것을 가리키는 것 같다. 이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tel도 chalab이 1사무 7, 9에 "어린 양"으로 번역되어 있다. 또한 어린 양을 kar이라고 부르는 것은 목장 등지에서 기꺼이 뛰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희랍어는 amnos, armon, probaton 등으로 성서에 쓰여 있다.

 

숫양은 힘을 표시하는 제물로서 특히 귀히 쓰였다. "백성의 친교 제물로 드리는 황소와 숫양을 죽였다."(레위 9,18)이나 번제의 제물(레위 8,18)이나 야훼께 드리는 번제물(민수 6,14) 등에 쓰였다. 잘못을 저지르고 죄를 범했을 때에는 서민들도 이 숫양을 하느님께 제물로 바쳐야 했다. 이것을 가리켜 "속죄 제물"(민수 5,8)이라고 하였다. "피 흘리는 일이 없이는 죄를 용서받지 못 합니다"(히브 9,22). 이 경우에 인간이 지은 죄는 숫양의 피가 적절한 만큼 사하여진다. 인간의 죄는 숫양의 피보다 더러운 것이다. 그러므로 온전한 제사가 되지 못한다. 주께서 이 땅에 오셔서 산제물이 되신 까닭이 여기에 있다.

 

어린양의 고기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이방인이 즐겨 먹었다. 자기가 먹는 것을 하느님께 제물로 바치려는 것이 옛 이스라엘인의 심정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어린양을 잡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소나 양이나 염소도 태어난 후 7일 동안은 반드시 어미와 함께 있게 했다(레위 22,27). 그리고 어미와 새끼를 함께 같은 날에 죽이는 것도 금지했다(레위 22,28). 그것은 너무나 애처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성미가 거치른 옛날 유목민에게 이런 제도가 있었다는 것은 대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옛날 이스라엘에서 양고기를 자주 식탁에 올리는 것은 귀인뿐이었다(1열왕 4,23). "양떼 가운데서 양새끼를 골라잡아 먹고 외양간에 송아지를 잡아먹는 것들"(아모 6,4)에게는 하느님께서 재앙을 내릴 날이 가까운 것을 알지 못하는 포악한 자들이었다.

 

그리고 친구나 손님을 맞아들였을 때에는 아끼던 가축을 잡는 것이 주인의 도리였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한 비유의 배경에는 손님을 공손히 맞으라는 옛 사람의 마음이 깃들어 있다(2사무 12,4).

 

가축의 무리를 보기만 해도 마음이 흐뭇했던 유목민은 경사가 있지 않으면 가축을 잡지 않았다. 그들은 가축의 고기는 자주 먹지 않는 대신에 젖은 많이 먹었다. "도대체 누가 양을 친다면서 그 젖을 짜 먹지 않겠습니까?"(1고린 9,7)라고 바오로도 말했다. 양의 젖은 매우 달콤하여 팔레스타인에서는 우유보다 훨씬 귀히 여겼다. 그것도 신선한 것보다 응고된 신 것을 더 즐겨했다. 구약성서에 신선한 젖을 chalab, 신 젓을 chemhah라 하여 구별하고 있다.

 

모세가 하느님의 은총이라고 노래한 것 중에는 "엉긴 우유에 양유"(신명 32,14)을 들고 있다. 아브라함도 "엉긴 젖과 우유"(창세 18,8)로 천사를 대접했다. 헤벨의 아내 야엘이 자기의 천막 못으로 패군의 장수를 쓰러뜨린 이야기에도 이 젖에 대한 언급이 있다. "시스라가 물을 달라고 하였을 때 우유를 주고는, 귀한 그릇에 엉긴 우유를 떠 주고는"(판관 5,25)

 

