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문화] 하느님 말씀을 상징하는 등불과 촛대 | |||
---|---|---|---|---|
이전글 | 이전 글이 없습니다. | |||
다음글 | 시편 8편에 대한 고찰 | |||
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4-11-07 | 조회수4,500 | 추천수0 | |
[성서의 풍속] 하느님 말씀을 상징하는 등불과 촛대
- 촛대와 제의용 성물들, 20세기, 은, 예루살렘. 자료제공=정웅모 신부.
예로부터 사람들은 어둠을 무서워했다. 어둠은 악마와 귀신이 활동하는 시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밝은 빛에는 무서운 어둠의 세력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집트 신전에서는 신년을 맞이하는 밤, 섣달 그믐날 밤에는 등불에 불을 밝혔다. 고대 그리스, 로마 사람들은 등불을 삶의 상징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등불을 생명의 빛이라고 굳게 믿었던 그리스에서는 예언자들이 타는 불을 보고 예언하기도 했다. 또 악마를 물리치기 위해서 등불에 마술적 장식과 표시를 부착하기도 했다. 불을 밝히는 효과를 높이기 위해 등불은 보통 촛대 위에 올려진다.
서양에서는 밀랍이 이집트와 그리스에 일찍부터 알려져 B.C. 3세기에 이미 초가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촛대도 그리스 시대 말기에 발명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등불과 촛대는 사람들 생활의 아주 중요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17∼18세기부터 궁정 등에서는 은으로 만든 촛대를 사용하였으나 도자기와 청동 촛대도 제작되어 화려한 실내장식 역할도 하였다. 로마네스크 시대 열두 개의 작은 등불대를 가진 커다랗고 둥근 샹들리에는 빛을 발하는 거룩한 예루살렘을 암시했다.
가난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집에서 등불은 아주 흔한 것이었다. 가난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진흙으로 등을 만들었으나 부유한 사람들은 구리나 기타 여러가지 금속으로 등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밤새도록 등불을 켜 놓았다. 왜냐하면 불을 밝혀놓는 것이 안전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가족들 먹을 것이 떨어지는 한이 있어도 집 안의 등을 끄지 않았다. 등이 꺼진 집은 버려진 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등불은 가정의 품위와 삶을 상징하기도 했다.
성서에서는 하느님 말씀을 등불과 빛으로 비유했다. "당신의 말씀은 내 발에 등불이요, 나의 길에 빛이옵니다(시편 119,105 참조). 또 신약에 나오는 예수님의 비유에서 등불은 마음의 준비가 잘 되어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특히 슬기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의 비유, 등불과 등불용 기름의 예화는(마태 25,1-13 참조) 하느님 방문에 대비하여 항상 마음의 준비를 게을리하지 말라는 권고이다. 또한 등불은 그리스도교인들의 모범적 삶을 상징하기도 했다.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어두거나 침상 밑에 두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누구나 등경 위에 얹어놓아 방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그 빛을 볼 수 있게 할 것이다. 감추어둔 것은 나타나게 마련이고 비밀은 알려져서 세상에 드러나게 마련이다. 내 말을 명심하여 들어라. 가진 사람은 더 받을 것이고 가지지 못한 사람은 가진 줄 알고 있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루가 8,16-18 참조).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어두운 주위를 환히 밝히기 위해 등불을 켠다.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어두거나 침상 아래 두는 엉뚱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예수님은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으로 오셨고, 그를 믿고 따르는 이들을 세상의 빛이라고 비유했다. 모든 빛은 자신을 태워서 주변 세상을 밝힌다. 따라서 등불과 촛대는 빛과 밝음, 희생을 상징하고 있다. 그리고 요한묵시록에 나오는 일곱 개 팔을 가진 촛대는 일곱 교회로서 모든 교회를 상징한다.
가톨릭 성당에는 성체등이 항상 켜져 있는데 이것은 하느님 현존과 영원함을 표시한다. 성체가 모셔진 감실 앞에서 밤낮으로 켜져 있는 성체등은 그리스도의 항구한 사랑을 상징하며, 신자들에게 성체에 현존하는 그리스도에 대한 흠숭과 사랑을 일깨워 준다.
특히 성 토요일 부활 전야제에서 특별한 의식과 함께 축성된 부활초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한다. 부활초는 부활시기 동안 독서대 옆에 마련된 촛대에 세워져 미사와 성무일도 등 전례가 거행될 때 켜진다. 등불과 촛대는 생활의 도구로도 중요하지만 성서에 나오는 풍요로운 신앙의 상징이기도하다.
[평화신문, 2004년 7월 18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실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