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문화] 부러움과 경멸을 받는 유다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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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4-11-07 | 조회수3,741 | 추천수0 | |
[성서의 풍속] 부러움과 경멸을 받는 유다인
유다인이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사는 민족인지를 이해하는 것은 성서를 이해하는 데 대단히 중요하다고 본다. 유다인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셈족으로, 히브리어를 사용하고 유다교를 믿는 민족을 지칭한다.
유다인들은 B.C 2000년경 메소포타미아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했다. 그들은 고대에는 팔레스타인에 거주하였고, 로마제국에 의하여 예루살렘이 파괴되자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다가 19세기말에 시오니즘 운동이 일어나 1948년에 다시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을 세워 살고 있다.
B.C 10세기경 이스라엘 왕국이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로 갈라지고, 그 후에 바빌론 유배를 거쳐 고향으로 돌아온 이스라엘인을 모두 유다인이라 불렀다.
유다인들은 세계 각지로 유랑하여 그 땅의 인종, 민족과 섞여 살다 보니 문화와 종교도 다양하다. 즉 형질상 다수의 유다인은 백인이지만 일부는 유색인도 있다. 또한 종교적으로 유다교에서 다른 종교로 개종하거나 무신론자가 된 사람도 많다. 지금은 히브리어 사용자, 유다 문화의 보존자도 점점 감소하고 있다.
대다수 유다인은 전세계에 분산되어 있다. 유다인이란 넓은 의미로 형질·언어·문화·국적을 막론하고 자신을 유다인이라 생각하고 타인으로부터 유다인 취급을 받고 있는 자라 할 수 있다.
보통 유다인을 히브리인, 이스라엘인이라고도 부른다. 히브리인은 본래 외국인들이 유다인을 멸시하여 부르거나 사회적으로 신분이 낮은 사람들, 즉 노예계층 사람들을 가리킨 말이었다.
2차대전 때 나치 독일의 히틀러는 약 600여만명의 유다인을 가스실에서 학살했다. 지금도 여러곳에 보존되어 있는 수용소를 실제로 보면 끔찍한 당시 상황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히틀러는 왜 그렇게 많은 유다인들을 학살하려고 했을까? 히틀러 개인의 정신적 문제나 성적 결함에서 이유를 찾는 주장도 있지만 분명하지는 않다. 오히려 당시 유럽에 널리 퍼져 있었던 유다인에 대한 인종적 편견과 미움 때문이었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사실 유럽 역사에서 보면 유다인들은 계속해서 박해를 받으며 살아왔다. 오래 전부터 유다인은 이집트, 아랍, 인도, 이탈리아, 스페인 등지를 유랑하고 있었다. 4세기 로마제국의 그리스도교 국교화 이후 그리스도교인은 유다인과의 결혼, 농작물 분배 등을 금지했다.
그러나 중세 전기에 유다인은 지중해 연안 도시에서 상업교역에 종사하면서 점차 유럽 각지로 퍼져나갈 수 있었다. 당시는 가혹한 박해를 받지 않고 그리스도교도나 이슬람교도와 비교적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십자군전쟁 때 그리스도교도는 이교도와의 전쟁을 통하여 유다인을 이교도로 의식하고 적대시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유다인은 그 무렵부터 자연경제의 해체와 더불어 대두한 상업자본과 공업생산의 주류 대열에서 밀려났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그리스도교인에게 금지되어 있는 고리대금, 전당포, 환전상 또는 일반적으로 기피하는 고물상 등에 종사했다. 유다인들은 군주의 보호를 받기 위해서 많은 세금을 바치기도 했다.
그러면서 유다인들은 유럽 각지로 계속 퍼져나가 중세 말기에는 스페인과 폴란드가 유다인의 2대 근거지가 되었다. 그들은 대개 도시에서 살았으나 고유문화의 보호를 위하여 그리스도교도와는 지리적, 사회적으로 격리된 지역에 정착했다.
위정자는 이를 이용하여 유다인들을 '게토'라고 하는 강제 격리지구에 몰아넣었다. 유럽 경제의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상인, 금융가로서 유다인의 존재는 소수이지만 무시할 수 없었다.
또한 그들은 예로부터 익혀온 환경에 대한 적응력, 융통성을 발휘해서 경제활동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런데 이것은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비난 대상이 되었고, 유다인 박해를 가중시켰다.
오늘날에도 미국 등 세계에서 가장 큰 실제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민족을 유다인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많다. 수없이 많은 노벨상 후보를 배출한 것만 하더라도 유다인이 우수한 민족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또한 유다인들처럼 사람들로부터 부러움과 비난을 동시에 받는 민족도 드물다. A.D 70년 이스라엘 성전이 파괴된 후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세계 역사의 무대 전면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2000년 가까이 지난 후 다시 나라를 건설했다. 모진 박해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정체성을 유지하고 살아남은 것은 유다인의 끈질긴 민족성에 기인한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유다인 민족이 갖고 있는 유일한 야훼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그것을 가능케 했다고 본다. 유다인 역사는 다른 민족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는 것이 분명하다.
[평화신문, 2003년 4월 20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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