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예리고 성벽은 나팔 소리에 무너졌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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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9-07-03 | 조회수3,425 | 추천수0 | |
[성서의 세계 - 구약] 예리고 성벽은 나팔 소리에 무너졌나?
요르단강을 건너가다
이스라엘이 수세기를 내려오면서 하느님의 도우심과 자기들의 운명에 대해 확신의 바탕으로 삼았던 불가사의한 사건은 홍해를 건넌 일이다. 성서의 많은 곳에서는 이 기적을 지치지도 않고 이야기 한다. 어떤 경우에는, 이 이야기에 요르단강을 건넌 이야기가 마치 부록처럼 곧바로 따라온다. “바다는 이를 보고 도망치고 요르단강은 뒤로 물러섰으며”(시편114,3). 가장 위대한 기적은 이스라엘을 억압에서 구원했고, 그와 유사한 기적은 그 백성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출애굽과 약속의 땅에 들어섬은 하느님의 업적이었다.
성서에서는 이 두 기적 가운데 가장 위대한 기적 - 홍해를 건너감 - 을 자연적인 원인의 개입 탓으로 돌린다. “야훼께서는 밤새도록 거센 바람을 일으켜 바닷물을 뒤로 밀어붙여 바다를 말리셨다”(출애 14,21). 그러므로 요르단강을 말리신 일도 자연적인 원인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순수하게 자연적인 설명은 만족스럽지 않다. 확실히 요르단강에는 걸어서 건널 수 있는 지점이 몇 군데 있었다. 예리고에 대한 정보를 얻어야 했던 이스라엘의 정탐원들은 요르단강을 걸어서 건널 수 있는 곳으로 통과했다. 자연스럽게 말해서,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넓고도 얕은 곳을 통해서 요르단강을 건널 수 있었다는 것은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설명을 받아들이면, 어떻게 그런 단순한 사건이 상당히 장엄하게 축하될 만큼 이스라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는가를 절대로 설명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 사건을 신중하게 설명하기 위해서 하느님의 개입을 존중할 필요가 있으나, 동시에 어떠한 방식으로 하느님께서 이 특별한 경우에 개입하셨는가를 조사하는 것이 합당하다.
많은 면에서 요르단강은 특이한 강이다. 그것은 세계에서 가장 큰 강 가운데 하나로 묘사된다. 그 상류에는 하류와 마찬가지로 특별한 경사가 있어서 물은 그 때문에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흐른다. 세계의 모든 강들 가운데서 유일하게 그 강은 언제나 깊게 움푹 패인 땅을 통과한다. 거의 모든 강줄기가 해변보다 낮고, 지중해 수변에 비해 400미터나 낮은 곳에서 사해로 흘러 들어간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수세기를 지나오면서도 요르단강은 어떠한 왕래나 교역에도 이용될 수 없었으며 오히려 동쪽과 서쪽을 자연적으로 갈라놓는 장벽 구실을 하였다. 이 장벽 앞에 여호수아가 있었다.
기원 후 13세기에 있었던 요르단강 강둑 연결에 관해 아랍 지리학자 노에와이리(Noewairi)가 한 이야기가 보존되어 있다. 1267년에 야뽁강이 요르단강으로 역류하는 곳인 담예(Damye) 근처에서 요르단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건설 공사가 시행되고 있었다. 12월 7일과 8일 사이의 밤중에 강바닥이 갑작스럽게 말라 버렸기 때문에 공사는 친척이 되지 않았다. 요르단강 상류에서, 서쪽의 높은 강둑의 일부가 급류로 침식되어 강으로 떨어졌던 것이다. 이 무너진 강둑으로 인해 물의 흐름은 열 시간 이상이나 갇혀 있었고, 아주 낮은 강바닥은 거대한 경사 때문에 몇 킬로미터에 이르도록 말라 있었다.
우리 시대에 들어서는 비슷한 종류의 사건이 1906년과 1927년에 기록되고 있다. 1927년에는 그것이 지진 탓이었다. 담예에서 약간 남쪽에 있던 높이 약 45미터의 서쪽 강둑의 일부가 강바닥으로 떨어졌다. 예리고 고지의 요르단강이 하루 낮과 하루 밤 동안 철저하게 말라붙었을 정도로, 거의 24시간 동안 물은 갇혀 있었다.
여호수아의 기적도 이와 비슷한 원인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경우에 하느님께서는 자연적인 수단을 이용하셨을 것이다. 볼 수 없는 권능을 통해서가 아니라 강둑이라는 수단을 통하여 그분은 성서에서 아담이라고 부르는(여호 3,16) 담예 고지의 요르단 강물을 거두어 두셨던 것이다. 그 사실은 이야기의 서두에서 입증되었다(여호 4,19 참조). 그때는 수면이 높고, 쉽게 지진이 일어난다. 그러한 가정에서 볼 때 기적적인 특성은, 모든 백성이 마른 발로 요르단의 서쪽 강둑에 다다를 수 있도록 적절한 순간에 사건이 일어나고 그 동안에 이스라엘 백성이 통과하였다는 사실에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기적적인 특성은 이스라엘의 눈에 하느님의 도우심에 대한 증거로 보였고 그분께 대한 영원한 신뢰의 동기가 되었다.
