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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 성서의 세계: 뇌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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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7 조회수3,226 추천수0

성서의 세계 : 뇌물

 

 

기름 먹인 가죽이 부드럽다

 

우리 나라에 ’뇌물’이라는 낱말이 직접 들어있는 속담이나 격언은 없는 듯하다. 그러나 간접적이고 은근한 표현으로 뇌물의 행태를 적절히 꼬집어 드러내는 것들이 있다. 그 첫째가 "기름 먹인 가죽이 부드럽다."이다. 이러한 속담에는 사람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려는 어떤 도덕적 판단이 들어있지 않다. 두루 뇌물을 써놓으면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려간다는 세태의 한 면을 그냥 서술할 뿐이다.

 

사회가 법에 따라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뇌물의 필요성이 생긴다. 그러나 뇌물은 옳지 않다는 사실이 명백하기 때문에 그것을 주는 구실과 위장이 동원된다. 그래서 "부처님 위하여 불공하나."라는 속담도 생겼다. 부처님까지 동원하면서 자기의 이익을 도모하는 인간의 얄팍하고 상스러운 행실을 비아냥거리는 말이라고 하겠다.

 

우리의 선조들은 더 나아가서 필요악처럼 되어버린 뇌물의 부도덕성까지 아무런 꾸밈 없이 표현해 내기도 하였다. "쇠 먹은 똥은 삭지 않는다." "쇠"는 ’쇠 금(金)’으로서 돈을 가리킨다. 뇌물이 효과를 내기는 하지만 그것은 늘 구린내를 피워 주변 사람들에게 해가 됨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뇌물은 요술 보석

 

이와 비슷한 표현들을 구약성서의 지혜 문학에서도 볼 수 있다. 여기에서는 우리 나라의 속담과 달리 ’뇌물’을 직접 거론하면서, 그것이 발휘하는 효력과 그것이 가져오는 폐해를 부각시킨다. "뇌물을 주는 자의 눈에는 그것이 요술 보석 같아 그가 몸을 돌리는 곳마다 안되는 일이 없다"(잠언 17,8). 뇌물로 일을 처리하는 자는 더 이상 법대로 하지 못한다. 뇌물이 ’요술 방망이’ 같아 모든 일을 손쉽게 해내기 때문에, 그것을 포기하지 못한다. 사실 "몰래 주는 선물은 화를 누그러뜨리고 품속에 감춘 뇌물은 거센 분노를 가라앉히기" 때문이다(잠언 21,14). 뇌물은 이렇게 잘못을 저질렀을 때에 거기에 따른 벌을 피해갈 수 있게 해줄 뿐 아니라, 이른바 출세길을 터주기도 한다. "선물은 길을 넓혀주고 높은 사람들 앞으로 이끌어준다"(잠언 18,16). 여기에서 말하는 선물은 뇌물성 선물이다.

 

사실 선물과 뇌물의 구분은 많은 경우에 모호하다. 둘 사이의 선이 유동적일뿐더러, 뇌물은 곧잘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물로 포장되어 전달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호성이 히브리 말에서는 이미 그 용어 자체에서부터 시작된다. 히브리 말에서 ’뇌물’의 의미를 지닌 낱말이 네 개 있는데, 넷 다 때로는 선물을, 때로는 뇌물을 뜻한다.

 

이 말씀들은 일차적으로 도덕적이나 종교적 판단을 제시함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뇌물의 효능이 그렇게 좋으니 그것을 주고받으라는 뜻은 더 더욱 아니다. 우리의 속담처럼 인간사를 오랫동안 고찰한 끝에 뇌물과 관련된 세태를 있는 그대로 표현해 낸 것일 따름이다. 이스라엘의 현인들은 이러한 말씀으로 제자들에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로서, 대대로 이어져온 현실 체험을 바탕으로 그러한 뇌물이 사회에, 또 개인과 그 가정에 끼치는 해악을 펼쳐보인다. "악인은 품속에 감춘 뇌물을 받고 공정의 길을 그르친다"(잠언 17,23. 그리고 시편 26,10도 참조). "억압은 지혜로운 이를 우둔하게 만들고 뇌물은 마음을 파괴시킨다"(전도 7,7). "뇌물을 좋아하는 자들의 천막(=집)은 불이 집어삼켜 버린다네"(욥 15,34). "부정한 이득을 챙기는 자는 집안을 어지럽히지만 뇌물을 싫어하는 이는 잘살게 된다"(잠언 15,27).

 

 

너는 뇌물을 받아서는 안된다

 

뇌물은 일정한 직무에 종사하는 사람을 매수하여 자기 이익을 도모하려고 넌지시 주는 돈이나 물건을 뜻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일정한 형태의 조직사회를 이루어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직책이 있는 곳에는,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 뇌물이 있어왔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뇌물을 구약성서의 율법은 분명하게 금지한다. "너는 뇌물을 받아서는 안된다. 뇌물은 온전한 눈을 멀게 하고, 의로운 이들의 송사를 뒤엎어버리기 때문이다"(출애 23,8; 신명 16,19 참조). 뇌물을 금하는 이유는, 그것이 법을 집행하는 이들의 판단력을 흐트러놓아 공정과 정의를 왜곡시키고 법 질서를 파괴한다는 데에 있다. 그런데 율법에는 뇌물을 주고받는 증뢰죄(贈賂罪)와 수뢰죄(收賂罪)에 관한 처벌 규정이 없다. 그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뇌물의 모호성, 은밀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뇌물은 흔히 다른 명목으로 주고받을 뿐 아니라(잠언 18,16; 21,14 참조) 대개의 경우에 당사자들만 내밀히 관여하기 때문에(잠언 17,23; 21,14 참조), 그 범죄를 증명하는 데에 어려움이 따른다.

