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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동물] 성서 동물의 세계: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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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5 조회수3,765 추천수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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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제류(奇蹄類 : Perissodactyla)

 

발굽이 홀수다.

 

 

성서 동물의 세계 : 말(馬 : Equus caballus)

 

 

"네가 말에게 날랜 힘을 주었느냐? 그 목덜미에 휘날리는 갈기를 입혀 주었느냐? 네가 말을 메뚜기처럼 뛰게 할 수 있느냐? 힝힝하는 그 콧소리에 모두들 두려워한다. 발굽으로 세차게 땅을 파다가 힘이 뻗쳐 내달으면 눈섶 하나 까닥하지 않고 무서움쯤은 콧등으로 날려 버리며 칼날도 피하지 아니하고 내닫는다. 화살통이 신나게 덩그렁거리고 창과 표창이 번뜩이는데 아우성치는 함성을 헤치며 땅을 주름잡고 곁눈 한번 팔지 않고 돌진한다. 나팔소리 울려오면 "힝힝" 울고 지휘관들의 고함과 진격명령만 듣고도 멀리서 풍겨 오는 전쟁 냄새를 맡는다."(욥기 39,19-25).

 

사람이 기르고 있는 말의 원산지는 중앙아시아의 평원이라고 한다. 그곳 광막한 초원지대에 야생마가 살고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그곳에는 사람이 집에서 기르는 말과는 많이 다른 말이 살고 있다.

 

어쨌든 가축으로서의 말은 아직도 중앙아시아에서 동쪽으로는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와 일본에 전해졌으며 서쪽으로는 메소포타미아의 북부에 전해지고 그곳에서 아시리아와 이집트에도 전해졌다. 이집트에는 셈족에 속하는 힉소스(Hyksos)인이 (B. C. 1800년경) 침입했을 때 말이 들어왔다.

 

성서에 나오는 말의 기사는 대체로 군대와 관계가 있다. 흉년이 들어 요셉이 이집트인에게서 말과 그 밖의 가축을 받고 그들에게 식량을 주었다는 이야기가 있다(창세 47,17). 그러나 이 유목민에게는 양과 소와 당나귀가 있었다. 그들은 이에 만족하고 주로 전장에서 사용하는 말을 잡아 먹으려고는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스라엘인이 이집트에서 탈출했을 때 이집트인의 기마대와 전차 부대가 그 뒤를 쫓아왔다(출애 14,9).

 

이스라엘인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간 후에도 말을 별로 부리지 않았던 것 같다. 서팔레스타인의 중앙부는 구릉이 많고 바위투성이어서 농사에 말을 부리기에 적합하지 않았으며 남방의 유다, 동방의 르우벤, 가드 등은 농업이 그다지 발달하지 못했다.

 

후에 유다, 베냐민, 에브라임, 므나세 등의 땅이 된 산지를 여호수아가 정복했을 때에도 이곳에서는 군마를 사용하지 않았다. 적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더욱 북진하여 하손의 왕 아빈 이하의 연합군과 메롬의 물가에 대진했을 때 이스라엘인은 비로소 우세한 기병과 싸우게 되었다. 그곳은 요르단강 상류의 평야로 기병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 후 하솔에 도읍한 야빈 왕은 철병거 900대를 동원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20년 동안 괴롭혔다(판관 4,3). 여자 예언자 드보라가 바락을 격려하여 이 야빈 왕의 장군 시스라의 군사를 무찌르게 한 것은(판관 4장 이하) 겨울이었을 것이다. 여름에는 작은 개천에 불과했던 키손강도 겨울이면 범람하여 강변을 늪지대로 만든다. 적의 전차의 수레바퀴가 진창에 빠지고 말도 발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을 것이란 드보라의 말대로 그곳에 유인당한 것이다(판관4,7;5,22).