그리고 사무엘상 17,18에 쓰여 있는 '치이즈'는 얇게 자른 것으로 Charitz이요, 사무엘하 17,29의 영역 성서에 cheese of kine라고 되어 있는 것은 원어가 shaphoth이다. 우리말 성서에는 '치이즈’로 되어 있다. 욥기 10,10에 "당신께서는 이 몸을 젖같이 쏟으시어 묵처럼 엉기게 하셨고"는 말씀이 있는데 치즈의 제조법을 상기하게 한다. '엉긴 젖'의 원어는 gebinah로 되어 있다. 모든 굳어 버린 젖을 지칭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아무튼 소와 양의 젖을 산화시킨 레벤이라는 것은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식용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양은 고기와 젖을 사람에게 제공할 뿐만 아니라 털을 옷감의 재료로 제공하여 겨울을 따스하게 보내게 한다. 목축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명주나 면직물이 없어 거의 모직물만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 밤에 잘 때 전신을 덮는 담요와 같은 것도 모직이었다. 레위기 13,47이하에는 털옷의 소독법이 기록되어 있다. 욥은 "걸칠 옷 한 벌 없이 숨지는 사람, 몸 가릴 것도 없는 빈민을 못 본 체라도 했단 말인가? 그랬다면 내 어깻죽지가 빠져도 좋겠네. 팔꿈치에서 빠져 나가도 할 말이 없겠네."(욥31,19-20)라고 말했다.

 

잠언 27, 23-27에는 "네 양떼를 잘 보살피고 네 가축 떼에 정성을 드려라. 재물은 길이 남아나지 않고 보화도 대대로 물려줄 수 없다. 그러나 풀을 뜯으면 새 풀이 돋아나, 이산 저산에서 꼴을 거두어들일 수 있다. 새끼양으로는 옷을 지어 입고 숫양은 팔아서 밭을 사고 염소젖은 넉넉해서 식구와 함께 먹고 계집종들까지 먹여 살릴 수 있다."라고 양의 효용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양털과 모시를 구해다가 손을 놀리니 즐겁기만 하구나"(잠언 31,13)라는 말씀은 부지런한 가정주부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리하여 그녀들은 "손수 물레질을 해서 손가락으로 실을 탄다."(31,19). "나의 나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게 덧없이 사라져 가고 만다네"(욥기 7,6)라는 탄식도 "당신께서는 직조공이 천을 감아 들듯이 나의 목숨을 감아 들이고"(이사38,12)라는 말씀도 양털로 옷감을 짜는 모습에서 비롯된 것이다. "종류가 다른 실을 섞어 짠 옷을 네 몸에 걸치지도 말라."(레위 19,19)라는 금기의 '두 재료'란 삼과 털을 가리킨다.

 

양모는 빳빳하고 거친 것도 있고, 길고 부드러운 것도 있으며 색깔도 한결같지 않다. 부드럽고 흰 털을 값지게 여긴다. 다니엘서 7, 9에 보면 "내가 바라보니 옥좌가 놓이고 태고적부터 계신 이가 그 위에 앉으셨는데, 옷은 눈같이 희고 머리털은 양털같이 윤이 났다"라고 했으며 묵시록 1, 14에는 "그 분의 머리와 머리털은 양털같이 또는 눈같이 희었으며"라고 했다. 이사야 1, 18의 "너희 죄가 진홍같이 붉어도 눈과 같이 희어지며 너희 죄가 다홍같이 붉어도 양털같이 되리라."는 말씀도 같은 발상이다. 양털은 희고 부드럽다. 그래서 자연히 눈(雪)과 같이 보이므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다마스커스는 흰 양모의 명산지이며 그것을 띠로에 수출하였다(에제 27,18). 양모는 염색하여 사용하기도 했다.

 

양털을 깎을 무렵이 되면 농부의 추수 때처럼 분주했다. "마침 라반이 양털을 깍으러 나간 틈을 타"(창세 31,19) 야곱은 아내를 데리고 라반의 집을 몰래 떠났다. 사무엘상 25장에 보면 나발이라는 부자가 갈멜에 3천 마리의 양과 1천 마리의 염소를 갖고 있었는데 그 털을 깎을 때에 다윗이 사자들을 나발에게 보내어 아들과 종들을 보낼 것을 통고했다. 그러나 자발은 다윗의 사자를 모욕하고 자기는 왕자처럼 주연을 베풀어 술에 취해 쓰러진다. 그 사이에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이 다윗에게 선물을 보내어 화평을 구했다고 한다. 거기에는 초여름 유목민의 분주함과 즐거움이 묘사되어 있다. 화가는 나발을 뚱뚱한 사나이 아비가일을 갸름한 부인으로 그리지 않을까? 압살롬이 암놈을 죽인 것도 양의 털을 깎은 후 축하연에 사람들을 초대한 자리에서였다(2사무 13,18).

