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화학] 성서에서 언급되는 빛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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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4-11-07 | 조회수5,438 | 추천수0 | |
성서에 언급되는 빛
1. 성서에서의 빛
농경사회 이후에서는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나 중국에서도 그렇지만, 농업은 당연하게도 자연에 의존하는 경우가 강한데, 특히 태양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단지 밝고 어두운 것만이 아니고, 생명의 원천이 되는 식량을 생산해주고 생명을 주는 태양에 대한 신앙이 강해진다. 이집트에서의 태양 신앙과 메소포타미아에서의 태양신의 존재는 그러한 인간의 역사를 반영하는 것일 거다. 따라서 그리스도교에서 빛에 대한 생각은 동시에 다른 종교와도 깊은 관계가 있다. 이 빛이 인간에 매우 가치가 있다는 것을 성서에 자주 볼 수 있다. 몇 가지 예를 보기로 한다.
창세기 1장 1-2절은 천지창조 설화로서 확실히 하느님이 창조주이며, 무질서와 아무런 형체가 없고 생명이 없는 황량한 상태였음을 묘사하고 있다. "하느님께서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겨났다. 그 빛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았다, 하느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시고"(창세 1,3-4). 후에 바오로(Paul)는 이 빛과 어두움의 분리를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의와 불법의 분리에 적용시킴으로써 도덕적, 종교적 성결의 원리로 확대 해석했다(2고린 6,14). 이러한 사상은 그리스도교뿐만 아니다. 조로아스터교(拜火敎)는 선과 악이 분명한 2원론인데, 빛의 신과 악의 신이 있다. 이슬람교에서 마호메트의 말 중에도 빛과 신은 동일시되고 있으며 코란에 ‘光의 章’이라는 것이 있다.
무엇보다 빛은 생명의 원천이다(전도 11,7; 욥기 33,30). ‘빛을 본다’는 말은 흔히 ‘살아 있다’(욥기 3,20; 시편 49,19), 또는 ‘태어난다’(욥기 3,16)라는 말과 동의어로 사용된다.‘생명의 빛’이란 표현을 욥기 33,30, 시편 56,13에서 볼 수 있다. 생명이 기쁘게 쓰일 수 있을 때 그 생명은 참다운 생명이기에, 빛은 종종 생명의 기쁨을 가리키기도 한다(욥기 10,22. 30,26; 시편 97,11; 이사 45,7. 60,19-20). 또한 빛은 기쁨에 이르는 희망을 갖게 한다(시편 112,4).
빛과 진리는 시편 43, 3에서 짝지어져 있음을 볼 수 있다. "당신의 빛, 당신을 길잡이로 보내시어 당신 계신 거룩한 산으로 이끌어 주소서". 빛은 하느님의 율법이다(시편 119,105; 잠언 6,23; 이사 51,4). "당신의 말씀은 내 발에 등불이요 나의 길에 빛이옵니다."(시편 119,105) "그 훈계는 횃불이 되고 그 가르침은 빛이 된다."(잠언 6,23) 지혜를 얻는 것은 빛을 추구하는 것이다. "지혜는 영원한 빛의 찬란한 광채이며, …"(지혜 7,26). 현명한 사람은 빛을 낸다. "슬기로운 지도자들은 밝은 하늘처럼 빛날 것이다"(다니 12,3). 진리와 율법의 빛은 인간에게 지식을 주고(시편 19,8; 139,11-12), 인간을 안내함으로써(신명 28,29; 욥기 12,24-25; 22,28; 잠언 4,18; 6,23; 이사 42,16; 미가 7,8) 인간에게 영향을 미친다.
대체로 신약성서의 용법은 구약성서의 용법을 따른다. 신약성서는 빛을 하느님과 동일시하는 헬레니즘적 신비주의와는 달리 빛이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강조한다. '하늘의 빛들을 만드신 아버지"로서 하느님은 모든 좋은 선물들의 원천이다(야고 1,17). 그리스도 교인은 빛 속에 있어서 ‘빛의 자녀’로서 행하여야 한다(에페 5,8). 요한에 의하면 하느님은 빛이고(1요한 1,5), 예수는 세상의 빛이다(요한 8,12; 9,5).
