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마르코 복음의 예수 이야기 (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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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8-01-11 | 조회수5,880 | 추천수2 | |
[성서의 세계] 마르코 복음의 예수 이야기 (2)
제자들 (마르1,16-20)
요한은 제자들을 가졌다. 나도 제자들을 갖게 된 것이다. 그 때까지 나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나는 어부 시몬과 안드레아를 불렀다. 그들은 망설임 없이 나를 따랐다. 이어서 나는 어부 야고보와 요한 형제를 불렀다. 그들도 배와 그물을 버리고 아버지 제베대오를 떠나 나를 따랐다. 나의 사명이 조금씩 진척되고 있었다. 나는 아빠를 신뢰했고, 아빠는 분명 나와 함께 하셨다.
가파르나움 (마르1,21-35)
안식일이 가까이 다가왔으므로 우리 일행은 가파르나움 마을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 회당에서 나는 성서 말씀을 봉독하도록 초대되었다. 나는 성서를 봉독한 후 두루마리를 말아 둔 뒤에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미 요한에게서 본 것이기도 하거니와, 내겐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마음을 사로잡는 능력이 있었다. 나는 단지 성서 구절만을 반복하거나 성서 구절을 부풀려 말해 사람들을 지루하게 하거나 피곤하게 만들지도 않았다. 간단하고도 명료하게 말했다. 사람들은 나의 말을 듣고서 종종 깊은 생각에 빠져들기도 했다. 여기서 사람들로부터 나온 한가지 반응이 있었다. 그것은 나의 가르침에서 그들이 느낀 ‘권위’였다. 물론 그 능력이 어디서 나오는지 그 비밀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아빠의 심중에서 들은 말씀들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회당에서 난동을 부린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는 내 능력의 근원을 간파해냈다. 그는 나를 두고 “하느님의 거룩한 분”이라고 외쳤다. 사실 이 호칭에 걸맞게 나는 그를 치유해 주었다. 일부 사람들은 나를 크게 오해했다. 이 오해는 나의 사명 수행에 큰 지장이 되었다. 나는 이미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아들’이라는 각별한 호칭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아들’이었다. 이 호칭이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 한편, 일부 사람들은 벅차게 고조되었다. 그들은 분명 치유 기적으로 감명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들을 경외감에 휩싸이게 한 것은 나의 말이 갖는 힘 때문이었다. 나는 “이게 웬일이냐? 권위있는 새로운 가르침이다.”라는 말을 귓전으로 들었다. 이 소문은 순식간에 갈릴래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이는 하나의 시작이었다.
시몬은 우리를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우리는 그의 장모가 열병에 걸려 누워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곧장 그녀에게 가서 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녀는 그 순간 열이 떨어졌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음식을 주기 위해 부산을 떨며 준비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를 지켜봤다. 그녀는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말해주는 생생한 비유와도 같았다. 나는 사람들을 열병, 곧 죄로부터 자유롭게 만들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일단 자유롭게 되면 섬기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다. 모든 이가 사랑하는 일에 봉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자유이다. 자유로운 사람은 조직이나 제도에 얽매여 봉사하지 않는 법이다. 나에 대한 소문은 들불처럼 순식간에 번져나갔다. 남녀 노소 가릴 것 없이 그 마을 사람들은 모두 부산을 떨며 안식일이 끝나는 일몰을 기다렸다. 그 이유는 안식일 중에는 치료 등의 일도 노동으로 생각해서 하지 못한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런 와중에 있었다.
나는 수많은 병자들을 치유하면서 행복했다. 많은 이들이 갖가지 고통에 힘겨워하고 있었다. 나를 두고 메시아 같은 지도자라는 의미가 담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사람들의 칭송이 거북하고 염려되었다. 그것은 내가 마치 개선식장의 높은 단과 같은 곳에 서 있다는 느낌이 들어 매우 싫었다. 나는 나의 일을 계속할 것이다.