 

"야훼께서 함께 하시어 유다 지파는 산악지대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평지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아직 몰아내지 못했는데, 그들에게 철병거가 있기 때문이었다."(판관1,19)라고 쓰여 있는 것처럼 보병인 이스라엘군은 평야에서는 기병을 거느린 종족을 당하지 못했다. 이스라엘은 "말 어찌 바위 위를 달리겠느냐?"(아모6,12) 하여 되도록 말이 힘을 쓰지 못하는 곳에서 싸우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열왕기상 1,5에서도 다윗 시대에 말을 길렀다는 기사에 대해서는 이론(異論)이 있다고 하더라도 솔로몬 시대에 "병거를 끄는 말을 둘 마구간이 사천 간 있었고 말이 만 이천 마리 있었다."(1열왕 5, 6)라고 하며 나라가 부강해졌음을 그리고 기마와 기병이 많음을 자랑하고 있다. 그 후로 전쟁에서 이스라엘과 유다는 모두 말을 전쟁에 이용하고 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남 유다보다 말을 부리기에 다소 유리한 지형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아합, 여호람, 에후 등은 상당히 많은 전차를 사용했다. 여호아하즈가 시리아의 왕에게 패했을 때, "야훼께서는 여호아하즈에게 겨우 기마병 오십명, 병거 십 대, 보병 일만을 남겨 주셨다"(열왕하 13,7)고 한다. 전쟁에 사용한 북왕국도 더욱 말이 많은 아시리아에게 짓밟히고 말았다. 남유다도 이런 강적 앞에서는 무기력했다.

 

아시리아의 산헤립 왕은 그의 시종장관으로 하여금 히즈키야의 부하에게 아시리아와 결탁하면 "네가 기수만 내놓을 수 있다면 내가 너에게 말 이천 마리를 주겠다. 너에게 우리 주인의 하잘 것 없는 졸병 하나인들 물리칠 힘이 있겠느냐? 그러면서 이집트에서 병거나 기병부대가 오려니 하고 있구나."(2열왕 18,23-24)하고 히즈키야의 부하를 모욕했다. 긴 시종장관의 이야기는 중국 전국 시대의 논객(論客)을 상기하게 한다.

 

"아, 너희가 비참하게 되리라! 원군을 청하러 이집트로 내려가는 자들아! 너희가 군마에 희망을 걸고 많은 병거와 수많은 기병대를 믿는구나!"(이사 31,1), 나라의 예언자도 이렇게 말했다. 이 병마는 아시리아와의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고대에 아시리아의 기병이 우수했던 모습은 니느웨의 조각에 남아 있다.

 

나훔 3,1-3의 처참한 모습은 니느웨의 준마(駿馬)와 병거로 도시를 약탈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하바 1, 5-11의 내용은 바빌론의 모습으로 8절에는 그들의 말을 '표범보다도 날래고 저녁에 오는 늑대보다도 사나운 말’이라고 표현 하고 있다. 성장을 거듭하는 신흥 바빌론의 위세가 드러난다. 그러나 성서에서 말에 대한 가장 뛰어난 묘사는 앞에서 인용한 욥기 39장의 문장이다. 거기에는 천마(天馬)가 하늘을 나는 광경이 엿보인다. 히브리인들은 이 세상에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하여 두려워했다.

 

유대인은 바빌론에서 돌아올 때 736마리의 말을 끌고 왔다고 한다(느헤 7,68). 그 후 유대인은 전보다 말을 많이 부린 것 같다.

 

"다윗의 왕위를 이어 받아 병거와 군마를 타고 다닐 임금들과 고관들, 또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 시민이 이 성문들로 들어와 성읍 안에서 길이길이 살 것이다."(예레 17,25), 이 말씀은 안식일 규정을 착실히 지킬 것을 간곡히 청하면서 안식일 규정에 충실하면 앞으로 이런 기쁨을 맛볼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야훼의 약속이 깔려 있다. 당시 그들은 예루살렘 성문 안을 수시로 다니며 더럽히고 안식일을 모독하는 행위를 저질러 왔었다. 또한 안식일 규정도 무시한 채 성문 안으로 짐을 부리곤 했던 것이다. 이 구절에 나타난 병거와 기병은 위엄을 상징한다. 이 병거에는 우산과 같은 덮개가 햇살을 가리고 있으며 말에는 여러 가지 장식물이 달려 있다. 아시리아의 옛 그림을 보면 말 머리에서 재갈에 맨 장식 끈이나 말의 가슴에서 안장에 거는 가죽끈은 전차를 끄는 말이나, 마차를 끄는 말이나 그리고 사람이 타는 말이 별로 다른 것이 없다.

