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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 유다인의 중매와 약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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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2-08 조회수4,748 추천수2

[성서의 풍속] 유다인의 중매와 약혼

 

 

- 동정녀 마리아의 약혼, 1504년, 유화, 라파엘(1483~1520), 브레라 미술관, 밀라노, 이탈리아. 자료제공=정웅모 신부.

 

 

"남자는 좋은 아내를 얻으면 행복한 사람이 되고, 악한 아내를 얻으면 철학자가 된다"는 소크라테스의 말이 아니더라도 결혼생활은 결코 쉽지 않은 공동체 생활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사회적 통계도 점점 결혼은 줄어드는 반면에 이혼은 증가하고 있다. 심지어 결혼 후 자녀를 갖지 않는 부부들도 늘고 있는 추세이다. 기존의 전통적 가족 중심 가치관 대신 서구적이고 개인주의적 가치관이 빠르게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인생에서 결혼과 이혼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중대한 인생의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에서 약혼은 이미 결혼 생활을 시작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처음에 결혼을 위한 중매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면 그 다음에는 약혼이 이루어졌다. 유다인의 약혼은 현대 사회의 약혼과는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결혼처럼 약혼도 법적 구속력을 갖고 있었다. 약혼한 여자는 약혼한 남자에게 이미 속해 있다고 보았고 약혼자가 간음을 한 경우가 생기면 죽음의 벌을 받게 되었다(신명 22,23-27).

 

이스라엘 사람들의 결혼은 일반적으로 동족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관례였다(창세 24,3-4 참조). 예외적으로 다른 종족과 결혼을 하기도 했지만(창세 41,45 참조) 정치적 이유가 대부분이었다(1열왕 11,1 참조). 그러나 일반적으로 유다인과 이방인의 결혼은 결코 허용되지 않았다. 이방인들이 다른 신들을 섬기며 종교적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었다(1열왕 11,4 참조).

 

고대 이스라엘에서 결혼은 요즘처럼 결혼 당사자들이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당시 결혼은 남녀간 사랑보다 부모 의지가 더 중요했다. 그래서 결혼은 보통 중매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런데 에사오 같은 경우는 부모 뜻에 거슬리는 결혼을 해서 부모 마음을 몹시 상하게 했다(창세 26,34-35 참조). 중매를 통한 결혼이긴 했지만 부모가 자녀들 의지를 존중하기도 했다(창세 24,58 참조).

 

결혼을 원하면 신랑측 대리자인 신랑 친구(요한 3,29 참조)가 신부 아버지가 보낸 대표자와 협상을 벌였다. 이처럼 유다인의 결혼에서 중매자 역할은 대단히 중요했다. 중매자가 주로 협상하는 것은 여자 가족에게 지불할 보상금과 신부 아버지에게 할당되는 결혼 지참금에 관한 경제적 문제였다. 그런데 신부 아버지는 결혼 지참금을 임의대로 사용할 수가 없었다(창세 31,15 참조). 왜냐하면 결혼 지참금은 딸이 과부가 되거나 이혼을 당하게 되는 경우를 위해 보관해야 했기 때문이다. 신랑이 가난해 돈을 지불할 형편이 안 되면 노동으로 봉사하기도 했다(창세 29,18 참조).

 

이스라엘에서 약혼은 일반적으로 법적 처리에 의해서만 파기됐다. 약혼이 파기되는 것은 실제적으로 이혼에 해당됐다. 약혼기간은 대략 1년 정도 지속됐는데, 이때 남자는 집을 준비하고 여자는 결혼예복을 준비했다. 그리고 결혼 잔치는 일반적으로 신부집에서 준비하는 것이 관례였다.

 

요셉은 마리아가 약혼한 상태에서 아이를 잉태한 사실을 알고 조용히 파혼하려고 했다. 잉태한 아이가 요셉의 아이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나게 되면 마리아는 간음한 여자로 몰려 율법에 따라 돌에 맞아 죽게 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요셉이 꿈을 통해 하느님 말씀을 믿고 마리아를 신부로 받아들여 결혼을 그대로 실행한 것은 대단한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마태 1,18-20 참조).

 

[평화신문, 2004년 12월 5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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