2. 빛과 미술
서양 미술에서 빛을 표시하는 방법을 살펴보자. 빛을 선으로 취급하고 있다. 그래서 광선이라고 부르는데 빛의 선이라는 의미이다. 어린이가 태양을 그림으로 그리면 둥근 원을 그리고 주위에 방사선을 그어서 태양이 빛나고 있는 느낌을 나타낸다. 요컨대 선으로 빛을 나타낸다. 이것은 빛이 똑바로 나아간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빛을 원반으로 표시한다. 빛을 내는 별을 이른 바 별 모양으로 표시한다. 이것은 방사선의 한 변형으로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끝이 있는 형태로 별을 표시한다. 태양이나 달은 보통 원형으로 표시된다. 사실로 태양이나 달은 그렇게 보인다. 빛이 나는 것은 그 주위에 빛을 갖고 있기 때문에, 빛나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서 금이나 노랑색의 밝은 원반을 사용한다. 그것을 접시 모양이나 바퀴(輪) 모양으로 나타낸다. 이것을 원광(圓光) 또는 원반으로 부른다. 얼굴이나 머리의 주위에 밝고 빛나는 원광을 그린다. 회화나 조각에서 불상 그리스도, 천사 등 신성한 존재자 배후에 둥글게 광명(halo)을 나타낸 것을 광배(光背)라고 부른다. 몸체(胴身) 주위의 것은 신광(身光), 전신(全身) 주위의 것은 거신광(擧身光)이라고 부른다. 부처의 몸 뒤로부터 비치는 광명(光明)을 후광(後光)이라고 부른다.
이런 원반, 광배가 중세의 그리스도교 미술에서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그리스도나 성자(聖者)의 머리 위에 광배를 나타낸다. 그리스도교의 경우에는 하느님도 인격신(人格神)인데, 그것을 그림으로 그릴 때에는 하느님의 모습과 인간의 모습을 구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하느님은 특별한 존재로 '세상의 빛'이므로 머리 위에 원광(圓光)이 있는 모습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인간 중에서도 선택된 성자나 위대한 사람은 원광을 그려서 보통 사람과 구별한다. 원광 속에 십자가가 들어 있는 것이 있다. 이것을 십자원광(十字圓光)이라고 부른다. 십자원광과 보통의 원광은 의미가 다르다. 십자원광은 삼위일체에만 사용한다. 이것은 거의 기호화(記號化)되어 단순히 머리 위에 원을 그려 놓은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원래는 빛의 표현이었다. 따라서 그런 형태의 기호화된 광배도 포함하여 중세(이것은 르네상스 이후에도 약간 남아 있다)에서는 빛의 표현이 조형화(造形化)되어 있었다고 말 할 수 있다.
미켈란젤로의 조각으로 ‘모세’란 것이 성 베드로 인 빈고리 성당에 있는데 복제품이다. 미켈란젤로에 한 하지 않고 모세의 상(像)은 늠름한 예언자의 모습으로 보이는 것이 보통이지만, 가끔 머리에 뿔이 난 형으로 표현되고 있다. "모세의 뿔(角)"이라고 부른다. 미켈란젤로의 ‘모세’에도 뿔이 있다. 언뜻 보면 짐승의 모습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것은 모세의 머리에서 빛이 나오고 있는 것을 나타낸다. 요컨대 원광이 아니고 방사선으로서 머리에서 빛이 나오고 있다고 말하는 것을 뿔의 형태로 나타낸 것이 그 유래이다. 그것은 모세가 하느님과 대화를 한 후에 내부에 새로운 힘을 얻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래 구약성서의 라틴어 역에도 ‘빛’이 ‘뿔’로 번역되어 있어서, 이런 형태가 나오게 된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에서도 중세의 전통은 크게 남아 있지만, 좀 더 자연의 빛, 현실의 빛이 크게 의식되게 되었다. 르네상스 이후에는 인간이 현실세계에 눈을 뜨는 시대이므로 현실을 보는 눈이 예리하게 되었다. 이 현실세계를 표현할 때에 현실이라는 것은 빛에 의하여 우리들의 눈에 보이는 것이고, 자연현상의 빛이 사람들의 의식에 강해지게 되었다. 이것은 미술에서 매우 주요한 의미를 갖는다. 인간이나 물체의 형을 표현할 때에 그 빛의 작용에 의하여 대상의 형을 그럴듯하게 묘사하려는 방법이 생기게 되었다. 이 사실주의적 욕구에서 한 수단으로서 빛과 그림자가 강조되게 되었다. 그리스 시대에서도 그러한 음영법(陰影法)이 매우 약간 유품을 통하여 남아 있다. 중세에서는 그러한 것이 없고, 오히려 빛은 정신적 상징적인 것으로 받아드려졌다.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고대보다 훨씬 치밀한 형태로 명암법이 완성되었으며, 3차원적인 공간 표현의 중요한 것으로서 원근법이 등장하였다.
