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화학] 성서에서 언급되는 금속: 구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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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4-11-05 | 조회수5,984 | 추천수0 | |
성서에서 언급되는 금속 : 구리
흠정역 성서(KJV)에서 ‘구리(copper)’라는 말이 보이는 것은, 에즈라가 12명의 사제에게 보물을 달아 넘겨 준 구절뿐이다. 금과 은 이외에 "금잔 이십 개에 천 다릭, 금에 못지않게 반짝반짝하는 놋그릇 두 개였다(two vessels of fine copper)"(에즈 8, 27). 바오로(Paul)는 디모테오(Timothy)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에서, "구리 세공하는(coppersmith) 알렉산드로가 나를 몹시 괴롭혔습니다."(2디모 4,14)라고 언급하였다. 한 가난한 과부가 헌금한 돈(widow's mites)은 렙톤이라는 구리돈이었다(마르 12,42; 루가 21,2). bronze는 일찍이 알려졌었고 brass는 성서시대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음에서도 불구하고, KJV에서는 용어 "bronze"는 사용되지 않고, 용어 "brass"가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 용어들도 NEB에서는 다양하게 번역되고 있다. 약간의 경우에 "copper"(욥기 28,2; 마태 10,9)로서, 성막(출애 26,11)의 서술 전체와 다른 경우(2사무 8,8; 판관 60,17)에는 "bronze 혹은 copper"로서, 많은 경우에 "bronze"(민수 21,9; 묵시 9,20)로서, 약간의 경우에 "brass"로서 번역되어 있다.
청동(bronze)은 구리와 주석의 합금이다. 청동은 구리보다 단단하고 그리고 펴지는 성질은 적다. 청동은 녹이기 쉬우므로, 구리보다 주형에 넣어 주조하기 용이하다. 주석의 비율이 클수록 녹는점이 낮아진다. 90-98% 구리는 녹는점이 1005-1080℃이고, 70-80% 구리는 녹는점이 750-800℃이고, 구리와 주석의 비가 약 60:40인 경우에는 630℃이다. 청동은 비교적 만들기 쉽고 느낌이 좋은 색깔을 띄며 녹슬지 않으므로, 유사 이전의 시대부터 사용되었다. 놋 또는 황동(brass)은 구리와 아연의 합금이다. 녹는점은 850-1050℃로 변화하며, 아연의 함량이 증가함에 따라 녹는점이 낮아진다. 놋은 청동보다 늦게 알려졌으며, 성서 시대에 놋이 사용되었던 증거는 거의 없다.
모세가 “약속된 땅”(the Promised Land), 요컨대 가나안의 땅(팔레스타인)을 "굶주리지 않고 먹을 수 있는 땅, 아쉬운 것 하나 없는 땅, 돌에서는 쇠를, 산에서는 구리를 캐낼 수 있는 땅이다"(신명 8,9)라고 언급한 부분은, 종종 유리된 상태로 얻을 수 있는 구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 서술은 레바논이나 시나이 지방에는 적용된다. 1845년 유대교의 랍비, Joseph Schwarz는 “Aleppo의 부근을 제외하고서는 팔레스타인에는 구리는 없다. 그러나 북쪽 Galilee와 레바논 남부 지방에는 구리의 광맥이 있다”는 것과 또한 이집트의 국경 지방에도 구리가 입수될 수 있다고 언급하였다.
