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경] 유대인 이야기9: 창세기의 끄트머리에 서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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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9-03-31 | 조회수4,049 | 추천수1 | |
[유대인 이야기] (9) 창세기의 끄트머리에 서서 "아시아 침략자들에게 앙갚음 하리라"
- 요셉이 이집트 재상으로 이름을 날리던 당시 이집트에 있었던 지배 세력을 '힉소스 왕조'라 부른다. 이들은 이집트인들이 아니라 기원전 1680년께 새로운 왕조를 세우고 이집트를 식민통치 했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이집트 역사를 처음부터 찬찬히 훑어 나가다 보면, 성경과 관련해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요셉이 이집트의 재상으로 이름을 날렸던, 그래서 아버지 야곱을 비롯한 가족들을 이집트로 이주시켰던 시기는 기원전 1600년 경이다. 하지만 당시 그곳에는 이집트가 없었다.
역사는 당시 이집트에 있었던 지배 세력을 ‘힉소스 왕조’라고 부른다. 이들은 이집트인들이 아니었다. 원래 메소포타미아 지역(현재의 이란, 이라크가 위치한 지역)에 거주했던 이들은 당시로서는 최신식 무기인 2~4마리의 말이 끄는 전차로 무장하고 이집트를 침공, 기원전 1680년께 새로운 왕조를 세우고 이집트를 식민통치 했다.
힉소스 왕조는 이집트에 있었던 왕조였지만, 실질적으로 이집트 직계 왕이 다스린 나라가 아니었던 것이다.
여기서 힉소스인들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왔다는 사실에 주목해 보자. 유대인들도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점은 앞에서 밝혔다. 힉소스 왕조와 이스라엘 민족은 혈통으로 볼 때 사촌뻘인 셈이다.
이제야 “요셉의 형제들이 왔다는 소식이 파라오의 궁궐에 전해지자, 파라오와 그의 신하들이 좋아하였다”(창세 45,16)는 구절이 이해된다. 같은 계통의 민족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 요셉이 친족들을 불러들여 쉽게 정착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더 나아가 탈출기 첫머리에 나오는 “그런데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이집트에 군림하게 되었다”(탈출 1,8)는 말도 힉소스 왕조를 염두에 둘 때만 이해할 수 있다.
새 임금이 힉소스 왕조를 잇는 왕이었다면, 선왕들이 존경했던 위대한 지도자 요셉을 모를리 없었다. 여기서 ‘새 임금’이란 바로 새로운 왕조가 나타났음을 의미한다. 힉소스 왕조가 무너지고 새로운 이집트 왕조가 들어선 것이다. 그래야 엄청난 수의 인원이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를 탈출하는 이유가 명확해 진다.
여기서 이집트 역사를 간단히 짚고 넘어가 보자. 고대 이집트 파라오 왕조는 기원전 332년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멸망하기까지 30개 왕조가 흥망을 거듭했는데(그래서 이집트 역사는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복잡하다), 간단히 고왕조 시기(1~10왕조, BC 3100-2040 약 1000년간), 중왕조 시기(11~17왕조, BC 2040-1567 약 500년간), 신왕조 시기(18~30왕조, BC 1567-332 약 1200년간)로 구분한다.
- 기원전 1550년 경 힉소스 왕조를 무너트리고 이집트 제18왕조(신왕조 시대의 첫 왕조) 시대를 연 아모세 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강제 노동으로 억압하려고 그들 위에 부역 감독들을 세웠다.
힉소스의 침략으로 이집트 왕조가 남쪽으로 밀려나 힘을 쓰지 못하던 시기가 대략 중왕조 시기 후반이었다.
이때 이집트인들의 심정이 어땠을지는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아마 마음속에 칼을 갈고 있었을 것이다.
“언젠가는 아시아에서 온 침략자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이주해온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톡톡히 앙갚음을 해 주고 말겠다.”
그들의 꿈은 현실로 이뤄진다. 기원전 1550년 경. 이집트 제18왕조(신왕조 시대의 첫 왕조) 시대를 연 아모세 왕은 마침내 힉소스 왕조를 무너트린다.
아시아인들의 침략으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기 때문일까. 이전까지 평화주의를 고수하며 주변국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던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갑자기 제국주의적 태도로 돌변한다. 도읍을 새로이 건설하고, 주변국들을 침략하기 시작했으며, 노예를 학대하고, 대규모 건축 사업을 일으킨다. 이 상황은 탈출기 첫머리에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이집트인들은 강제 노동으로 그들을 억압하려고 그들 위에 부역 감독들을 세웠다. 그렇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파라오의 양식을 저장하는 성읍, 곧 피톰과 라메세스를 짓게 되었다.”(탈출 1,11)
이스라엘인들은 탈출을 감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대로 가다가는 민족 자체가 사라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하는 시기는 정확히 언제일까. 많은 학자들은 대체로 그 연대를 그리스도 탄생 1200년전, 람세스 2세 통치기간(BC 1304~1237)인 기원전 1220년대로 추정하고 있다. 참으로 아득히 먼,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다. 아직 로마 민족이 지구상에 나타나지도 않았던 시기의 일이다.
아무튼 ‘아브라함→이사악→야곱→요셉 및 12형제’로 이어지는 이스라엘 민족의 ‘족장시대’(Patriarchal Age)는 이렇게 막을 내린다. 그와 함께 구약성경 창세기도 끝난다.
이제부터 구약성경의 탈출기가 시작된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실제로 일어난 엄청난 한 사건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어쩌면 창조 사건 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니는 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는 전설이 아니다. 설화는 더더욱 아니다. 유대인들은 3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 사건에 대한 기억을 생생히 간직하고 있다.
기원전 13세기. 이집트에서 한 유대인 아기가 태어난다.
[가톨릭신문, 2009년 3월 15일, 우광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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