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문화] 성서의 세계: 우림과 둠밈(툼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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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4-11-09 | 조회수10,938 | 추천수1 | |
성서의 세계 : 우림과 둠밈
다윗과 사울
다윗은 우여곡절 끝에 사울 임금의 사위가 된다(1사무 18,17-30). 사울이 순전히 정치적·군사적 목적으로 다윗을 이용하다가 마지못해 자기 딸 미갈을 그에게 내준 것이다. 그러나 사울은 다윗을 강력한 경쟁자로 여겨 제거하려고 한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다윗은 하는 수 없이 부하들을 이끌고 이리저리 떠돌게 된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는 크일라라는 고을을 불레셋인들이 공격하자, 다윗이 가서 그곳 주민들을 구한다. 다윗을 찾다가 그가 크일라에 있다는 소식을 들은 사울은 전군을 불러모아 그곳으로 진군할 채비를 한다.
이러한 사실을 안 다윗은, 에봇을 들고 자기에게 도망쳐온 에비아달 사제에게 그 에봇을 가져오라고 지시한다. 이어서 주님에게, 사울이 정말 자기를 치러 올 것인지 여쭌다. 그러자 주님이 “그가 내려올 것이다.” 하고 대답하신다. 다윗이 다시, 크일라 주민들이 자기와 부하들을 사울의 손에 넘길 것인지 묻는다. 주님은 이번에도 그렇다고 대답하신다. 주님의 대답을 들은 다윗은 부하들과 함께 다시 정처 없이 길을 떠난다(1사무 23,6-13).
그뒤에 불레셋인들은 이스라엘인들과 결전을 벌이려고 부대를 소집하여 수넴이라는 곳에 진을 친다. 사울도 온 이스라엘군을 모아 수넴 맞은쪽에 있는 길보아로 출동한다. 그러나 사울은 불레셋인들의 막강한 군사력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운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주님께 여쭈어본다. 불레셋인들과 전투를 벌여야 하느냐 마느냐를 물은 것이다. 사무엘서의 저자는 이렇게 전한다. “주님께서는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예언자를 통해서도 대답해 주시지 않았다”(1사무 28,6).
에봇과 우림-둠밈
이 두 이야기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에봇”과 “우림”이다. 둘 다 특정한 문제와 관련하여 하느님의 구체적인 뜻을 묻는 데에 쓰이는 물건이다. 우선, 민수기 27장 21절에서도 사무엘상 28장 6절에서처럼 “우림”만 나오지만, 보통은 “우림과 둠밈”이 짝을 이루어 나온다(탈출 28,30; 레위 8,8; 에즈 2,63; 느헤 7,65). 그리고 딱 한 번 신명기 33장 8절에서는 순서가 바뀐 “둠밈과 우림”이라는 표현이 쓰인다.
구약성서에서는 에봇이라는 용어가 세 가지 용도로 쓰임을 볼 수 있다. 첫째, “아마포 에봇”이라는 것이 있다. 이집트의 사제들에게서 볼 수 있듯이 허리 밑만 가리는 간단한 의복이다. 이스라엘에서는 본디 임금도 사제 역할을 하였는데, 다윗은 계약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갈 때에 이 에봇만 입고 계약 궤 앞에서 춤을 추며 행렬한다. 그래서 미갈 왕비는 알몸을 거의 드러내다시피 한 다윗에게, 임금답지 않게 처신하였다고 비아냥거린다(2사무 6,14.20. 그리고 1사무 2,18; 22,18 참조).