3. 빛과 계몽주의
서양 과학이 지금과 같은 유물론적 색채를 강하게 띄게 된 것은 18세기의 계몽주의가 부흥한 이후의 경향으로 보인다. 계몽주의는 17세기 후반 명예혁명의 영국에서 시작하였지만, 특히 18세기의 프랑스에서 하나의 정신운동으로 크게 고조하였다. 그래서 그 운동은 독일이나 미국에도 비화하였다. 그 때의 프랑스인은 18세기를 ‘빛의 세기(世紀)’(si cle des lumi res)라고 불렀다. 그것은 이성(理性)이라는 빛(光)을 쪼여서 밝게 되는 시대를 상징하는 말이었다. ‘계몽주의’에 해당하는 영어의 Enlightenment와 독일어 Aufkl rung(이것은 같은 시대의 철학자 칸트가 이 시대를 평하여 처음으로 사용했던 용어라고 한다)의 원래의 의미도 ‘빛으로 밝게 하는 것’이고, 그것은 사람들의 무지몽매(無知蒙昧)라고 말할 수 있는 어두움에 이성이라는 빛을 쪼인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빛으로 상징되는 ‘이성’(영어 reason, 불어 raison)은 이 시대의 키워드(key-word)였다. 그것은 사람들의 의식 중에 17세기부터 화사하게 발전을 계속하는 ‘과학’의 이미지와 겹쳐있었다.
귀납법의 베이컨과 연역법의 데카르트와 역학의 뉴턴이 구축한 근대과학의 합리적인 정신에 촉발된 18세기의 프랑스의 계몽주의자들은 과학혁명이 단지 자연연구 뿐만 아니고 인간의 전체 활동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과학은 이성의 산물이고, 인간은 이 이성을 사용함으로써 과거의 잘못을 바르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계몽주의자들은 이성에 뿌리를 내린 새로운 지식이나 사고를 학식이 없는 일반대중을 ‘계몽’하여, 구시대의 불평등하고 부자유한 정치형태, 사회제도, 종교사상, 습관을 타파하여 개혁하려고 하였다. 종래 사람들이 마음의 양식으로 하였던 종교 대신에 근대과학―특히 뉴턴의 과학체계―이 이를 위한 좋은 수단으로 사용하여 과학적 반종교적인 태도를, 자연인식 뿐만 아니라 법과 인간사회의 기원이라고 하였던 사회인식에도 적용하여 구체제(ancien regime)를 예리하게 비판하였다. 따라서 계몽주의는 근대과학 탄생의 충격(impact)을 받아서 일어난 일종의 반체제 운동이었다. 영국에서는 17세기말에 시민혁명이 성취되었지만 프랑스에서는 18세기에 들어서도 절대주의가 지속하였다. 18세기에서 영국에서 보다 프랑스에서 특히 현실비판으로서 계몽주의가 크게 고조되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계몽주의자는 이성(理性)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여서 그리스도교의 해석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신론(理神論, deism)은 종교를 이성의 빛 아래서 파악하려는 것이다. 이신론은 특히 영국에서 세계를 연구함으로써 신의 존재와 기능을 논증하려고 하는 자연신학(natural theology)의 전통 속에서 발전하였다. 영국의 Thomas Tymme(-1620년)이 1612년에 쓴 다음의 한 구절은 당시의 자연탐구자의 신과 자연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을 단적으로 말하고 있다. "하늘과 땅을 만들어 낸 전지전능한 창조주는 2권의 가장 중요한 책을 우리들의 눈앞에 내밀어 보였다. 한 책은 자연이라는 책이고, 다른 한 책은 성서이다". 