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유딧은 허구의 이야기인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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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9-07-03 | 조회수2,894 | 추천수0 | |
[성서의 세계 - 구약] 유딧은 허구의 이야기인가
한 레위인이 본 역사
언젠가 어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성탄 밤에 대한 작문을 해오라는 숙제를 내주었다. 교회의 한구석에서 성무를 도왔던 한 아이는 시야를 가로막는 무거운 외투와 넓은 어깨말고는 다른 것에 대해 말을 할 수 없었다. 목을 길게 빼고 그가 본 것은 조명받은 제단과 벽의 밝은 빛뿐이었다.
제단 가까이에서 복사한 아이의 이야기는 전혀 달랐다. 그는 사제의 예식에 대해 세밀하게 썼고, 부제와 차부제, 촛대잡이와 다른 시종자들에 대해 말했다. 또한 그는 설교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고, 성체 축성 때의 특별한 종소리, 오르간 소리 등에 대해 말할 수 있었다. 이것이 복사한 아이의 눈에 비친 성탄 밤이었다.
이러한 차이점은 성서에서 열왕기를 읽고 나서 역대기로 옮겨 갈 때 발견된다. 예를 들어 열왕기는 솔로몬이 성전에서 집전한 중요한 봉헌의 순간을 간단하게, 거리를 두고 묘사한다. “사제들이 성소에서 나올 때 구름이 야훼의 전에 차 있었다. 사제들은 그 구름이 너무 짙었으므로 서서 일을 볼 수가 없었다. 야훼의 영광이 야훼의 전에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1열왕 8,10-11).
반대로 역대기의 저자는 레위인들 가운데 있었으므로 사건을 아주 상세하게 표현한다. “사제들이 성소에서 나올 때,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이 그 아들들과 형제들을 모두 거느리고 레위 성가대원으로서 모시옷을 입고 바라와 칠현금과 거문고를 들고 제단 동쪽에 늘어섰고, 이들과 함께 백이십 명 사제들이 나팔을 입에 대고 불었다. 거기에 참석한 사제들은 순번을 가리지 않고 전원이 목욕 재계를 했던 것이다. 이들은 다 같이 나팔을 불고 노래를 불렀다. 야훼를 찬양하고 감사를 드리는 그 소리가 한소리처럼 들렸다. 나팔과 바라와 그 밖의 악기에 맞추어, ‘야훼 어지셔라, 그 사랑 영원하여라’ 소리 높여 찬양하는데, 야훼의 성전에는 구름이 가득 찼다. 구름이 어찌나 짙었던지 사제들이 더 이상 예식을 계속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만큼 야훼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 찼던 것이다”(2역대 5,11-44). 이는 분명히 한 레위인의 얘기이고 이 때문에 우리는 역대기 안에 한 레위인의 눈에 비친 이스라엘의 역사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예식 집전자들에 대한 레위인의 관심은 다윗 왕에 관한 보고서에도 드러난다. 역대가 저자에 의하면, 강력하고 중앙 집권화된 왕국을 건설한, 손에 칼을 쥔 이 전쟁 영웅은 무엇보다도 성전 예배의 창립자였다. 그는 아주 작고 상세한 데에 이르기까지, 성전의 모든 시설을 갖추는 일에 관여하였다(1역대 22-29장). 그는 매우 화려한 전례를 거행하며 성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 왔고(1역대 15-16장), 각각의 레위 가문에게 다양한 기능을 할당하였다. 그는 그들을 위하여 전례 노래뿐만 아니라 전례 규범과 그들의 생계를 위한 규정까지도 짓고 정하였다.