예리고의 함락
사해 부근의 메마른 평원에서는 적도의 열기가 거의 모든 생활을 불가능하게 한다. 모든 것은 햇볕에 타 거의 죽어 있다. 그러나 하나의 예외가 있다. 항상 시원하게 흐르는 엘리세오 샘 근처에 언제나 보게 되는, 항아리를 머리에 인 아랍 여인들과 풍부한 물 주위에 있는 초목들이다. 바로 종려나무의 도시 예리고의 오아시스다.
근동의 샘 근처에는 언제나 생명이 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예리고의 영원한 샘 가까이에서는 수천 년 간의 거주를 증명하는 유적으로 형성된 아주 높은 언덕을 볼 수 있다. 이 고대 언덕의 문화는 수세기 동안 번성해 왔다. 예리고의 첫 번째 주민들은 의심의 여지 없이 샘 근처에서 정착하였고 그 정착지는 오랜 역사를 거치며 여러 차례 무너졌다가 재건되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새로운 도시가 고대의 폐허 위에 재건되곤 하였기 때문에 언덕(Tell)은 24미터의 높이에 이르렀다.
지질학자가 이 언덕을 오르면 손이 근질근질하다. 그러나 또한 해석학자도 거기서 엄청난 흥미를 느낀다. 왜냐하면 예리고는 요르단강을 기적적으로 건너간 여호수아에 의해 마찬가지로 기적적인 방식으로 정복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학교에서 사용된 그림 덕분에 도시의 성벽이 사제들의 나팔소리에 어떻게 붕괴되었는지 기억하고 있다. 그 성벽의 잔해를 발견하는 것이 가능할까?
예리고에서는 중대한 발굴이 착수되었다. 첫 번째 원정대(1909-1911년)는 독일인이 지휘했다. 두 개의 다른 성벽이 발견되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고대 가나안 백성의 것으로 드러났다.
이어진 영국 원정대(1930-1936년)는 다른 요새를 발견했다. 그 가운데 하나는 몹시 난폭하게 파괴되었음이 분명했다. 그러기 때문에 지진이나 여호수아 이야기를 생각하게 되었다.
영국과 미국의 탐험이었던 마지막 원정대는 발견된 성벽의 수에 순서를 매기고자 하였다. 현대적인 방법 덕분에 예기치 않았던 결과를 얻어냈다. 언덕의 서로 다른 층을 조사한 결과 첫 번째 거류지는 기원전 6800년경에 조성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거류지 위에 계속해서 다른 도시들이 세워진 것이고, 제일 높은 층은 여호수아보다 몇 세기 이른 기원전 16세기에 파괴된 거류지의 잔해를 드러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호수아 시대의 성벽은 이 성벽보다 높은 층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거의 확실히 보다 후대에 속하는 도시의 잔해가 풍화 작용으로 인해 소멸되었다는 징후들이 있다. 늦은 청동기 시대(여호수아 시대)에 속하는 몇 가지 물건들이 발견되고 있으며, 동시에 폐허의 언덕에서 낮은 곳에 위치하는 어떤 부분들은 보다 위층의 보다 최근 시대에 속하는 흙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이제 여호수아기를 읽고 이러한 자료를 고려해 볼 때, 성서 이야기가 예리고 함락에 몹시 과장된 어조를 부여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 사건은 특별하고도 합당한 방식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이는 저자가 멋대로 상상했다는 뜻이 아니라, 예리고 함락의 중요한 사실들을 서술과 서사시로 구분하여 받아들이는 역사-비판적 조사가 요구된다는 것을 뜻한다. 즉 이 이야기는 하나의 기적을 암시하고 있으나, 우리는 이 기적을 받아들이는 한편 그것이 일어난 방법을 조사할 수 있고 조사해야만 한다.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설명은 사건을 상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지진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나팔이 울리는 순간에 성벽은 지진 때문에 무너졌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적은 그 나팔 소리와 함께 지진의 맹렬함과 일치성에 있게 된다.
본문 자체를 고려해볼 때 “성벽”이라는 말이 다른 방식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도 가능하다. 히브리어에 있어서 “성벽”이라는 말은 우리 언어에 있어서 ‘성’과 ‘도시’처럼 이중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예컨대 하나의 성이나 도시의 함락에 대해서 말할 때 누구나 성벽의 붕괴를 생각하지 않고 주둔군의 항복을 생각한다. 예리고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성벽이 무너진 것은 도시 주둔군의 항복을 뜻할 수 있다. 그러한 경우 성벽 주위를 일곱 번 돌고 나팔을 부는 것은 심리적인 요인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렇게 가정해 볼 때 성서는 돌로 된 성벽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그러나 어쩌면 이 사건들 자체를 설명하지 않거나 우리가 이 앞에서 시도한 것처럼 언어의 의미를 엄밀히 따져 해석하려 들지 않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왜냐하면 문제의 문학 유형이 사실들을 꼼꼼히 밝혀 낼 의도가 없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중요한 사건을 받아들일 때는 세부적인 것들과 기적적인 특성에 관해 똑같이 확실하게 의견을 말하지 않는 것이 보다 현명한 일이다. (L’uomo moderno di fronte alla Bibbia에서 박래창 옮김)
[경향잡지, 1990년 12월호, 베난시우스 더 레이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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