뉴턴의 사상은 이런 흐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뉴턴에 의하면 신은 세계를 창조하고 자연법칙을 준 후에도 항상 세계에 계속하여 존재하여 지배와 감독을 계속한다. 이신론자이고 열렬한 뉴턴 주의자였던 볼테르는 세계질서의 지적 창조자로서의 신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인격신(人格神)을 인정하지 않고 성서의 모순을 폭로하였다. 젊은 날에 파리(Paris)에서 추방되어서 망명지인 영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모국 프랑스의 ‘후진성’을 비판하여 쓴 ‘철학서간(영국 소식)’(영어 초판 1733, 불어 초판 1734) 중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나는 철학의 빛에 근거하여 언급하고 있는 것이고, 신앙의 계시에 근거한 것은 아니다. 인간적 견지에서 생각하는 것만이 나의 의무이다. … 이성과 신앙은 상반하는 것이다."
4. 빛과 문학
단테는 제 10천(天)에 이르러 먼저 불덩이를 내뿜는 빛의 강을 보고, 드디어 하얀 장미와 같이, 성자들에 둘러싸여 있는 신을 본다(신곡 천국편 제 30곡, 31곡). 밀턴(Milton)의 실낙원(Paradise Lost) 3권은 빛에 대한 찬미로부터 시작된다. ‘기쁘다, 성스런 빛이여 하늘의 초생아(初生兒)여영원한 분과 공존하는 영원의 빛이라고 너를 부름이 옳은가. 하느님은 빛이라, …’
Hall, holy Light, offsprings of Heaven first born! Or of the Eternal coeternal beam May I express thee unblamed? since God is light,…
뉴턴에 관한 Alexander Pope(1688-1744)의 4행의 시를 소개한다. Nature and Natur's law lay hid in night God said: 'Let Newton be!' And all was light
(자연과 자연의 법칙이 어두운 밤에 묻혀 있었다. 신이 말하였다: '뉴턴이여 깨어나게 하라'라고 하였더니 자연과 자연의 법칙이 밝아졌다).
아놀드(Sir Edwin Arnold)의 작품에 정교한 언어로 석가모니의 인생과 가르침을 쓴 서사시, The Light of Asia(1879)가 알려져 있다. 또한 아놀드의 작품으로 그리스도교의 주제를 다룬 The Light of The World(1891)도 있다. 키플링(Rudyard Kipling)의 소설에 The Light That Failed(1890)가 있는데, 화가가 시력을 잃고 눈이 점점 멀고, 여자로부터 퇴짜를 맞는다는 이야기이다. 빛과 어두움의 대비는 선과 악, 진실과 거짓의 대비로도 다루어진다. 위고(Hugo, Victor-Marie)의 “징벌시집”(1853)에는 序詩 ‘녹스(밤, 어두움)’와 終詩 ‘룩스(빛·희망)’가 있고, 중간에 ‘스텔라(새벽의 샛별’의 시가 있어서 ‘자유의 천사와 광명의 거인’이 올 것을 알린다. William Faulkner의 작품에 Light in Autumn(1932)이 있다.
5. 빛과 화학
그리스에 새벽의 여신, Eos가 있다. 로마 신화의 Aurora에 해당한다. 그녀는 새벽이 되면 두 마리의 말이 끄는 전차에 타고서, 하늘로 올라가 하늘의 문을 여는 일을 한다. 그 때에 그녀의 아들 Phosphoros는 날개가 있는 요정의 모습으로, 손에 횃불을 들고, 언제나 마차의 선두에 서서 새벽하늘을 마차를 몰아서 나아가므로 그는 "새벽의 샛별(金星)"이라고 불리어진다.