 

이집트인이나 헷인의 전차를 끄는 말은 가슴에서 안장에 거는 가죽끈이 조금 단순하고 아시리아의 전차를 끄는 말은 그 가죽끈이 한결 굵다. 그리고 아시리아의 기병은 안장 없이 말등 위에 바로 타고 있었다. 재갈이나 굴레나 고삐는 말을 모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그 형태는 오늘날 서양식에 가까웠던 것 같다. 말굽에 쇠를 박는 것은 근대의 일이며 옛날에는 이런 일이 없었다. 아라비아의 말은 갈대아 종이라고 한다. 사람과 말의 친밀한 관계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낳게 하였다. 오늘날에도 아라비아에서는 기온관계로 쇠를 말굽에 박는 것은 좋지 않다고 한다. "드단은 말안장에 까는 천을 가지고 와서 무역을 했다"(에제 27,20) 또한 말안장에는 많은 장식을 해 화려하게 보이도록 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말의 털빛은 즈가리야서에 살필 수 있다. 묵시록에 기록된 말의 털빛에 대한 언급은 여기서 왔을 것이다. "첫째 병거는 붉은 말들이, 둘째 병거는 검은 말들이, 셋째 병거는 흰 말들이, 넷째 병거는 점박이 말들이 끌고 있었다."(즈가 6,2-3).

 

로마인의 세력이 확장됨에 따라 길이 사방의 여러 나라들과 연결되고 마차가 그 위를 달렸다. 팔레스타인도 그 혜택을 받게 되었다. 에티오피아 여왕의 내시가 마차를 타고 지나간 이집트 가도(사도 8,28)는 전부터 있었을 테지만 로마인이 크게 보수작업을 했을 것이다.

 

신명기 17,16에는 말을 많이 가지려고 하지 말 것을 충고하는 데 이 까닭은 군대의 힘을 상징하는 말과 기병에 마음을 두지 말고 오로지 야훼 하느님의 힘에 의지 할 것을 요청한 것이다. 또한 이것은 이집트와의 교류를 끊고 이교도의 제사 풍습에 물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2열왕 23,11에서 태양신을 모시는 말동상과 태양신이 타는 병거를 불에 태워버렸는데 이는 요시야 왕의 개혁운동에서 비롯된 것으로 모든 우상을 철폐하고 오직 하느님만을 따르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어쨌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태양의 신 헤리오스가 말에게 끌게 한 전차를 타고 있다는 상념은 셈인들의 종교 사상에도 있었을 것이다.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일륜(日輪)이니 월륜(月輪)이니 하여 돌아가는 것에 수레를 결부시켜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발상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발상은 이스라엘에게는 우상 숭배에 해당하는 것이라는 것이 요시야 왕의 주장이다. 히브리인은 말을 다루는 일에 서툴렀다. 그래서 말을 외국에서 수입하는 동시에 말을 다루는 외국인을 고용하게 되고 이들을 통해 우상 숭배에 해당하는 외국제례(祭禮)가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말을 기르면서 이스라엘인들의 상념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하느님의 병거는 수천 대 수만 대 시나이에서 성소로 타고 오신다."(시편 68,17)고도 하고, "어인 일로 병거를 타고 말을 몰아 우리를 쳐부수시러 오십니까."(하바 3,8)라고도 하였다. 그리고 회오리바람을 타고 엘리야를 하늘로 데리고 간 "불수레와 불말(火馬)"(2열왕 2,11)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날이 오면, 말방울까지도 야훼의 것으로 성별되고,"(즈가 14,20)는 말씀에는 곧 임하게 될 평화를 연상하게 한다. 평화의 소식은 베들레헴의 말구유에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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