둘째, 대사제의 예복 가운데 하나이다. 탈출기 28장과 39장의 서술은 유배 곧 기원전 6세기 이후의 대사제 복장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유배 이전의 예복이 정확히 어떠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아무튼 본디 에봇은 금을 섞은 여러 가지 색실과 아마실을 가지고 띠처럼 길고 넓게 짠 천이었던 것 같다(탈출 28,6-14). 대사제는 이러한 에봇과 한데 연결된 “가슴받이”를 그 위에 걸친다(탈출 28,15-30). 이 가슴받이는 주머니처럼 생겼으리라고 추측되는데, 바로 그 안에 하느님의 뜻을 밝히는 데에 사용되는 우림과 둠밈이라는 물건이 들어있었다. 그래서 이 가슴받이를 “판결 가슴받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한 우림과 둠밈이 에봇과도 연결되기 때문에, 에봇이라는 말만으로 우림과 둠밈을 가리키기도 하였다고 판단된다(1사무 30,7과 호세 3,4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셋째, 에봇은 숭배의 대상이 되는 어떤 물건도 가리킨다. 기드온 판관은 적에게서 빼앗은 금으로 에봇을 만들어 자기 고을에 모심으로써 사람들이 우상 숭배에 빠지게 한다(판관 8,26-27). 그리고 미가라는 사제는 에봇과 함께 수호신들을 만들어 자기의 신당에 모셔놓는다(판관 17,5). 그 모양은 상자 형태였으리라고 생각된다.
이 세 에봇이 한 가지 물건을 말하는지, 서로 다른 물건들을 말하는지, 학자들이 여러 가지 설명을 제시하지만 그 어느 것도 확실한 해답이 되지 못한다. 아무튼 에봇은 사제나 대사제와 관련되며 궁극적으로는 하느님의 뜻이나 결정을 알아내는 데에 쓰이는 물건이라는 것은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에봇 자체가 직접 쓰이지 않고, 그 안에 들었거나 그것과 한데 묶인 가슴받이 안에 든 우림과 둠밈이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 정장한 대사제의 모습(암스테르담 성서박물관 소장) : 금방울과 석류 모형을 번갈아 달아 장식한 청색의 겉옷과 그보다 짧은 에봇과 그 위에 맨 에봇띠, 그리고 열두지파를 나타내는 열두 보석이 달린 가슴받이가 보인다. 이 가슴받이에 우림과 둠밈을 넣었다. 손에는 싹이 튼 아론의 지팡이가 쥐어져 있다(민수 17).
‘거룩한 제비’
그런데 우림과 둠밈이라는 히브리 말의 원뜻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물건과 함께 낱말도 이스라엘 이전의 가나안 문화에서 빌려온 것 같다. 그리고 우림과 둠밈을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었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금속이나 보석, 또는 나무로 주사위처럼 만들지 않았나 하고 추측된다. 이렇게 만든 두 개에 각각 다른 표시를 하였거나 색깔을 달리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는 우림, 다른 하나는 둠밈이라고 부른 것으로 보인다.
우림과 둠밈으로 하느님의 뜻을 여쭈어볼 때에는 질문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예컨대 위의 첫 이야기에서 본 대로, 다윗은 사울이 자기를 공격할 것인지 아닌지를 묻는다(1사무 23,11-12). 사제는 이러한 질문을 놓고 먼저 우림과 둠밈이 각각 어떤 답을 의미하는지 결정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주머니나 그릇 속에 든 우림과 둠밈을 흔들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둘 가운데 하나가 바닥에 떨어지면 그에 상응하는 답을 내놓았다. 사제는 때로 자기 나름의 해석을 덧붙여 조금 자세히 대답하기도 한다(1사무 30,7-8). 구약성서에는 ‘아니다’나 ‘하지 마라’처럼 부정적인 대답이 나오는 경우가 전해지지 않는다. 그 대신에 위의 둘째 이야기(1사무 28,6)에서처럼 대답이 없는 경우가 있다(1사무 14,36-37도 참조). 우림과 둠밈을 흔드는데 하나도 떨어지지 않거나 둘 다 떨어지면, 하느님이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우림과 둠밈을 대사제만 관장하였는지, 모든 사제 또는 특정 사제가 이 일을 하였는지 분명하지 않다. 탈출기 28장 30절과 레위기 8장 8절에 따르면, 대사제만 우림과 둠밈이 든 가슴받이를 걸친다. 그러나 신명기 33장 8절에서는 레위 자손 사제들이 다 우림과 둠밈을 이용하는 것으로 되어있다(에즈 2,63과 느헤 7,65도 참조).
