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성서의 홍수는 무엇을 말하는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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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9-07-03 | 조회수3,059 | 추천수0 | |
[성서의 세계 - 구약] 성서의 홍수는 무엇을 말하는가
성서의 홍수
홍수에 대해서 다룰 때 거의 모든 민족들이 비슷한 재앙을 겪었다는 사실을 흔히 언급하게 된다. 비록 여러 이야기가 서로 다르다 해도 그 주제는 언제나 같은 것이다. 예를 들어 언젠가 한 선교사가 친구에게 그곳 원주민들이 홍수에 관한 전승을 갖고 있는지 물었을 때, 그들은 모든 것을 파괴시킨 홍수 이야기를 알고 있으나 그러한 재난에 도덕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며 어떤 죄악이 그 홍수의 원인이라고 느끼지는 않는다고 그는 대답했다.
실제로 많은 언어에 있어서 본래 범람을 뜻했던 홍수라는 용어는 곧 “죄악의 징벌을 위한 범람”으로 변화된다. 예를 들어 독일어에서 이러한 의미의 변화를 말의 변화를 통해 보다 분명히 보게 되는데, Sintflut(대홍수)이 Sundflut(죄악의 범람)으로 된 경우가 그렇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성서의 세계적 홍수에 “죄”의 개념이 참으로 들어 있는지 물을 수 있다. 달리 말해서, 홍수는 실제로 죄에 대한 벌일까?
성서의 이 홍수 이야기는 창세기 서두의 일부를 이루며(6-9장) 창조, 지상 낙원,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에 이어서 나온다. 아담의 첫 죄에 대한 묘사와 친족 살인 이야기가 있고 난 다음 사람들 전체가 벌을 받게 되는 죄를 이야기한다. 이 이야기를 - 예전에 흔히 그랬던 것처럼 - 엄밀한 의미에서 역사로 간주하고 모든 말을 문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그 의미는 이러할 것이다. 즉, 이 이야기에 나오는 온 인류는 죄인으로 간주되고, 온 땅은 홍수로 뒤덮이게 되며, 노아와 그 식구 그리고 배 안에 은신해 있는 모든 것을 제외하고 모든 생물이 휩쓸리게 된다. “야훼께서는 사람을 비롯하여 모든 짐승들, 길짐승과 새에 이르기까지 땅 위에서 살던 모든 생물을 쓸어 버리셨다. 노아와 함께 배에 탔던 사람과 짐승만은 살아 남았다”(창세 7,23).
여기에서 많은 어려움이 생겨난다. 가장 높은 산들을 잠기게 하고도 열 다섯 자(큐빗)나 될 만큼 땅의 표면 전체가 홍수에 의해 뒤덮이게 되었다는 사실은 더 말할 것도 없이 믿을 수 없다. 그러한 가정에서는 모든 동물들 - 그렇다, “모든” 동물들, 북극과 남극의 동물들과 바다의 물고기와 대형 물고기 (그리고 어쩌면 모든 초목들)까지도 배 안에 집결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 경우 모든 종류의 생명은 기온의 엄청난 강하 때문에 생명을 부지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불가능한 이야기다!
이러한 설명에서는 창세기의 서두를 엄밀한 의미의 역사로 간주하는 것이겠으나, 여기서는 특별한 종류의 역사 편찬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 명백하다!