1934년 바그다드의 미국 동방연구학원, 헤브라이 연합대학, 미국 학술협회, 트란스요르단 고대부회의 합동조사대는 에돔(Edom) 지방의 철저적인 고고학적 조사를 행하였다. Nelson Glueck(1900-1971) 박사를 단장으로 한 조사대는 Khirbet el-Gheweib, Khirbet el-J riyeh, Khirbet Nqeib Aseimer에서 구리 광석을 용해할 때 생기는 찌꺼기 더미(slag pile)와 고대의 용해로(smelting furnace)의 유적을 발견하였다. W di el-J riyeh에서 구리의 함량이 많은 다량의 사암(砂岩)을, Umm el-Amad에서 큰 구리 광산을 발견하였다. Khirbet el-J riyeh, Meneiyyeh, Khirbet Nqeib Aseimer에서는 지표에서 적동광, Cu2O과 공작석, Cu2CO3(OH)2이 혼합된 양질의 광석을 발견하였다. Nelson Glueck의 발굴조사에 의하면 솔로몬왕은 여기에서 광산을 개발하였고, 여기에서 얻은 구리를 신전 기타 국내의 건축 사업에 사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여러 외국에 수출하여, 아프리카, 아라비아, 인도 등의 금, 향료, 기타의 품목과 교환하였다고 생각하였다(1열왕 10,22). 이 지방은 연료가 부족하므로 용광로의 연료로는 건조한 관목을 다량으로 사용하였을 것이다. 지금도 팔레스타인과 트란스요르단에서는 조잡한 석회 가마의 가열에 이 연료를 사용한다. 그러나 철기시대 초기에서는 Arabah 요컨대 사해(Dead Sea)와 아카바만(Gulf of Aqaba) 사이의 약 185킬로미터에 걸친 계곡에서는, 막대한 량의 구리가 제련되었으므로, 에돔 지방의 삼림에서 낙타와 당나귀의 대상(隊商)을 통해서, 연료로서 목탄이 대량으로 운반되었을 것이 틀림이 없다.
그런데 1969년에 “솔로몬왕의 광산”이라고 불렀던 Wadi Timna 골짜기에서 작은 언덕이 발굴되어, 그곳에서 이집트의 구리광산의 보호 여신 하도르(Hathor)의 작은 신전이 발견되었다. 발굴 책임자 Beno Rothenberg에 의하면 기원전 14세기말에서 기원전 12세기 중반까지 존속했던 이집트왕의 신전이라는 것이었다. 다시 그 후에 이집트왕의 하도르 신전의 위쪽 약 20미터의 벼랑의 표면에 이 여신과 이 여신에게 물건을 바치는 람세스(Rameses) 3세의 상을 새긴 그림이 발견되었다. 이 발견에 의하여 그 때까지 솔로몬왕의 광산이라고 불러왔던 Nelson Glueck설은 지금은 완전히 뒤집혔다. 또한 부근의 고대 제련소 유적의 출토품에서, 이집트인은 이 부근의 주민 즉 미디안인, 가나안인, 아말렉인과 공동으로 구리의 채굴 및 제련에 종사한 것이 명백해졌다. Rothenberg에 의하면 하도르 신전은 기원전 1216-1210년에 파괴되었고, 이어서 재건되어 기원전 12세기 중반까지 존속하였으나, 그 이후에 이곳에서 구리가 제련되었다는 증거는 없었다고 한다.
확실히 성서에 의하면 솔로몬 왕이 궁전과 신전의 건설에 사용했던 구리는 그가 이 구리 광산에서 채굴했던 것이 아니었고, 부왕 다윗이 여러 나라로부터의 전리품으로서 또한 조공품으로서 비축했던 다량의 청동이었다(1역대 18:8-10). 솔로몬 왕이 무역항을 개설하였으며, 그러기 위해서 아카바만의 엘랏(Eloth) 곁에 있는 ‘에시온게벨(Eziongeber)’에서 배를 만들게 하였다(1열왕 9,26-28). 이곳은 또한 출애굽 기간에 이스라엘인들이 노숙했던 곳이었다(민수 33,35). 그곳은 요르단의 Aqabah와 이스라엘의 Eilat 사이에 중간에 위치한 요르단의 Tell-el Kheleifeh로 확인되었다. Nelson Glueck은 1938-1940년에 걸쳐 이 Tell-el Kheleifeh를 발굴하였다. 