 

숫양의 뿔은 액체를 넣는 그릇으로 사용된다. 기름처럼 조금씩 떨어지게 하는데 적합하다. 사울이 하느님의 뜻을 어겨 양을 치는 다윗이 후계자로 뽑혀 사무엘이 그에게 기름을 부을 때 "너는 기름을 뿔에 채워 가지고 가라"(1사무 16,1)고 하느님은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다윗이 뒤를 이은 솔로몬의 경우는 "사제 사독이 기름 담은 뿔을 장막에서 꺼내어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었다"(1열왕 1,39)고 하였다.

 

욥의 셋째 딸은 케렌 하뿌아라고 하였다(욥기 42,14). 그것이 화장품을 넣는 뿔이라는 뜻이므로 당시에는 여자들이 양의 뿔로 제작한 그릇에 화장품을 보관해 두었던 것 같다. 한시(漢詩)에 호각(胡角)이니 애각(哀角)이니 하는 말이 나오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적어도 목축시대의 중국인이 소나 양의 뿔을 악기로 삼았었다. 그리고 해변가에 사는 사람들은 소라고둥을 악기로 하여 나팔처럼 불었었다. 금속 나팔이 등장하게 된 것은 문명이 상당히 발달된 후의 일이었다.

 

"천둥소리와 함께 번개가 치고 시나이 산 위에 짙은 구름이 덮이며 나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자 진지에 있던 백성이 모두 떨었다"(출애 19,16).

 

이 나팔은 아마도 뿔나팔이 있었을 것이다. 유대인은 오늘날에도 제전에 그런 뿔나팔을 사용한다고 한다. 끝이 굵은 양의 뿔을 악기로 사용할 때에는 가열하여 모양을 조절한다고 한다.

 

예리고성의 돌담이 나팔소리와 함께 무너졌는데(민수 6,4), 이때 사용한 것은 양각 나팔이었다. 하느님의 권능을 힘입은 인간의 함성에 성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그리고 양의 가죽은 성막의 덮개와(출애 26,14), 옷(히브 11,37), 띠(마태 3,4) 등에도 사용되었다.

 

족장들은 많은 소와 양을 기르고 있었다(창세 13장). 이 때문에 이삭은 블레셋인에게 질시를 받았다(창세 26,14). 욥은 처음에 7천 마리, 나중에는 1만 4천 마리의 양을 갖고 있었다(욥기 42,12). 전쟁을 잘 하는 르우벤인은 하갈인을 공격하여 25만 마리의 양을 손에 넣었다고 한다.(1역대 5,21). "모압 왕 메사는 목축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스라엘 왕에게 암양 십만 마리의 털과 숫양 만 마리의 털을 조공으로 바쳐 왔었다."(2열왕 3,4). 그도 이스라엘과 싸우게 되었다. 위의 숫자가 정확한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옛 모압 땅에 지금도 한 집에서 3만 마리의 양을 키우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아사 왕은 큰 부자였던 것 같다. 사람들을 도성에 불러 양 7천 마리를 잡아 하느님께 바치는 큰 제사를 올렸다고 한다(2역대하 15,11). "회중에게 유다 왕 히즈키야가 소 천 마리와 양 칠천 마리를, 대신들이 소 천 마리와 양 일만 마리를 내놓았기 때문이었다"(1역대 30,24)라는 말씀도 당시의 번영을 보여주고 있다. 솔로몬 시대의 영화를 특히 "솔로몬 왕과 그 앞에 모인 온 이스라엘 회중이 궤 앞에서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양과 소를 잡아 바쳤다"(1열왕 8,5)고 하였다.

 

요르단의 동부와 남유다의 종족에게 양은 그대로 재산이었다. 그래서 아라비아인은 "숫양 칠천 칠백과 숫염소 칠천 칠백"을 여호사밧 왕에게 드렸다(2역대 17,11). 그리고 그는 그 양과 염소를 띠로에서 수입했다. "아랍인인 케달의 모든 수령도 너와 거래를 했다. 새끼양과 숫양과 숫염소를 가지고 와서 무역을 하였다."(에제 27,21)라고 쓰여 있다.

 

"케달의 모든 양떼가 너에게로 모여 오리라. 네가 스바욧의 숫양들을 제물로 바치게 되리라"(이사 60,7), 이 예언은 아라비아 북부의 유목민이 모두 이스라엘을 따르게 될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히브리인은 스바욧과 케달을 이스마엘의 자손으로 보고 있었다(창세 25,13).