그러므로 해석학자들은 성서의 서두를 보다 논리적이고 참된 방식으로 해석하면서 홍수 이야기를 덜 문자적인 의미로 이해하였다. 첫 번째 시도로, 홍수의 면적을 제한하여 “온 땅”이란 표현을 과장법으로 간주했다. 실제로는 땅의 일부만을 표현하고자 한 것으로 본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홍수는 제한적이고 지역적인 것으로 간주되었고, 결과적으로 모든 동물 왕국을 포함하지 않았다. 다만 인류는 아직도 그 첫걸음을 내딛고 있었고 번식되기 시작하고 있었으므로 전체가 저 지역적인 홍수로 멸망하였으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사람들과 관련해 볼 때 진정한 세계 홍수요 전적인 멸망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도 불완전하고 만족스럽지 않다. “온 땅과 온갖 동물”이란 표현은 과장된 것으로 간주하면서, 어떻게 “모든 사람들”의 경우는 문자 그대로의 설명을 적용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러한 표현도 과장된 것으로 보고 좀더 엄밀한 의미로 설명하는 것이 보다 논리적이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사람에 관해서도 홍수는 제한적이었다. 이렇게 가정해 볼 때 꽤 거대한 지대가 완전히 범람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두 강 사이의 지역, 즉 오늘날의 이라크가 될 것이다. 이곳에서 배 안에 있던 것을 빼고는 모든 생물이 멸망했다. 반면 성서 저자가 관심을 둔 환경과 사람들의 범위를 벗어나는 다른 지역과 세계의 다른 곳에서는 사람들과 동물들이 보존되었다. 이렇게 가정해 볼 때 노아는 제2의 아담이라 불릴 수 없으며 모든 사람들이 단 한 쌍의 인류 부부로부터 유래한다는 사실과 인종의 분리는 홍수 이야기에 의해 무너지지 않는다. 단 한 쌍으로부터의 인류의 번식은 - 만일 이것이 성서의 가르침이라면 - 흐트러짐 없이 계속되는 것이다.
오늘날의 보편적 해석인 이러한 논리에 대해서는 바빌론 홍수의 발견도 자극이 되었다. 바빌론 홍수는 성서의 홍수와 상당히 유사한 것으로, 홍수의 시기를 세계 역사의 시초, 예컨대 빙하기 가운데 하나로 정하는 동기를 제공하였다.
현대 지질학이 이 홍수의 원인을 해빙에 돌리고 있고, 바빌론 이야기가 홍수를 신들 사이의 불목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반면에 성서는 그 근거를 사람들의 죄에다 두고 있다.
바빌론 전승에 따른 홍수
대부분의 민족들에게 홍수에 관한 전승이 있다는 것은 보편적으로 알려진 사실이다. 격리되어 살아가는 원시적인 종족과 접촉하는 탐험가들이 단편적이고 산만하나마 홍수에 대한 이야기를 그들로부터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무척 흥미롭다. 흔히 이려한 민간 전승들은 성서의 홍수 이야기와 접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가톨릭 혹은 프로테스탄트의 복음화를 통한 성서와의 접촉 때문에 그 이야기에 성서에 기인한 전승과 일치하는 어떤 점들이 덧붙여졌다는 사실이 자주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원시적 및 성서적 요소들의 결합으로 이제 두 이야기 사이의 비교는 거의 불가능하여졌다.
고대에도 사람들은 홍수에 관한 성서 외적인 전승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 가운데는 바빌론 이야기가 더 말할 나위 없이 첫자리를 차지한다. 1872년까지 이 이야기는 아주 오래된 그리스도교 저자들의 작품을 통해서만 알려졌다. 그려나 두 이야기의 비교는 차라리 회의적이었다는 사실을 덧붙여야만 한다. 그리스도교 보고자들이 성서적인 요소들을 삽입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서의 홍수 이야기와 비교한다는 것은 온당치 못했다.
1872년에 젊은 동양 학자인 조지 스미스(George Smith)는 홍수에 관한 이야기, 정확하게는 초기 그리스도교 저술가들이 알려 주었던 이야기를 발견하는 행운을 안게 되었다. 그는 당시 니느웨에서 런던의 대영 박물관으로 옮겨진 많은 점토판 가운데서 이 이야기를 발견하였다. 점토판들은 기원전 650년경에 쓰여졌다. 바로 그 이야기는 분명히 아주 오래된 것으로, 아수르바니팔(Assurbanipal) 왕의 명령에 따라 왕궁 도서관을 위해 복사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는 성서적인 요소가 덧붙여지지 않은 순수한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비교를 가능케 한다.
