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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 그리스도교 암호였던 물고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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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7 조회수7,234 추천수1

[성서의 풍속] 그리스도교 암호였던 물고기 그림

 

 

- 물고기와 닻, 3세기, 프리실라, 카타콤바, 로마. 자료제공 = 정웅모 신부.

 

 

가끔 시내에서 물고기 모양 그림을 뒤에 붙인 자동차를 볼 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자동차를 타고 있는 사람이 그리스도교 신자라고 짐작할 수 있다. 물고기 그림은 1세기 로마 카타콤바의 프레스코 벽화에서 발견된 후 초대 그리스도교 신자의 상징이 되었다. 초대교회 시대에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로마제국으로부터 큰 박해를 받았다. 이때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사람들은 피신하여 지하 공동묘지인 카타콤바 등지에 숨어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물고기를 그리는 것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자신의 신분을 다른 신자들에게 알리는 일종의 암호였던 것이다.

 

물고기란 뜻의 그리스어 '익투스'(ΙΧθΥΣ)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들 구세주'라는 고백의 의미를 가졌다. 왜냐하면 공교롭게도 예수(Ιησoυs), 그리스도(Χριστοs), 하느님(θεοs), 아들(Υιοs), 구세주(Σωτηρ)의 첫 머리 글자만을 따서 모아보면 물고기라는 그리스어 '익투스'(ΙΧθΥΣ)라는 단어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물고기란 단어에는 예수님에 대한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신앙고백이 담겨 있다. 박해가 한창일 때 초대교회 신자들은 의사소통과 신분확인을 위한 암호의 한 형태로서 땅이나 카타콤바 벽에 물고기 그림을 그렸다. 한 사람이 물고기의 반을 그려 놓으면 다른 사람이 나머지 절반을 그려 넣음으로써 서로가 한 신앙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했다.

 

또한 카타콤바는 공동묘지 역할과 함께 일종의 지하도시로서 내부로 들어오면 출구를 찾기 힘들 정도로 아주 복잡했다. 따라서 카타콤바는 현지 지리에 익숙한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몸을 숨기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신자들은 또 카타콤바의 미로에서 물고기 머리가 향하는 방향을 따라 자신들의 집회장소를 찾아왔다. 물고기 모양은 오늘날 십자가가 그리스도교의 상징인 것처럼 초대교회에서 믿음의 상징이 되었다. 카타콤바에서 발견된 물고기 형상 그림은 이전 로마 헬레니즘 미술에서 유래하였으나 이러한 신자들의 생각으로 의미가 새롭게 변화되었다.

 

고대 바빌론에는 지혜의 신이 천지창조 일년 후에 물고기 모습으로 육지에 와서 인간에게 밭을 가는 지식을 가르치고 학문의 기초를 가르쳤다는 전설이 있다. 인도 신화에서도 신이 물고기로 변신하여 인류의 시조를 홍수에서 구출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처럼 물고기는 다른 나라의 신화에도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물고기가 그리스도교 신자의 상징이 된 것은 성서의 사건들과도 무관하지 않다. 구약성서는 인간을 바다에 사는 물고기로 비유하고 있다. 성소에서 흘러나오는 기적의 물에 의해 다시 소생하는 물고기는 생명을 상징하는 의미를 지닌다(에제 47,9 참조).

 

제자들은 주님 말씀에 따라 그물을 다시 쳐서 그물이 찢어지도록 물고기를 낚았으며(요한 6,1-13 참조),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티베리아 호숫가에서 제자에게 생선을 구워 주셨다(요한 21,1-13 참조). 또 세금을 바칠 때 예수님 일행이 돈이 없어 곤궁에 빠졌을 때 시몬 베드로가 물고기 입에서 은전를 찾아낸 이야기가 나온다(마태 17,24-27 참조).

 

이러한 성서 이야기들은 예수님의 희생적 죽음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은총을 보여주는 사건들이다. 또한 예수님이 시몬과 안드레아 형제에게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고 하시면서 사람을 물고기에 비유하기도 했다(마태 4,19 참조).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아침식사로 만드신 숯불로 구운 물고기를 '수난의 그리스도'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평화신문, 2004년 9월 12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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