 

그렇다고 뇌물 금지가 이러한 말로만 끝나지는 않는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줄곧 뇌물의 해로움을 염두에 두었다는 사실을 두 경우에서 엿볼 수 있다. 신명기에 따르면, 이집트를 탈출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인들은 열두 가지 것을 하지 않겠다고 엄숙히 맹세하는데, 뇌물 수수가 그 가운데 하나이다. "’무죄한 사람을 살해하는 대가로 뇌물을 받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 하면, 온 백성이 ’아멘’ 하고 말해야 한다"(신명 27,25). 이렇게 뇌물은 판관이나 관리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모든 성인 남자는 재판에 직 간접적으로 관여하였다. 그래서 뇌물을 받는 것은 결국 "온 백성"과 관련되는 범죄 행위이다. 뇌물의 해악이 강조되는 두번째 경우는 이른바 ’성전 입당식’이다(시편 15와 24 참조). 일종의 참회 예절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예식 때, 하느님의 성전에 들어갈 수 있게 해주는 행동 또는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행위 몇 가지가 대표적으로 열거된다. 그 가운데에 바로 ’무죄한 이에게 해 되는 뇌물을 받지 않는 것’이 들어있다(시편 15,5. 이사 33,15도 마찬가지이다).

 

뇌물과 관련된 성서 말씀에서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위에서 인용한 지혜 문학의 몇몇 구절 외에는 뇌물을 주는 자에 대해서 별말이 없다는 사실이다. 뇌물을 주는 자는 약자이다. 반대로 뇌물을 받는 자는 다른 이들의 이익만이 아니라 때로는 생명까지도 좌우할 수 있는 강자이다. 그래서 성서는 이러한 강자들, 직책을 받은 이들의 책임을 강조한다. 이들이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기만 하면 뇌물은 효력을 상실하여 사회에서 점점 없어지는 것이다.

 

 

모두가 뇌물을 좋아한다

 

옛날 이스라엘에서는 뇌물 수수가 어느 정도 성행하였는가? 이 질문에 대답할 구체적인 자료를 우리는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성서에 나오는 두 가지 정황을 볼 때 이스라엘이 다른 데보다 특별히 깨끗한 사회였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우선 1사무 8,3에 이런 말씀이 나온다. "사무엘의 아들들은 그의 길을 따라 걷지 않고, 잇속에만 치우쳐 뇌물을 받고는 판결을 그르치게 내렸다." 사무엘은 늙자 두 아들을 이스라엘의 판관으로 임명한다. 그러나 그들은 훌륭한 아버지의 본을 따르지 않고 부정과 부패의 길을 걷는다. 두번째 정황은 유다 왕국의 개혁가 여호사밧 임금이 자기가 새로 임명한 판관들에게 하였다는 말이다. 곧 재판은 사람을 대신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을 대신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의나 차별 대우나 수뢰"가 아니라 그분에 대한 경외심 속에 직무를 수행하라는 것이다(2역대 19,4-7. 그리고 신명 1,17도 참조).

 

뇌물이 오가는 부패의 정도는 물론 한 나라에서도 시대에 따라 다르다. 아무튼 여러 예언서에서 우리는 선택된 백성의 두 왕국, 이스라엘과 유다에도 부패가 심하였으며, 예언자들은 날카로운 말씀으로 그러한 죄악을 단죄하였음을 볼 수 있다. 기원전 8세기에 활동한 아모스는 북부 이스라엘 왕국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정녕 나는 너희 죄악이 얼마나 큰지 알고 있다. 너희는 의인을 괴롭히고 뇌물을 받으며 빈곤한 이들을 성문에서 밀쳐내었다"(아모 5,12). "성문"은 재판이 열리는 곳이다. 권리를 침해당한 가난한 이들은 법의 보호조차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모스보다 조금 뒤에 남부 유다에서 예언자로 활약한 이사야도 비슷한 말로써 나라의 지도층을 질책한다. "지도자들은 반역자들이요 도둑의 친구들. 모두가 뇌물을 좋아하고 선물을 쫓아다닌다. 고아의 권리를 되찾아주지도 않고 과부의 송사는 그들에게 닿지도 못한다"(이사 1,23. 그리고 5,23도 참조). 같은 시기의 미가도, 아예 드러내 놓고 뇌물을 요구하고 그 뇌물에 따라 판결을 내리는 판관들과 관리들을 단죄한다(미가 3,11; 7,3).

 

기원전 587년부터 시작되는 유배 시기 때에도 사정은 별로 나아지지 않는다. 그래서 에제키엘은 선택된 백성의 수도 예루살렘에 하느님의 이름으로 이런 말씀을 선포한다. "네 안에서는 사람들이 뇌물을 받아 남의 피를 쏟는다. 너는 변리와 이자를 받고 이웃을 억압하여 착취한다. 그러면서 나를 잊고 있다."뇌물은 어느 사회에나 있을 수 있다. 하느님의 백성에게 특별한 사실은 에제키엘의 이 말씀처럼 뇌물도 하느님과 직결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세는 신명기에서 이렇게 선포한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신 중의 신이시고 주님 중의 주님이시며, 사람을 차별 대우하지 않으시고 뇌물도 받지 않으시고, 위대하고 힘세며 경외로우신 하느님이시다"(10,17. 그리고 집회 35,14 참조). 하느님께서 부정과 부패를 용납하지 않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분을 믿는 이들도 마땅히 뇌물을 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향잡지, 1999년 7월호, 임승필 요셉 신부(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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