홍수에 대한 바빌론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길가메시(Gilgamesh)의 영예를 기리는 웅장한 영웅시의 일부를 이룬다. 시 속에서 길가메시는 반신 반인의 모습을 한 거인으로 등장한다. 그를 가능한 한 최대로 사람들 위에 들어높이기 위해 그에게는 홍수에서 살아 남아 신들 가운데 승천한 영웅 우트나피시팀(Utnapishtim) 곁에 앉는 지위가 부여된다. 홍수의 영웅 즉 바빌론의 노아인 그는 사자들을 길들이는 자 길가메시에 관한 영웅시에서 부수적으로만 기억된다.
바빌론의 이야기에 따르면, 인류를 근절시키자는 결정은 신들의 모임에서 이루어진다. 법령은 사람들의 죄 때문에 만들어지지 않고 바로 그 신들의 독단과 경솔에서 나온다. 이 신들 가운데 하나, 정확하게는 하급 신언 에아(Ea)가 그 법령을 우트나피시팀에게 알려 주고 배를 만들어 구원받으라고 권유한다. 이렇게 영웅은 자신의 선앙심 때문에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 신들 사이에 존재하는 불목과 자신의 계교로 인해 구원된다. 그리고 우트나피시팀이, 노아와는 아주 달리, 배 안에 자신과 함께 특히 재산과 개인적인 물건들을 넣는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거의 배타적으로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긴다.
재난은 성서의 이야기와 같은 방식으로 일어난다. 그러나 그것은 온갖 부류의 하급 신들의 탓이다. 범람은 전반적이지 않았으나 우트나피시팀의 가족과 배에 있던 다른 사람들을 제외하고 인류를 멸망시킨다. 폭풍은 7일 후에 그치고 배는 메소포타미아 북쪽에 있는 니시르(Nisir) 산에 멈춘다. 우트나피시팀은 비둘기, 제비 그리고 마지막으로 까마귀를 차례차례 밖으로 내보내는데, 까마귀는 먹고 살 것을 발견했는지 돌아오지 않는다.
구원되었음을 확인한 우트나피시팀은 노아와 마찬가지로 감사와 제물을 바친다. 여기서도 제물의 향기가 강조된다. “신들은 거기서 좋은 향기를 맡았다. 마치 파리들처럼 신들은 제물 봉헌자에게 접근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최고 여신에 의하여 쫓겨나 흩어진다.
때로는 세세한 점에 이르기까지 매우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훨씬 더 주목할 만하게 서로 다른 점이 있다. 성서에서 이야기 전체의 배경으로 삼고 있는 도덕적 이유가 여기서는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다. 창세기에서 전권을 쥐고 계신 유일한 존재와는 달리 여기서는 서로 맞서 있는 “인간적인” 많은 신들이 있다. 그래서 바빌론 이야기에서는 창세기에 대한 풍자화 같은 것을 알아볼 수 있다.
유사점들은 설명을 요한다. 두 이야기가 선사(先史) 시대의 사실, 어쩌면 같은 셈족 환경에서 일어났을 하나의 범람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세기를 지나오면서 셈족의 전승은 달라지게 된다. 바빌론의 전승이 다신론에 의해 압도된 반면에 성서적 전승은 오히려 스스로를 정화하게 되었다. 성서는 윤리적인 면을 강조하면서도 역사적인 핵심을 충실히 보존하고 있다.
바벨탑
바벨탑 건설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 모두에게 채 완성되지 못한 비계(발판)를 갖추고 있는 거대한 탑이라는, 여전히 웅장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이야기는 어떤 굉장한 것에 대해 상상하게 한다. 그러므로 많은 독자들에게는 성서에서 그 탑에 대해 단지 아홉 절(창세 11,1-9)만을 발견하게 되는 애석함이 남는다.
이 구절들은 이른바 선사(창세 1-11장) - 우리는 여기서 자유로운 저작이라는 형태를 빌어 역사적 핵심을 추측하게 하는 특별한 역사 편찬 양식을 만나게 된다 - 에서 마지막 장에 속해 있다. 선사의 서두에서 핵심을 발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느끼는 반면에 홍수에 관한 장에서는 이미 어떤 양식으로 되어 있는 역사적인 이야기와 마주치게 된다. 바벨탑에 대한 이야기에서 우리는 역사의 문지방에 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는 미약한 역사적 암시에 유혹되어, 이야기가 담고 있는 종교적 중요성을 놓칠 위험이 있다.
