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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에즈라, 느헤미야서 - 에즈라와 느헤미야의 종교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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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8-01-11 조회수3,442 추천수0

[성서의 세계] 에즈라 · 느헤미야서 - 에즈라와 느헤미야의 종교개혁

 

 

에즈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역대기와 더불어 역대기계 역사서로 분류된다. 왜냐하면 과거 역사를 예루살렘 성전 제의와 율법을 중심으로 재해석하여 유배에서 돌아온 유다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자 했던 역대기계 역사가의 신학적 의도가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 권의 책은 기원전 538년 페르샤 임금 고레스의 칙령에 의해 유다인들이 유배지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했던 때부터 성전 재건(기원전 520-515년)과 에즈라, 느헤미야의 종교개혁이 단행되었던 시기까지 약 100년에 이르는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1. 명칭

 

본래 히브리어 성서에는 한 권의 책으로 수록되어 있었으나, 후에 라틴어로 번역되면서 현재의 형태처럼 두 권으로 나뉘어지게 되었다. 이때 각 권의 중심 인물로서 유배 이후 공동체 재건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에즈라와 느헤미야의 이름이 책의 명칭으로 고정되게 되었다.

 

 

2. 에즈라와 느헤미야

 

에즈라는 사제이며 하느님의 계명과 이스라엘에 내린 규정에 통달한 율법학자(에즈 7,11)였다. 페르샤 임금 아르닥사싸 제7년(기원전 458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온(에즈 7,7) 그는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삶의 근본적 규범인 ‘율법’을 토대로 유다 공동체의 생활을 쇄신하고자 종교개혁을 단행하게 된다.

 

반면 느헤미야는 평신도로서 정열적인 성격을 가졌으며 종교적 신념에 투철하였던 기도와 믿음의 사람이었다. 본래 페르샤 왕궁에서 아르닥사싸 임금의 술을 관리하던 대신이었으나 기원전 445년 경(느헤 2,1) 유다 총독으로 임명되어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후 성벽을 재건하였으며, 유다 공동체의 종교적, 사회적 삶을 개혁하고자 노력하였던 인물이다.

 

한편 에즈라와 느헤미야가 활동했던 시기에 관해서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이 두 인물을 동일한 시기에 활동한 것으로 최종 편집했던 역사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다. 즉 유배라는 민족적 시련을 겪으면서 그 뿌리에서부터 흔들렸던 유다 공동체를 복구하고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했던 역사가는 에즈라와 느헤미야에 의해 단행되었던 종교적 개혁 운동을 통해 그 답을 제시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3. 전체 구조

 

에즈 1 - 2장  유다 공동체의 예루살렘으로의 귀환

에즈 3 - 6장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

에즈 7 - 8장  에즈라의 예루살렘 도착

에즈 9 - 10  에즈라의 종교개혁

느헤 1-2,10  느헤미야의 예루살렘 귀환

느헤 2.11 - 7.72ㄱ  예루살렘 성벽 공사

느헤 7,72ㄴ - 13장  에즈라와 느헤미야의 종교적 쇄신

 

 

4. 주요 내용

 

에즈라서와 느헤미야서에 담겨 있는 유배 이후의 역사서술을 통해 역대기계 역사가는 유배지에서 돌아온 유다 공동체가 하느님의 참된 백성으로서 어떻게 살아야할지 그 방향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그의 관심은 역대기에 이어 여기서도 성전과 거룩한 성읍 예루살렘, 그리고 율법을 바탕으로 한 유다 공동체의 쇄신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1) 성전의 재건

 

유배에서 돌아온 유다 공동체의 첫 번째 과제는 다름 아닌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함께 하시는 하느님 현존의 실제적이고 가시적인 표지이며, 하느님과 당신 백성 사이의 친교와 일치를 이루는 참다운 예배가 올려지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성전은 하느님 백성인 이스라엘에 있어 모든 삶의 중심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에즈라서의 서두는 유다 공동체의 귀환을 허락하는 페르샤 임금 고레스의 칙령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이제 그들(하느님의 백성에 속한 이들)은 유다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 집을 짓도록 하라.”(에즈 1,3). 즉 공동체 귀환의 목적이 성전의 재건임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다 공동체는 서둘러 성전 공사를 시작하게 되는데 이때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로 즈루빠벨과 예수아가 제시되고 있다.(에즈 3,8).