이 Tell은 기원전 10세기에서 기원전 4세기에 걸쳐 5층으로 구성되었다. 가장 아래층에서 솔로몬 시대의 특징을 나타내는 건조물이 있었다. 이 큰 건조물을 Glueck은 구리의 제련소로 보았다. 건물의 성벽에 뚫려 있는 구멍은 골짜기 사이에서 불어 내려오는 강풍을 용광로에 보내기 위한 송풍관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Rothenberg의 새로운 조사에 의하여 Glueck의 주장은 완전히 부정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부근의 구리광산은 솔로몬과는 직접 관계가 없고, 시나이(Sinai)의 구리 산과 마찬가지로 이집트 왕에 의하여 개발된 것이 확실하였고, 기원전 14-12세기 동안 이집트인들이 작업하였으며, 이집트인들의 채광 활동은 기원전 1150년에서 끝났다. 그래서 Glueck가 구리 제련소라고 보았던 유적은, 그 위치로 보아서 네게브(Negev) 지방의 남북과 동서의 대상로(隊商路)의 교차점에 해당하고, 대상들에게 휴식과 식량을 공급한 요새화된 대상 숙박소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부근의 광산에서는 현재 이스라엘의 광부가 일하고 있다. 이 Tell-el Kheliefeh 그 자체는 항구는 아니고 Eziongeber의 위성지역이라고 확정하였다. 고고학적으로 아직도 ‘솔로몬의 항구’의 정확한 위치는 확정되지 않았다.
구리 광산의 채굴과 제련을 행했던 장소가 시나이 지방에서도 발견되었다. 이집트를 탈출한 기간에 이스라엘인들이 머물었던 곳으로 돕가(Dophkah)(민수 33,12)가 있는데, 이 지명은 어원적으로 "제련소(smeltery)"를 의미하며, 현재의 Serabit el-Khadem으로 확인되었다. 이곳에서는 구리와 터키옥(turquoise)이 산출되었으며, 예로부터 이집트왕조의 왕실 광산이 있었으며, 수에즈만 기슭을 따라 이집트 왕이 건설했던 도로가 있었다.
이집트가 시나이 반도를 정복했던 것은 기원전 3000년경 제1 왕조의 7대 세메르헷의 시대이고, 그 후 역대의 왕들이 많이 출병하였다. 이 지역에 최초로 광산 채굴을 위해서 탐험대를 파견했던 것은 제4 왕조의 창시자인 스네풀이었다. 채굴은 도중에 몇 차례 중지되었지만, 기원전 12세기 중반의 제 20왕조 라암세스 5세의 시대까지 계속되었다. 광산의 수호 여신 하도르의 신전은 각 왕조의 역대 왕에 의하여 계속 이어서 증축 확대되었다. 이 신전의 부근에서 알파벳의 최초의 것이라고 불러지는 ‘原시나이 문자’(Proto-Sinatic Inscription) 문서가 발견되었던 것은 중요하다. 이것은 이집트의 상형 문자에서 가나안-히브리 문자로 이행하는 시기를 나타내는 문자로, 아마도 채굴에 고용되었던 가나안인 노동자가 사용했던 것으로서, 기원전 15세기의 것이다. 출애굽 기간에 이스라엘인들이 이 광산의 입구 부근에서 노숙하였다면, 당시 이집트왕의 시나이반도에 대한 지배권이 약화되었기 때문에, 구리 광산의 채굴이 일시 중지되어 이곳에 주재하였던 이집트인들도 본국으로 돌아간 시기였으리라고 생각된다.
욥(Job)이 "쇠는 땅에서 파내고 구리는 광석에서 녹여 내지 않는가."라고 말한 것은 구리광산이나 구리광석에서 구리를 제련하는 것을 나타낸다(욥기 28,2). 즈가리야가 4대의 병거(chariot)의 환영에 대하여 말했다. "또다시 고개를 들고 보니, 놋쇠로 된 두 산에서 병거 네 대가 나오는데"(즈가 6,1). 놋쇠로 된 산(mountains of brass)이라고 말했던 것은 구리 광산이거나 구리 광석이었던 것이 틀림이 없다(즈가 6,1).