건축 재료와 시날(Sennaar) 지방에 대한 언급은 두 강 사이의 땅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기원전 4천년에 중요한 도시마다 지구라트(Zikkurat)라 불리는 노대(테라스)가 딸린 탑이 세워졌었다. 많은 곳에서 노대가 딸린 그러한 신전들의 폐허가 발굴된 바 있다. 기초의 둘레와 거대한 계단으로 판단해 볼 때, 모든 지구라트는 어마어마한 건축물이었으리라고 추정된다. 만일 폐허가 오늘날도 현대인에게 충격을 준다면. 그 기념물은 그 찬란함으로 옛 근동의 사람들에게 열 배 이상의 인상을 주었음에 틀림없다.
성서 저자가 어떻게 노대 딸린 바빌론 신전들을 알게 되었는지 추측하기는 어렵다. 그가 직접 그것들을 보았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보다 가능성 있는 것은 그가 선조들과 옛 여행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접하게 된 구전에 의존했으리라는 점이다. 우리 지방에서도 옛 성의 페허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어쨌든 옛 보고자들, 혹은 성서 저자 자신은 신전의 탑에서 하느님 예배와 대립되었던 어떤 것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시점에 이르기까지 고고학은 지구라트의 참된 의미를 우리에게 밝혀 주지 못하고 있다. 그 낱말 자체는 높음, 상승이란 뜻으로 별다른 의미가 없다. 그리고 유적은 더 이상 다른 것을 밝혀 낼 수 없을 만큼 황폐화되었다. 추측 가능한 것은 계단이 달린 탑 꼭대기에 신이 거하는 본연의 선전이 있었으리라는 점이다. 산악 지대에서는 가장 높은 꼭대기가 종종 신들의 거처로 생각되었다. 이와 같은 개념에 고무되어 높은 곳에 하나의 신전 혹은 성소가 세워진 것이다. 성서 이야기에 의하면, 이스라엘도 어느 시기에나 그렇게 했다. 두 강 사이의 땅에서 살던 초기 민족(자그로스 산맥으로 생각되는 산악 지대 출신)들이 그들의 거처를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의 골짜기에 정했을 때. 높은 곳을 찾지 못하자 지구라트를 건설해 그 위에 도시의 주택들보다 훨씬 더 높은 곳에 세워 왔던 신전을 그들의 신들에게 세워 줄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어떻게 성서 저자가 어느 한 신을 기려 세워진 그런 성소를 하느님께 대한 교만과 도전의 표현으로 묘사할 수 있었는가 하는 커다란 의문이 남아 있다. 하느님께서 인간의 자만을 벌하신다는 것, 이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벌이 인류 분산의 기원이 된 언어의 혼동이어야 한다는 것, 이것은 - 적어도 - 상궤에서 벗어난 듯하다. 보통 언어의 다양성은 격리 혹은 통신의 부재에서 생겨난다.
그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이야기 전체의 종교적인 중요성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성사가는 사람들과 언어의 다양성을 하나의 악으로 간주한다. 반면에 단일성은 그에게 있어서 선이다. 이 불행한 분열 때문에 사람은 허약해진다. 그리고 성사가는 대항이라는 악습에서, 즉 위엄있는 바빌론적 건물을 짓도록 사람을 충동한 그 자만에서 원인을 식별해 낸다. 그에게 있어서 계단이 딸린 신전들은 우상 숭배의 행위가 아니라 인간적 힘과 욕구의 표현이다. 그리하여 자만을 꺾고 인류의 단일성을 파괴하는 벌이 내려진다. 언어가 달라진다는 것이 첫째로 언급되나, 그 때문에 폐허가 되기 시작하였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것은 많은 결과들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성령 안에서의 일치의 축제인 성신 강림 대축일에 바로 언어의 다양성이 어떻게 일치를 향한 출발점이 되는가를 주목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그 만큼 예루살렘의 사건은 바벨탑 건축과 명확한 대조를 이룬다. (L’uomo moderno di fronte alla Bibbia에서 박래창 옮김)
[경향잡지, 1990년 6월호, 베난시우스 더 레이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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