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경] 유대인 이야기6: 새로운 민족의 탄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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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9-02-08 | 조회수3,860 | 추천수1 | |
[유대인 이야기] (6) 새로운 민족의 탄생 “이스라엘이 이제 너의 이름이다”
- 예루살렘에 있는 야곱의 사다리 조형물. 야곱은 어느날 꿈속에서 하늘에 닿아있는 사다리(층계)를 보게 된다. 주님께서 그 위에 서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않겠다"(창세 28,15) - 브에르 세바의 한 장터에서 베두인 노점상들이 물건을 팔고 있다. 야곱은 이곳에 제단을 쌓고 하느님께 제사를 드렸다(창세 46,1).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Joseph Hitchcock, 1899~1980) 감독의 1940년 영화 ‘레베카’(Rebecca)는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독특한 소재로 당시 평단의 주목을 끌었다. 영화는 세상을 떠난 레베카가 ‘지금 여기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주는 일련의 과정을 담고 있다.
3800~4000년 전 이사악의 아내 이름도 레베카다. 레베카는 이미 죽고 없지만 마치 영화 속 레베카처럼, 오늘날까지도 세계사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만약 그녀가 둘째 아들 야곱이 아닌, 첫째 에사우를 더 사랑했더라면 지금의 이스라엘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아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을 것이 명백한 이사악은 아내 레베카를 통해 특별한 위로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사악과 레베카, 야곱에 대한 이야기는 창세기 25장에 자세히 나온다. 40세의 늦은 나이에 레베카와 혼인한 이사악은 20년이 지나 노인이 될 때까지 아이를 얻지 못한다. 그래서 어느 날 아이를 얻게 해 달라고 간절한 기도를 한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레베카가 임신을 했다. 그것도 그동안 마음고생을 덜어주기라도 하듯, 아들 둘(쌍둥이)이 한꺼번에 들어섰다. 세상에 먼저 나온 이가 에사우이고, 둘째가 야곱이다.
야곱이라는 이름은 영어 이름에서 제이콥(Jacob) 잭(Jack) 혹은 재키(Jake)로 아직도 살아있다. 요한이 존(John), 베드로가 피터(Petre), 바오로가 폴(Paul), 마리아가 메리(Mary), 안나가 앤(Anne)인 것과 마찬가지다. 남자 이름과 관련한 미국인들의 ‘야곱’ 선호도는 요한과 베드로, 바오로보다 크게 앞선다. 미국의 한 단체가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1999년부터 2006년까지 미국에서 남자아이 이름으로 가장 많이 사용한 이름이 야곱(Jacob)이었다.
야곱이라는 이름은 ‘남의 발 뒤꿈치를 잡은 자’라는 뜻이다. 야곱이 태어날 때 형 에사우의 발 뒤꿈치를 잡고 세상에 나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1990년 케빈 코스트너(Kevin Michael Costner, 1955~)가 감독과 주연을 동시에 맡은 영화 ‘늑대와 춤을’에서도 ‘주먹 쥐고 일어서’ 등과 같은 재미있는 이름들이 나오는데, 과거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각 사람의 특징을 이름으로 불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늦게 본 아들과 딸의 이름을 ‘막둥이’‘말순이’라고 지었었다.
어쨌든 비슷한 DNA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쌍둥이 형제면 성격도 비슷할 법한데, 에사우와 야곱은 그렇지 않았다. “아이들이 자라서, 에사우는 솜씨 좋은 사냥꾼 곧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온순한 사람으로 천막에서 살았다. 이사악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여 에사우를 사랑하였고, 레베카는 야곱을 사랑하였다”(창세 25,27-28).
에사우는 활달한 성격으로 모험심과 도전정신이 강했고, 야곱은 지적이고 사려가 깊으며 차분한 성격이었다. 당연히 체격도 형 에사우가 더 좋았을 것이다. 따라서 야곱은 늘 에사우의 그늘에서 성장했다. 어머니 레베카가 야곱을 더 사랑했던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성격이 전혀 다른 쌍둥이 형제. 성경을 전혀 읽지 않은 사람이라도 갈등이 일어날 것이라는 점을 쉽게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역시 예상대로 큰 일이 벌어진다. 야곱이 아버지 이사악을 속여 에사우에게 주어질 맏아들의 권리와 축복을 빼앗는다. 당연히 형은 화를 냈고, 놀란 야곱은 일단 가나안을 떠나 하란을 거쳐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몸을 피한다(창세 27,1-44).
오랜 세월 타향살이를 통해 큰 재산을 모아 부자가 된 야곱은 어느 날 형에게 돌아가 예전의 잘못을 빌고 깨진 우애를 되살리기로 마음 먹는다. 그래서 고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여기서 역사적인 사건이 생긴다. 야곱이 하느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받게 되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땅에 대한 약속, 하느님에 대한 순명, 믿음의 중요성 등 인간이 신을 섬기는 원리들을 확정했다면,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은 그 약속이 이뤄질 장(場)을 마련했다. 인류사에 큰 주춧돌을 놓는 이스라엘의 탄생이 바로 그것이다.
“너의 이름은 이제 더 이상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 불릴 것이다.” (창세 32,29) “이스라엘이 이제 너의 이름이다”(창세 35,10). 성경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최초로 나타나는 순간이다. 새로운 민족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여기서 궁금증이 생긴다. 유대인, 히브리인, 이스라엘인…. 모두 똑같은 말일까. 다르다면 왜 그럴까. 각자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하느님은 왜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내렸을까.
[가톨릭신문, 2009년 2월 8일, 우광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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