이스라엘인들은 구리를 수입했던 것이 틀림이 없겠지만, 이집트인들은 Gizeh의 큰 피라미드를 세웠던 Cheops의 시대 이전부터 구리를 채광하였다. “기띰의 섬들”(the isles of Chittim)에는 아마도 구리 광산으로 유명한 Cyprus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야완(Javan)과 두발(Tubal)과 메섹 (Meschech)도 너와 무역을 했다. 노예와 놋제품을 주고 네 상품들을 사 갔다"(에제 27,13). 로마시대 훨씬 이전부터 구리 광석과 그 구리의 지금(ingot)은 Cyprus로부터 수출되었다. 이 금속은 로마인에게 aes cyprium ("ore of Cyprus"), 이어서 cyprium으로 단축되었고 후에 cuprium으로 변했으며, 이것에서 "copper"라는 영어 이름이 유래하였다. Cyprus의 광산은 현재도 얼마간 구리를 산출하고 있다. 이 섬의 New Paphos (Old Baffa)의 주민들은 Venus를 숭배하였다. 연금술자들에게 Venus는 구리의 상징이었다.
많은 청동이 성막을 짓고 설비하는데 사용되었다(출애 25,3; 27,17-19). 솔로몬 왕의 성전에서 청동이 다량으로 사용되었다. 솔로몬 왕이 성전과 그의 궁을 짓기 시작했을 때, 유능한 기술자가 없어서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띠로(Tyre)의 히람(Hiram 또는 Huram)왕에게 기술자 한 사람을 보내 주기를 요청하였다. "이제 본인은 당신에게 금은과 놋쇠와 쇠를 다룰 줄 알며, 붉은 비단, 진홍 비단, 자주 비단을 짤 줄 알며 조각도 할 줄 아는 기사 한 사람을 청합니다. 다윗 선왕께서 길러 주신 기술자들이 유다와 예루살렘에 있습니다. 이 사람들을 데리고 일을 할 기사를 보내 주십시오."라고 서술하였다(2역대 2,7). 히람 왕은 답하면서 명철한 기술자를 파견하였다. 그 기술자의 이름도 히람이었다. 히람이 솔로몬 왕을 위하여 신전에 필요한 여러 종류의 크고 정교한 주물을 청동으로 만들었던 것이 틀림이 없으며, 그 내용이 상세히 서술되어 있다. “띠로에서 청동기술공 히람을 초대해왔다. 왕은 요르단 평야 수꼿(Succoth)과 사레단(Zarthan) 사이의 진흙바닥에서 그것들을 녹여 부어 만들었다”(1열왕 7,13-51). 이들 큰 주물들은 진흙 거푸집에서 만들어졌던 것은 분명한 것 같다.
molten sea(1열왕 7,23; 2역대 4,2) 또는 brasen sea(2열왕 25,13; 1역대 18,8; 예레 52,17)는 솔로몬의 성전의 뜰에서 제단과 현관 사이에 있었던 청동으로 만든 대야(bronze basin)로 거대한 용량을 가졌었다. 기원전 518년에 예루살렘이 함락되었을 때, 바빌론 사람들이 이것을 파괴하여 가져갔다.
골리앗(Goliath)의 갑옷은 역시 청동의 갑옷이었다. "머리에는 놋투구를 썼고 비늘갑옷을 입었는데 그 갑옷의 무게는 놋 오천 세겔이나 나갔으며 정강이에는 놋으로 만든 정강이받이를 찼고 어깨에는 놋으로 만든 창을 메고 있었다."(1사무 17,5-6). 청동은 사슬을 만드는데(판관 16,21), 우상을 만드는데(다니 10,6) 사용되었다.
구리와 청동은 자주 갑옷을 만드는데 사용되었다, 그래서 전쟁의 전리품 가운데 있었다. 또한 성막에서, 휘장의 걸쇠, 받침, 제단을 입히는데, 제단에 사용할 그물망과 고리, 제단의 채들을 입히는데, 기둥의 받침과 말뚝못, 물두멍, 물독, 삽, 물뿌리개, 단상(scaffold)을 만드는데 사용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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