 

케달이라는 말은 '검은 가죽'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한다. "예루살렘의 아가씨들아, 나 비록 가뭇하지만 케달의 천막처럼, 실마에 두른 휘장처럼 귀엽다는구나."(아가 1,5). '케달의 천막’은 양이나 낙타의 가죽으로 되어 있다. 아라비아인이 많은 가축을 기른 것은 아시리아의 옛 문헌에도 남아 있다.

 

양치는 목자는 밤에 맹수가 침입하지 못하도록 사냥개를 시켜 양을 지키게 했다. 우리 밖에서 자면서 적이 침범하면 요란하게 짖어 대었다.

 

팔레스타인 및 그 일대의 목자들은 서방국가의 사람들처럼 개를 앞세우고 뒤에서 양의 무리를 모는 것이 아니라 손수 앞장서서 양을 이끌어갔다. "양떼처럼 당신 백성을 모세와 아론의 손을 빌어 인도하셨습니다."(시편 77,20). 또는 "이스라엘의 목자여, 요셉 가문을 양떼처럼 인도하시는 이여 귀를 기울이소서."(시편 80,1)라는 말씀은 거기서 비롯된다. 목자의 히브리어는 '기꺼이 본다'는 뜻이며, '기른다’는 뜻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유명한 시편 23,1은 "야훼는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고 읊고 있다. 양치기는 양과 친밀해야 한다. 그들은 양에게 각각 이름을 붙여 둔다. 그리스인은 지금도 옛날처럼 양에게 일일이 이름을 붙인다.

 

버트레이의 기행문에 보면 길든 양은 목자가 소리치는 대로 잘 따른다고 한다. 주께서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는다."(요한 10,3), 또는 "양떼는 그의 음성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를 뒤따라 간다"(요한 10,4)고 말씀하신 것도 양의 일상적인 움직임의 한 부분을 피력하신 것이다. 양이 목자의 눈길에서 벗어나 곁길로 가면 위태롭다. 그러므로 목자는 언제나 크게 소리 질러 자기가 있는 곳을 알린다. 양은 그 소리를 듣고 목자를 따라온다. 다른 사람이 소리를 지르면 양은 이상하게 여겨 멈춰선다. 두 세 번 계속 소리를 지르면 "그 사람의 음성이 귀에 익지 않기 때문에"(요한 10,5)무서워서 도망친다. 목자는 무기를 지니고 있다. 야수나 도둑이 들면 막아야 한다. 때로는 목숨을 건 사투가 되기도 한다. 주님은 "착한 목자는 자기 양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요한 10,11)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때로는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놓아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주로 들이나 언덕에서 양을 기른다. 그 들이나 언덕에는 군데군데 골짜기가 있고 골짜기에는 들짐승이 숨어 있다. 낮에는 아무 장애도 받지 않고 넓은 초원이나 눈앞이 탁 트인 언덕에서 유유히 풀을 뜯던 양도 밤이 되면 우리에 갇히게 된다. 우리는 대체로 천연 동굴을 약간 손질한 것이다. 갈릴레아 호반의 골짜기나 유다의 구릉지대, 예리고 일대에서 키우는 양의 우리는 모두가 이러하다. "사울은 불레셋군을 쫓아낸 다음 다윗이 엔게디 광야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온 이스라엘에서 뽑은 삼천 명을 이끌고 다윗 일당을 찾아 들염소바위 동편으로 갔다. 그곳 길 옆에는 양우리가 여기저기 있었고 그 근처에 동굴이 하난 있었는데 사울은 거기에 들어 가 뒤를 보았다. 마침 다윗이 부하를 거느리고 그 굴속에 있었는데"(1사무 24,2-4)에서 처럼 굴을 양의 우리로 사용했었다. 다윗은 '양의 우리에서' 하느님의 부름을 받아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시편78,70;2사무7,8)고 전한다.

 

여우나 이리가 많으므로 베들레헴뿐만 아니라 그 일대에서 목자들은 밤에 밖에서 자기 양떼를 지켜야만 했다(루가 2,8). 사람이 살지 않는 레바논의 높은 산악지대에서 목자는 바람이 강하게 몰아치지 않는 곳에 야영 천막을 친다. 그리고 나뭇가지나 뿌리를 모아 불을 피운다. 천막 속에는 냄비와 낡은 담요 따위가 놓여 있고 밖에는 개가 서너 마리 파수를 본다. 북부 지방에서는 여름에도 이렇게 노숙을 한다. 남부 지방에서는 1년 내내 노숙을 한다.