 

그러나 그들의 노력은 곧 적대자들의 방해를 받게 되고, 공사는 페르샤 임금 다리우스 제이년(기원전 520년)에 이르기까지 지연되고 만다. 그러나 다시금 성전 공사의 재개를 촉구하며 나선 이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바로 하깨 예언자와 즈가리야 예언자였다.(에즈 5,1). 또한 바빌론에 보관 중이었던 고레스의 칙령이 발견되어 다리우스 임금은 예루살렘 성전의 건축을 공적으로 명하게 된다. 이리하여 기원전 515년 마침내 완공된 성전은 기쁨에 찬 공동체에 의해 하느님께 봉헌되었으며, 이어 과월절 축제가 거행된다.(에즈 6장).

 

2) 예루살렘 성벽의 복구

 

이러한 성전의 재건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두시고자 선택하셨던(신명 12장) 거룩한 성읍 예루살렘의 복구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느헤미야서는 하느님께서 느헤미야에게 예루살렘 성읍을 복구하는 사명을 부여하셨다고 밝히고 있다.(느헤 2장). 이것은 직면하게 되는 여러 난관과 분쟁을 하느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확신으로 극복하고 완수해 나가야 하는 종교적 사명의 성격을 띄고 있다 하겠다.

 

이로써 바빌론 제국에 의해 남왕국 유다가 멸망당하고 예루살렘이 파괴됨으로써(기원전 587년) 단절되었던 하느님 백성의 역사가 회복하게 되었으며, 나아가 이스라엘의 잘못된 삶의 결과로 훼손되었던 하느님과 당신 백성 사이의 역사가 다시금 속개되는 전환점을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3) 율법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의 쇄신

 

성전 재건과 예루살렘 성벽 복구에 이어 역대기계 역사가는 유다 공동체가 하느님의 가르침인 ‘율법’에 대한 순종을 통해 신앙적으로 쇄신되어야 하며, 이것은 바로 에즈라와 느헤미야의 종교개혁 운동을 통해 이루어졌음을 제시하고 있다.

 

당시 유다 공동체의 상황

 

유배 이후 유다 공동체는 총체적 혼란의 상태였다. 하느님 백성으로서 근본적으로 견지해야 할 신앙에 대한 확신은 흔들리고, 열정은 식어갔던 것이다. 그 결과 구체적인 생활 안에서도 하느님께서 삶의 규범으로 주신 계명과 규정들은 소홀히 여겨졌으며, 나아가 이방 종교를 공동체에 들어오게 하는 이방 여인들과의 혼인이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었다.

 

공동체의 참회와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희망

 

에즈라의 선포를 통해 하느님의 율법을 듣게 된 온 백성들은 자신의 죄를 뉘우치게 되는데, 특히 하느님을 거슬렸던 선조들의 역사를 회고하는 참회 기도(느헤 9장)는 당시 공동체의 삶을 반영하는 참회의 고백이라 하겠다.

 

또한 공동체가 자신의 잘못된 삶을 청산하고 하느님의 백성으로 다시 회복될 수 있는 근거는 그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선택하시고, 바른 법규와 진실한 율법, 좋은 규정과 계명을 삶의 길잡이로 주신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에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참된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삶

 

에즈라와 느헤미야는 공동체가 참된 하느님 백성으로서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느님의 가르침인 ‘율법’을 온전히 따르는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여기서 하느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삶이란 이스라엘이 하느님과 맺은 계약의 근본정신인 ‘사랑’을 실천하는 생활로써, 에즈라와 느헤미야는 공동체로 하여금 그들의 신앙생활에 있어 진정한 내적 쇄신과 이에 맞갖은 외적 생활의 변화를 촉구하였던 것이다.

 

[월간 빛, 2002년 2월호, 송재준 마르코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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