시몬은 그 날밤 잠자리를 제공했다. 나는 잠보다도 더 깊은 휴식이 필요했다. 두세 시간이 지났을까, 깊은 별빛만이 초롱초롱한 깊은 밤중에 혼자 일어나 기도할 곳을 찾았다. 아빠는 언제나 나와 함께 계신다. 이 친밀하기 그지없는 친교의 순간이 주는 행복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 순간들이 얼마나 호사스러운 것인지를 알았다. 머잖아 감당하기 벅찬 시간과 사명이 나에게 주어질 것이다. 나의 아빠는 그것을 잘 알고 계신다. 잠에 떨어진 베드로와 그 동료들은 마치 일들을 미리 내다보듯 숨을 거칠게 몰아쉰다. 모든 것이 잘 되어 가는 것 같았지만, 마음 한켠에는 무언가 아쉬움과 허전함도 있었다. 이 상반된 심정을 무어라 설명할 수 있을까? 절로 쓴 미소가 배어 나왔다. 아, 나의 벗들은 아직 너무 모른다. 알고 배워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나는 그들에게 쉼 없이 이곳 저곳을 계속 옮겨 다녀야 한다고 말했다. 나의 사명은 이스라엘을 새롭게 하는 것이었다. 주어진 시간이 부족했다. 할 일은 너무 절박했다.
소외된 이들 (마르1,40-45)
나는 어디를 가든 늘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만났다. 어느 날 나병환자 한 사람이 와서 꿇어 엎드려 “깨끗하게 해달라.”고 애걸했다. 그 순간 측은함을 넘어 분노를 느꼈다. 이 불쌍한 사람은 사회로부터 추방당한 이로 낙인찍혔다. 자신의 탓이 아닌 그의 병으로 인해 그는 공동체와 종교 생활로부터 단절되었다. 그는 하느님의 면전으로 다가갈 수도 없게 되었다. 누가 만일 그의 신체나 걸친 옷에라도 접촉하면 ‘불결’하게 되어 성전 예식에도 참여할 수 없게 되었다. 이는 하느님의 은혜로우심을 단절하거나 왜곡시킬 수 있었다. 나는 앞으로 나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손을 얹었다.
그 순간 그는 나병이 나았다. 병이 나은 이는 사제에게 가서 그것을 확인을 받아야한다고 율법은 명시하고 있다. 나는 그렇게 하라고 그에게 엄히 명령했다. 사제들이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나의 처신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일이 그렇게 되면 나의 이번 치유 사건이 사제들에게는 하나의 도전이 될 것이다. 그러면 마찰이 일어날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나는 아빠와 그분의 길에만 전심전력을 다할 것이다. 나는 그에게 이 치유를 비밀에 붙이라고 당부했다. 물론 어림없는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그는 즉시 그 소문을 퍼뜨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는 그를 나무랄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마을이 있는 곳에는 당분간 들어가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숨어 지낼 곳은 없었다. 내가 어디를 가든 사람들은 나를 찾아 낼 것이다.
마찰 (마르2,1-22)
나는 멀리 떠나 있을 수 없었다. 곧 가파르나움으로 돌아왔다. 변화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좋은 때는 지난 것 같았다. 사람들은 변함이 없었다. 그들은 나를 따랐다. 아마 이것이 바리사이들의 심중을 언짢게 만들었던 것 같았다. 그 상태는 보기보다 더 심각했다. 나는 바리사이들을 존경했다. 나는 사두가이들이나 사제들에 비해 바리사이들과는 여러모로 가까이 상종했다. 나는 가장 중요한 문제인 하느님에 대해서는 바리사이들과 아주 다르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미심쩍은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바리사이들과 같지 않았다. 그들의 열정은 말 그대로 끝간 데 없었다. 사람들은 베드로의 집 앞까지 줄을 서서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내가 가르치고 있을 때 머리 위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평평한 천장이 처음에는 작게 뚫리더니 점점 크게 구멍이 뚫렸다. 네 사람의 건장한 어른들이 그 구멍으로 침상 위에 중풍병자 동료를 눕혀 끈을 달아 나에게로 내려보냈다. 나는 항상 치유하기 전에 하느님의 자비에 대해 가슴을 열도록 언제나 사람들에게 믿음을 강조했다. 여기에 참된 믿음이 있었다. 그것은 육체적 치유 이상으로 중요하게 요구되는 믿음이었다.
