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동물] 황폐의 상징인 고슴도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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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7-05-28 | 조회수3,399 | 추천수0 | |
[성경 속의 동식물] 49 - 황폐의 상징인 고슴도치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한다'는 속담이 있다. 가시처럼 뻣뻣한 고슴도치의 털도 부모에겐 보드랍고 윤기 있게 보인다는 뜻이다. 아무리 못난 사람도 부모 눈에는 세상에 둘도 없는 귀한 존재이니, 자기 자식은 어떻게든지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싶고 잘 가르치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 아닐까 싶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고슴도치 우화를 통해 예절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어느 추운 겨울날 고슴도치들이 추위를 피하려 서로 몸을 바싹 붙이고 한데 모여 있었다. 그런데 날카로운 가시가 서로의 몸을 마구 찔러 대자 고슴도치들은 "앗 따가워"하며 떨어졌다. 떨어져 있으면 추위 때문에 다시 몸을 붙이고, 다시 따가워서 멀어지기를 계속했다. 그러다 마침내 서로를 찌르지 않으면서 추위를 견딜 수 있을 최소한의 간격을 찾게됐다. 이 간격이 '예절'이라는 것이다. 수많은 관계 속에 사는 사람들이 넘지 말아야할 최소한의 거리를 고슴도치 우화로 설명한 것이다.
활엽수가 우거진 밀림지대에 많이 서식하는 고슴도치는 몸길이가 20∼30cm로 짧고 몽톡하며 몸통의 등과 양 옆이 짧고 굵은 가시털로 덮여 있다. 얼굴과 배, 꼬리, 네 다리를 제외한 온몸을 덮고 있는 1만6000여 개의 가시는 공격용이 아니라 다른 동물로부터 자기 몸을 보호하는 데 쓰인다. 야행성인 고슴도치는 낮 동안 나무 뿌리 밑의 구멍이나 바위 틈에 있다가 해가 지면 곤충, 지렁이, 야생조류의 알, 들쥐, 도마뱀, 나무 열매 등을 먹이로 찾아다닌다. 겨울에는 잡목의 뿌리 밑에 마른 잎과 바위 이끼로 보금자리를 둥글게 만들고 겨울잠을 자기 시작하여 3월 하순에 일어난다. 번식은 1년에 1회 6, 7월에 2∼4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옛날 이집트에도 고슴도치가 많이 있었던 것 같다. 피라미드에서 고슴도치의 형상을 그린 당시의 토기가 발굴되기도 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고슴도치를 호저(豪猪)나 작은 족제비 정도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호저는 가시털이 매우 긴 편이고 고슴도치는 대개 짧은 가시털로 덮여 있다. 호저도 몸과 꼬리의 윗면은 가시처럼 변화된 가시털로 덮여 있으며, 야행성이다. 호저는 몸의 길이가 60cm 가량 되고 고슴도치는 그 절반도 되지 않는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외관이 비슷한 이 둘을 구별하지 못했던 것 같다. 호저는 팔레스티나 지역의 산기슭이나 바위가 많은 곳에 서식한다.
성경에서 고슴도치는 마찬가지로 황폐한 광경을 나타내는 데 쓰이고 있다. "나는 또 그곳을 고슴도치의 차지로, 물웅덩이로 만들고 그곳을 멸망의 빗자루로 쓸어버리리라"(이사 14,23). 하느님의 심판이 이루어질 때 완전히 멸망되어 폐허가 되는 것을 고슴도치나 올빼미의 서식처로 비유한 것이다. "올빼미와 고슴도치가 그곳을 차지하고 부엉이와 까마귀가 거기에 살리라. 그분께서는 그 위에 '혼돈의 줄'을 펴시고 '불모의 추'를 내리시리라"(이사 34,11).
요즘 애완용으로 고슴도치를 기르기도 하는데, 따가운 가시가 잔뜩 난 동물을 어떻게 애완용으로 키울까? 신기하게도 고슴도치는 냄새로 주인을 알아보고 주인이 가시에 찔리지 않게 세웠던 가시를 눕힌다. 이때 배 쪽으로 손을 넣어서 잡으면 된다고 한다. 고슴도치도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고 돌봐주는 이를 알아보는 것이다.
[평화신문, 2007년 5월 27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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