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동물] 가족과도 같은 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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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7-01-03 | 조회수3,594 | 추천수0 | |
[성경 속의 동식물] 29 - 가족과도 같은 소
- 니콜라 푸생, 금송아지 숭배, 1634년, 런던 국립미술관, 영국.
우리나라 민속에는 특히 소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우리 민속이 농경문화 중심으로 발달했기 때문이다. 또한 소는 단순한 가축이 아니라 마치 한 식구처럼 생각해 왔다.
소는 천성이 우직하고 순박해 은근과 끈기, 여유로움을 지닌 동물로 알려져있다. 따라서 우리 민족의 기질과 잘 융화돼 우리 선조들은 특히 소의 성품을 아끼고 사랑해 왔다. 소는 우리 생활과 가까운 곳에서 가장 친근한 동물로 함께 살아왔다.
소는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노동력일 뿐만 아니라 운송 역할도 담당했다. 급한 일이 생겼을 때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비상 금고 역할까지 했다. 소는 우직하나 성실하고 온순하고 끈질기며 힘이 세나 사납지 않고 순종한다. 그러나 소는 고집이 대단해서 그야말로 황소 고집이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소귀에 경읽기'라는 말이 생겨났을 것이다.
근동에서 사람들은 황소를 다산과 풍요의 상징으로 생각했다. 성경시대에 소는 우선 사람들의 경제 생활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 소는 중요한 재산으로 여겼다. 소를 많이 소유하고 있는 것은 부의 상징이었다(창세 13, 2). 일반적으로 소는 여러 가지 기능으로 이용됐다. 농사를 지을 때 밭을 갈거나(1사무 11, 5), 타작이나 수레를 끄는 데도 이용했다(1사무 6, 7).
또한 사람들은 소를 우유나 고기처럼 식용으로 사용했다. 사람들이 제사를 지낼 때 소를 제물(레위 1, 21)로 사용했고 소 사육법은 모세 율법에 규정돼 있었다(탈출 29, 10).
전쟁에서 승리한 군대는 적군에게서 포획한 가축들을 전리품으로 생각했다(신명 2,35). 이처럼 하느님께서 인간을 보호하신다는 이미지는 하느님의 축복으로 연결했다.
성경 저자들은 여러 가지 상징과 비유로 소를 다양하게 이용한다. 신명기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모세의 노래에서 에브라임과 므나쎄 지파의 위엄이 첫 수송아지의 위엄으로 비유하고 있다(신명 33, 17). 수소 무리와 만민의 송아지를 이집트의 강한 힘으로 강조하기도 했다.
바산의 암소는 그 우량함으로 유명했다. 시편 저자는 적들을 바산의 힘센 소로 비유한다. 아모스는 사마리아 귀부인들의 지나친 무절제와 게으름을 비난하면서 그들을 "사마리아 산에 사는 바산의 암소들"이라고 부른다(아모 4, 1). 공식적으로 계약을 맺는 의식에서 송아지 이미지를 반영하고 있다. "나는 내 계약을 어긴 사람들을, 곧 내 앞에서 송아지를 두 토막으로 가르고 그 사이로 지나가면서 맺은 계약의 규정들을 지키지 않은 사람들을 그 송아지처럼 만들어 버리겠다"(예레 34, 18). 그래서 계약식에서 송아지를 두 토막으로 갈라놓고 계약을 맺는 당사자들이 맹세를 하면서 그 사이를 걸어가도록 했다.
유다인들이 광야에서 송아지를 우상숭배라고 비난한 것은 황소나 송아지를 타고 나타나는 가나안 신들에 대한 관습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소는 값비싼 가축이었기에 송아지를 먹는다는 것은 가장 특별한 경우에만 허용되는 일이었다. 아모스 예언자는 살찐 송아지를 잡아먹는 잔치를 과도한 사치의 증거로 지적한다. "그들은 상아 침상 위에 자리 잡고 안락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양 떼에서 고른 어린 양을 잡아먹고 우리에서 가려낸 송아지를 잡아먹는다" (아모 6, 4). 신약에서는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가 종들에게 살찐 송아지를 잡으라고 명령한다.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이는 것은 가장 최고로 축하할 일로 여겼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루카 15, 23). 현대인은 무엇이든지 '빨리 빨리'를 추구한다. 그러나 황소걸음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도 자주 소의 은근함과 우직함을 흉내를 내면 어떨까?
[평화신문, 2006년 12월 24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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