테트라브로모푸르오르세인의 나트륨염은 진한 붉은 색을 나타낸다. 새벽의 여신 에오스가 새벽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것을 생각해 내어 eosine이라고 명명하였다. 에오신의 수용액은 짙은 갈색이지만, 묽히면 황적색이 되고, 녹색 형광을 발한다. 붉은 잉크의 재료로서, 특수 연료의 착색제나 분석시약으로 사용되고 있다.
1669년 함부르크의 연금술자 H. Brand가 오줌을 증발하여 얻은 물질이 어두운 곳에서 빛을 내고, 공기에 접하게 되면 자발적으로 타오르는 진기한 성질을 갖는 것을 발견하고, 새벽의 밝은 샛별 Phosphoros를 연상하여 phosphorus라고 명명하였다. 더욱이 당시에는 발광하는 모든 것을 phosphorus라고 부르고, 그 중에는 인 이외의 것도 포함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phos는 그리스어로 "빛", phors는 "운반하다"라는 의미이다. 이들 어휘로부터 다양한 파생어가 생겼다. 또한 독가스인 phosgene은 Cl2와 CO의 같은 부피를 햇빛에 쪼여 얻었기 때문에 "빛에서 생긴 것"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이어서 이 phos가 변형한 것이 phtos로 photochemistry, photometer, photophobia(광선공포증) 등의 용어가 있다. 한편 phors(운반하다)에서 파생한 단어에 photograph, ionophoresis(이온이동법), ionosphoresis(이온영동), electrophoresis(전기영동), ionophore(이온운반물질), 의학용어로 phorology(보균자 조사), iontophoresis(이온침투요법) 등으로 모두 무엇인가 운반되는 것이다.
원소의 이름에서 빛과 관련된 것이 있다. 헬륨(helium)은 1886년 인도에서 일식이 관측될 때, 태양광선 스펙트럼 중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었는데, 태양에서 연유하여 그리스어의 helos(태양)에서 명명되었다. 루비듐(rubidium)은 1861년에 발견되었는데, 그 스펙트럼 선이 붉은 색이므로 라틴어 ruber(붉은)에 연유하여 명명되었다. 세슘(cesium)은 1860년에 R. W. Bunzen에 의하여 발광스펙트럼에서 발견되었다. 그 때 나타난 2개의 스펙트럼 선이 회청색이어서 라틴어의 caesius(회청색의)에서 명명되었다. 라듐(radium)은 방사선을 내기 때문에 라틴어 radius(광선, 방사선)에서 명명되었다. 라돈(radon)은 라듐에서 생성하는 것이 확인된 것에서 이 이름이 명명되었다.
다양한 광화학반응 중에서 식물에 의한 광합성이 관심을 끈다. 이 광합성은 가시영역의 빛에 의하여 탄수화물이 합성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물이 산소와 수소로 분해되는 과정이 포함되고 있기 때문이다. 수소는 인류의 궁극적인 에너지(연료)라고 한다. 그 이유는 수소가 갖는 아래와 같은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 무진장한 물에서 쉽게 얻을 수 있다. ㉡ 1kg당 발열량은 가솔린의 3배로 약 34,000 kcal이다. ㉢ 연소 속도는 빠르고 또한 연소 생성물은 물 뿐으로 자연 환경계를 혼란시키지 않고, 공해도 발생하지 않는다. ㉣ 연소, 연료전지, 수소 엔진 등의 수단을 사용하면, 열, 전기, 기계 에너지로 변환될 수 있으며, 에너지 이용의 호환성이 우수하고 그 적용 분야가 다양하다. ㉤ 전력은 저장이 곤란한데 비해서 수소는 저장이나 수송이 용이하다. 이런 장점이 있다. 특히 수소가 연료로서 주목을 끌게 된 것은 1973년 제1차 오일 쇼크 이후이다. 엽록소와 유사한 모델 화합물을 합성하여 가시영역의 빛을 이용하여 물을 광분해하는 방법이 현재 연구되고 있으며, 녹색 조류가 생산한 유기화합물을 분해하여 수소를 생산하는 방법이 개발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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