 

요르단의 평원에는 동굴이 없다. 그런 곳에서는 르우벤의 자손이 모세에게 말한 것처럼 "가축을 위하여 우리를 짓게"(민수 32,16) 되는데 평지에 간소한 울타리를 만들고 출입구를 마련한다. 르우벤은 요르단 동편 땅을 유산으로 얻었다(민수 32,1- ; 신명 3,1- ; 민수 13,15- ; 18,7).

 

"어찌하여 양떼 틈에 끼어 피리 부는 소리나 들으며 양 우리에서 서성거리는가?(르우벤은 냇물가에 모여들어 끝도 없이 토론을 벌이는구나)"(판관 5,16). 르우벤은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의 횡포에서 동포를 구출할 방도에 대해 깊이 생각했을 것이다.

 

여행자가 블레셋의 평원을 지나가면서 폐허가 된 도성의 판자집과 양의 우리를 목격하면 "바닷가 일대는 풀밭이 되어 목자들이 양떼나 몰고 다니는 목장이 되고 돌담을 쌓아 양떼들이 쉬게 하는 곳이 되리라"(스바 2,6)는 예언자의 두려운 예언을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트리스트람은 말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에는 우기와 건기가 확실히 구분되는 지역이다. 겨울에 우기가 있고 여름은 사막기후의 특성을 보이며 비가 오지 않는 매우 메마른 날씨가 계속된다. 그러므로 목자들이 양떼를 몰고 좋은 풀밭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쉬 알 수 있다. 목자는 물과 풀을 찾아 늘 이리저리 양떼를 몰고 다녀야 한다.시편 23, 1의 야훼를 좋은 목초지로 인도하는 목자로 그리는 것은 그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좋은 목초지를 찾아 헤매었던가를 보여 준다. 지금도 아랍인은 구약시대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물이 많은 목장을 차지하기 위해 부락과 부락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야곱의 우물과 모세가 그의 아내가 된 십보라를 구출한 곳도 바로 이런 우물이었다(창세 29, 1-3. 출애 2, 15-17).

 

양을 치는 목자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이집트의 제상(帝相)이 된 요셉의 이야기(창세 47, 4)에 요셉의 형제들이 자신의 가족들의 직업이 목자였음을 밝히고 있다. 이는 이스라엘이 조상대대로 유목민이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그들은 언제나 풀과 물이 있는 곳을 찾아 전전하였다.

 

목장을 찾아 돌아다니고 또 좋은 초장를 발견하면 초장을 차지하기 위해 싸움도 자주 있었다(1역대4, 39-40. 41). 양을 기르는 목자가 활이나 검을 갖고 있는 것처럼 양을 치는 목동은 막대기와 돌팔매 등을 갖고 있다. 다윗은 이 돌팔매로 불레셋 장수 골리앗을 쓰러뜨리기도 하였다(1사무 17,40).

 

길을 잘못 든 양에게 목자가 던지는 돌은 그곳에 가서는 위험하다는 신호이다. 그래도 양이 계속 앞으로 나아가면 두 번째 돌맹이가 곧 등을 때려 경고한다. 물론 돌은 양의 적을 쫓아버리기 위해서도 던진다. 그때에는 더욱 힘차게 던진다. 목자는 양을 습격하는 사자나 곰과도 싸워야 했다(1사무 17,34).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는 어린양을 돌볼 무렵이 목자에게 힘든 시기이다. 어미 양을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 새끼 양을 안고 따라가야 한다. 그 동안에 새끼를 낳을지도 모르는 암양도 섞여 있다. 이사야 예언자는 "목자처럼 당신의 양떼에게 풀을 뜯기시며, 새끼양들을 두 팔로 안아 가슴에 안으시고 젖먹이 딸린 어미 양을 곱게 몰고 오신다"(이사 40,11)라고 메시아에 대해 증거했다.

 

당시에는 많은 소와 양을 갖고 있어야 부자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가난한 사람도 "자기가 사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 하나뿐"(2사무 12,3)이라도 소중히 키웠다. 목자가 양의 주인인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이스라엘인은 자연히 자신들을 양의 무리에 비유하기를 즐겼고 많은 예언자들도 그렇게 비유하기를 즐겼다. "그는 우리의 하느님,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 이끄시는 양떼, 오늘 너희는 그의 말씀을 듣게 되리라"(시편 95,7)고 읊기도 하였다. 하느님은 교역자를 "내 백성을 기르는 목자"(예레 23,2)라고 말씀하시고, 예수님은 자신을 "착한 목자"(요한 10,12)라고 부르시고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어린양"(요한 1,29)이라고도 불렀다.