나는 그 병자에게 힘주어 말했다. “그대의 죄는 용서받았소.” 놀란 시선으로 보는 율사 몇 사람이 거기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하느님의 뜻을 알아내는 일은 쉬운 일이었다. 그런데 나의 말이 그들에게는 신성모독으로 비춰졌던 것이다. 분명 하느님만이 죄를 사해주실 수 있다. 사실 그들의 생각이 맞지 않은가! 그들은 내 안에서, 나를 통해서 하느님의 용서가 드러나기 시작했음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 여기서 하느님은 나를 통해 죄의 짐을 벗겨 주신 것이었다. 나는 이 사실을 그들에게 드러낸 것이다. “당신의 죄는 용서받았소.”라고 말하기는 쉬운 것이다. 치유 행위가 내 말을 뒷받침해 주었다. 그는 집밖으로 자기 침상을 걷어들고 나갔다. 사람들은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그러나 “일어나 그대의 침상을 들고 집으로 가시오.”라고 이 병자에게 말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내가 보기에 율사들이 이번 일로 앙심을 품었을 것이다.
밖으로 나가 호숫가 근처에서 세관에 앉았더니 분주한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눈에 들어왔다. 다른 제자들처럼 그 역시 나의 부름에 즉각 응답했다. 나는 이 처신으로 좀더 어려움에 처할 것 같다. 다들 싫어하고 경멸하는 세금 징수원들 중의 한 사람을 나의 제자로 삼았기 때문이었다. 당혹스러웠지만 고맙게도 레위는 그의 많은 친구들과 함께 우리들을 식사에 초대했다. 나는 기뻤다. 까다롭게 굴지 않는 많은 죄인들과 더불어 음식을 나눈다는 것은 얼마나 새롭고 신선했던가! 물론 율사들은 이를 문제삼았다. 내가 죄인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 무얼 어쨌단 말인가? 거기 함께 앉아 식사한 정확한 이유는 그들이 죄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병자였고, 나는 의사였던 것이다. 내가 식탁에서 죄인들과 함께 한 처신은 감동적인 가르침으로 계속 남게 될 것이었다. 이는 희망을 잃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었다. 그들은 나의 가르침을 들었다. 이제부터 나는 “죄인들의 친구”로 통하게 될 것이다. 그 별칭은 모멸감이 들어 있었다. 나는 기꺼이 그것을 감수할 것이다. 나는 아빠의 일을 하고 있었다.
요한은 성격상 금욕주의적이었다. 그의 제자들도 그의 노선을 따랐다. 그들은 금식했다. 바리사이들은 일주일에 두 번 단식했다. 식탁에 죄인들과 함께 했던 나의 태도는 경악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다른 한편 그것은 점수를 따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물론 단식을 하는 이들은 더 열심한 이들이었다. 나는 그 점에서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새로운 시대, 곧 신혼 때와 같은 새 시대가 도래했다는 노선을 취했다. 이제 나는 신랑이었다. 그래서 단식할 때는 분명 아니었다. 단식할 때는 뒤에 올 것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계속 몰아갈 것이다. 낡은 것으로는 감당하지 못할 무언가 새로운 것이 눈에 들어 왔다. 나는 옛 옷을 새 옷으로 깁는 것은 현명치 못하고,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으면 얼룩이 지거나 터지는 법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이 비유에 수긍하듯 미소를 지었다. 나는 이 미소를 머금은 얼굴이 좋다. 무표정한 얼굴은 마음을 얼어붙게 만든다. 예의 미소를 모르는 이들이 아빠를 이해할 수 있을까?
[월간 빛, 2003년 12월호, 이재수 시몬 신부(큰고개성당 주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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