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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 정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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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7 조회수5,734 추천수2

[성서의 풍속] 정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

 

 

여행을 하던 중 비행기 안에서 전통 유다인 랍비 복장을 한 사람이 일반 기내식과는 다른 음식을 먹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나중에 안 이야기지만 모든 나라의 비행기에는 유다인의 음식이 준비돼 있어서, 비행기를 타기 전에 미리 주문하면 자신들의 음식을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세속에서 다시 한번 유다인의 힘을 느낄 수 있어 부럽기조차 했다. 우리도 다른 나라로 여행할 때 한식을 주문해서 먹을 수 있는 날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

 

음식에 대한 유다인 율법 규정은 무척 까다롭다. 먹을 수 있는 정한 음식과 먹을 수 없는 부정한 음식이 분명하게 구분돼 있다. 유다인이 먹을 수 있는 정결한 음식을 '코셔 음식'이라고 한다. 성서에서도 정결한 동물과 불결한 동물이란 용어는 노아 시대 때부터 사용되었지만(창세 7장 참조), 더욱 정확한 규정은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에게 받은 말씀에 자세하게 기록돼 있다(레위 11장 참조).

 

"나 야훼가 너희 하느님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스스로 거룩하게 행동하여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너희는 땅 위를 기어다니는 길짐승에 닿아 부정하게 되어서는 안 된다. 나 야훼가 너희 하느님이 되려고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올라오게 한 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여야 한다. 이것이 짐승과 새와 물에서 우글거리며 사는 모든 동물과 땅 위를 기어다니는 모든 동물에 관한 규정이다. 이 규정으로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이 구별되고, 먹을 수 있는 동물과 먹을 수 없는 동물이 구별된다"(레위 11,45-47 참조).

 

'거룩하다'라는 것은 '따로 떼어두다' 혹은 '구별하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즉 특별히 하느님의 부르심으로 구별된 유다인들은 정한 짐승, 물고기, 그리고 새 종류들만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레위 11장; 17장, 참조).

 

음식 규정에 의하면 네 발 달린 짐승 중에서 굽이 두 쪽으로 갈라지고 새김질하는 동물만 먹을 수 있다. 이 두 가지 조건을 다 갖추지 못한 낙타나 오소리, 토끼, 돼지 등은 부정한 동물이므로 먹을 수 없다.

 

물고기도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어야만 먹을 수 있는 정한 물고기에 속한다. 따라서 뱀장어나 미꾸라지, 게, 새우는 먹을 수 없다. 새 가운데 독수리, 수염수리, 흰꼬리수리, 검은 소리개, 각종 붉은 소리개, 각종 까마귀, 타조, 올빼미, 갈매기, 각종 매, 부엉이, 따오기, 고니, 각종 푸른 해오라기, 오디새, 박쥐 등은 부정한 것으로 먹을 수 없다.

 

그리고 네 발로 걸으며 날개가 돋친 곤충은 모두 다 부정하다. 그러나 곤충 가운데서 각종 메뚜기, 방아깨비, 누리, 귀뚜라미 등은 먹을 수 있다. 또한 배로 다니는 뱀 종류의 양서류는 식용으로 금지했다. 자연사한 짐승의 고기나 불결한 짐승에서 나온 젖도 식용으로 금했다.

 

이렇게 까다로운 음식에 관한 율법은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우선 음식법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도덕적 교훈을 주려고 했다는 주장이 있다. 예를 들면 새김질하는 동물을 먹으라는 명령은 하느님 말씀을 항상 명상하며, 되새김질하라는 교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성서를 너무 인간적으로 해석한 지나친 풍유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불결한 음식은 의학적으로 좋지 않기 때문에 식용을 금지했다는 해석도 무리가 있다. 그리고 가나안 종교를 따르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지를 시험하기 위함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성서에서는 하느님이 거룩하기 때문에 이스라엘도 거룩해야 한다는 넓은 의미만을 기술할 뿐이다(레위 19,1 이하). 까다로운 음식에 관한 율법은 하느님 거룩하심의 관점, 즉 종교적 의미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음식을 구별하면서 하느님이 구별되신 거룩하신 분이고 이스라엘 사람들도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구별되어 거룩하게 되었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고 기억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음식에 관한 율법은 하느님께 대한 경외와 함께 감사의 표시이기도 하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일상생활에서 한시도 음식과 떨어져 살 수 없다.

 

그러므로 일상생활에 밀접한 음식에 관한 율법은 우리가 항상 하느님의 거룩하심을 기억하고 자신도 구별된 존재임을 깨닫도록 해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음식법도 도덕법과 마찬가지로 그것을 지키는 자의 마음가짐이 중요했다.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마음이기 때문이다.

 

[평화신문, 2003년 4월 6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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