우림과 둠밈의 용도는 제한되어 있었다. 우선 예로 든 두 이야기에서처럼, 임금인 사울, 그리고 이 임금의 경쟁자로서 독립된 무리의 지도자인 다윗이 에봇 또는 우림과 둠밈을 이용한다. 왕정 이전의 판관 시대에는 단 지파를 대표하는 다섯 사람이 자기들의 지파 일로 사제에게 주님의 뜻을 물어달라고 요청한다(판관 18,5-6). 또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는 우림과 둠밈을 통한 하느님의 결정에 따라 이스라엘인들을 이끈다(민수 27,21). 우림과 둠밈은 이렇게 임금을 비롯한 지도자들이 공적인 일로 하느님의 뜻을 묻는 데에 이용된 것이다. 이로써 우림-둠밈과 지난달에 살펴본 제비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이 드러난다. 우림과 둠밈은 곧 특수하고 공적인 경우에 쓰이는 ‘거룩한 제비’라고 할 수 있다.
예언과 우림-둠밈
그런데 다윗 이후 시대에는 이스라엘에서 우림과 둠밈을 이용하였다는 이야기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그 대신에 예언자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예컨대 9세기 중엽 유다 왕국의 여호사밧 임금은 옛 영토를 다시 찾으러 가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예언자들에게 하느님의 뜻을 묻는다(1열왕 22,5-6). 다윗 시대 같으면 우림과 둠밈을 사용하였을 것이다. 같은 시대에 시리아 임금이 북왕국의 수도 사마리아를 공격할 때, 북왕국의 임금 아합도 누가 반격의 선봉에 서느냐 하는 문제에 관하여 예언자에게 하느님의 뜻을 묻는다(1열왕 20,13-14). 그리고 기원전 7세기 후반부 요시아가 유다 왕국을 다스릴 때 성전에서 율법 책을 발견하게 되는데, 대사제 자신이 임금의 분부에 따라 하느님의 뜻을 알아보려고 훌다라고 하는 여예언자를 찾아간다(2열왕 22,3-20).
서두의 둘째 이야기는, 하느님이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예언자를 통해서도 사울에게 응답하지 않으셨다고 전한다(1사무 28,6). 이 셋, 곧 꿈과 우림`-`둠밈과 예언자가 옛날 이스라엘에서 하느님의 뜻을 알아보는 공인된 세 가지 방식이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다윗 이후, 솔로몬 시대부터는 예언자의 역할이 더욱 확대되어 우림과 둠밈의 기능까지 넘겨받은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된다. 이는 초대교회에서 이용된 제비의 경우와 비슷하다고 하겠다. 제비로 마티아 사도를 뽑은 뒤에는(사도 1,23-26) 더 이상 제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데, 이는 성령의 활동과 관련된 것으로 추측된다.
우림-둠밈이건 제비이건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려는 마음이다. 하느님의 뜻을 아는 방식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르다. 이제 우림-둠밈도 제비도 사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마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임을 다짐한다.
정장한 대사제의 모습(암스테르담 성서박물관 소장) : 금방울과 석류 모형을 번갈아 달아 장식한 청색의 겉옷과, 그보다 짧은 에봇과 그 위에 맨 에봇 띠 그리고 열두 지파를 나타내는 열두 보석이 달린 가슴받이가 보인다. 이 가슴받이에 우림과 둠밈을 넣었다. 손에는 싹이 튼 아론의 지팡이가 쥐어져 있다(민수 17).
[경향잡지, 2002년 8월, 임승필 요셉 신부(주교회의 성서위원회 번역담당 총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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