 

팔레스타인에는 적어도 두 종류의 양이 있는데 모두가 집에서 기르는 양(Ovis aries)의 변종이다. 북부 산악지대의 양은 짤막하지만 질이 좋은 털을 갖고 있으며 다리가 짧다. Ovis Hispanicus류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한다.

 

또 한 가지는 남부지방에 많이 살고 있는 꼬리가 굵고 긴 Ovis laticaudata이다. 북부 산악지대에 살던 양이 성서시대에 살고 있었는지 분명히 알 수 없지만 이 굵은 꼬리를 갖고 있는 양은 분명히 옛날부터 서식했던 것이다. 성서 이외의 옛 문헌에도 이 꼬리가 굵고 긴 양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시리아, 아라비아, 페르시아 등지에도 살고 있다.

 

그 커다란 꼬리는 비계살이다. 아라비아인은 이것을 잘 먹지만 자주 먹어보지 못한 사람의 구미에는 잘 맞지 않는다고 한다. 그 꼬리야말로 친교제의 제물이 되었다(레위 3,9). 그 꼬리의 기름기로 말미암아 잘 구워졌던 것이다. 출애굽기에도 "숫양의 기름진 꼬리와 내장"(출애 29,22)를 취하여 "제단의 번제물 위에 놓고 살라라"(출애 29,25)고 하였다. 시리아의 양은 이처럼 꼬리에 기름기를 갖고 있기 때문에 몸의 기름기는 비교적 적다고 한다. 양털은 대개 희지만 검은 것도 간혹 있고, 변종 가운데는 반점이 있는 양, 다갈색의 양도 있다.

 

창세기 30,27-39에 양과 염소의 털 색깔을 바꾸기 위해 나뭇가지의 껍질을 사용했다는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양과 염소를 기르는 사람들이 가끔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사람이 양을 치기 시작한 것은 먼 옛날부터이다. 스위스의 호반에 인류가 살고 있던 석기시대에 이미 양을 가축으로 키웠다고 한다. 그 양은 몸집이 작고 뿔은 염소의 뿔과 비슷했다. 그러니까 오늘날 북부 지방이나 산악국가에 살고 있는 양과 가까웠다. 이집트의 동물학자들은 제 5 왕조 시대에 집에서 소를 키웠으나 양은 기르지 않았다고 한다. 이집트에 양이 들어온 것은 기원전 1700년대가 아닌가 한다.

 

아프리카의 북부지방인 시나이 등지에는 Aoudad라는 야생의 양이 살고 있었으며 그것이 이집트의 고화(古畵)에 나와 있다. 같은 이집트에서도 어떤 지방에서는 양을 신성시하고 어떤 지방에서는 신에게 제물로 바쳤다. 이 제물을 받는 신은 이리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집트에는 숫양과 같은 머리를 가진 신도 있었다. 데베스 지방에서의 양의 미라(mirra)도 적지 않게 발굴되었다. 그리고 먼 옛날 셈족은 양이 아니라 염소를 길렀으며 양은 메소포타미아를 거쳐 중앙아시아에서 들어왔다는 주장도 있다.

 

앞에서 말한 Aoudad 외에 사르디니아나 코르시카 등지에는 Mouflon(ovis musimon)이라는 수컷의 뿔이 뒤로 굽고 머리의 털만 유난히 긴 야생 양이 있고 몽고, 아시리아, 티벳 등지에는 Argali(O. ammon)라는 몸도 뿔도 대단히 큰 야생 양이 있다. 오늘날 집에서 기르는 양은 그런 야생 양에서 비롯된 것인지 혹은 이미 멸종한 야생 양에서 비롯된 것인지 분명치는 않지만 아시아산(産)인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羊'이라는 한자는 뿔이 있고 발이 있고 꼬리가 있는 양의 모양을 나타낸 것으로 중국의 고서에는 양에 대한 글이 적지 않다.

 

"사(賜)야 너는 어찌 양을 아끼느냐 나는 예를 아낀다"고 한 공자의 말씀에서 양이 구약시대와 마찬가지로 큰 제사 때 제물로 쓰인 것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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