저자는 이 레위적 시각에 따라 역사의 흐름도 묘사한다. 다른 성서 저자들보다 더, 그는 사건들을 하느님께로 환원시킨다. 왕을 선택하는 분도 그분이시고 정치적인 상황을 조성하는 분도 그분이시다. 선택된 백성을 위해 싸움을 하는 분도 하느님 당신이며, 사람은 전례 노래로 하느님께 찬양을 드리는 것 외에는 달리 아무것도 해서는 안된다. 그에 대한 예로서, 언젠가 백성이 적들에게 포위되어 커다란 위험에 직면하였을 때 여호사밧 왕이 성전에서 기도 예식을 주선한 장면을 들 수 있다. “그들이 출동하는 마당에 여호사밧이 나서서 당부하였다.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 시민은 나의 말을 들어라. 야훼께서 너희 하느님이시다. 그를 믿어라. 그리하면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그가 세우신 예언자들을 믿어라. 그리하면 이기리라.’ 그리고 백성들과 의논한 다음 야훼를 노래할 성가대를 거룩한 예복을 입혀 군대 앞에 세워 보냈다. 성가대원들은 ‘야훼께 감사하여라. 그의 사랑 영원하여라.’ 하고 노래를 불렀다. 이렇게 큰소리로 찬양을 부르기 시작하였을 때 야훼께서 암몬과 모압과 세일산에서 유다를 치러 온 군대를 교묘하게 치시니, 암몬 백성과 모압 백성이 세일산에서 온 사람들을 전멸시키려고 달려들었다. 이리하여 저희끼리 맞싸워 자멸하고 말았다”(2역대 20,20-23).
게다가 책 전체에서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공적에 따라 상급 혹은 처벌을 주신다. 하느님은 이 세상에서도 선을 보상해 주시고 악을 벌하신다. 저자가 선한 왕들, 즉 다윗, 여호사밧, 히즈키야 그리고 요시아 왕들에 대한 축복을 다루기 위해 한참을 머무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반면에 그는 덜 선한 왕들에 대해서는 슬쩍 암시만 할뿐이며 북왕조의 이교도적인 왕들에 대해서는 전혀 말하지 않는다.
어쨌든 역대기는 진실을 변질시키지 않고 이스라엘 역사의 중요한 부분을 검열하나, 교훈이 될 만한 사실들만을 기술한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교육적인 역사서가 편찬되었으며, 역대기는 역사적 줄거리를 지닌 교훈적인 작품이라 불릴 수 있겠다. 다른 많은 역사서들 가운데 역대기는 의심의 여지 없이 특수한 형태를 지닌 역사 편찬이다.
유딧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유딧기를 읽는 사람은 많은 의문점을 갖게 된다. 고대로부터 유딧기가 불러일으킨 논쟁들은 그 책이 구성된 시대로부터 유래하는 어려움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사실 디아스포라의 허브리인들은 그 책을 성서들 속에 배정한 반면에 팔레스티나의 히브리 공동체는 그것을 결코 성서 목록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러한 판단의 차이는 필연적으로 그 영향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미쳤으므로, 초세기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유딧기의 신성한 특성을 받아들인 반면 다른 이들은 그것을 반대하고 나아가 감도를 받은 책의 모음에서 그것을 삭제해 버렸다. 그 후 16세기의 개혁자들이 유딧기를 배척했을 때 트리엔트 공의회는 명백하게 그 책을성서 경전 목록에 받아들였다. 이와 같이 다른 평가 때문에 그 책의 본문은 우리에게 다소 일그러져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책이 배타적으로 제기하는 의문점들을 왜곡된 본문 탓으로 돌려서는 안된다.
가장 논쟁이 되고 있고 거의 모든 독자를 괴롭히는 문제는 유딧이 행동하는 방식에서 나온다. 그녀가 행한 것은 실제로 영웅적인 행위인가? 우리는 더 말할 나위도 없이 그녀를 귀감으로 삼을 수 있는가? 그녀는 무모하게 위험에 몸을 내맡기는 것은 아닌가? 그녀는 거짓으로 구원되는 것은 아닌가?
그러나 이러한 질문들은 비록 가치가 있다 하더라도 그 책의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리지는 못한다. 오히려 이 질문들은 아주 합리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유딧의 탓으로 돌릴 수 있는 것은 거짓말이 아니라 별난 모호함일 뿐이다. 나아가 위험을 꾀한 것은 그녀가 아니었고, 거기에는 그녀에게 용기와 확신을 준 내적 힘에 의한 충동이 있었다. 인간적으로 보아 모든 면에서 그녀의 행동 방식을 입증하기는 어려우나, 하느님의 도우심에 대한 그녀의 믿음과 신뢰에는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반면에 가장 큰 어려움은 많은 점에 있어서 이 이야기가 있을 법하지도 않고 불가능한 것이라는 점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즉 이야기를 꼼꼼하게 살펴볼 때 우리가 마주치는 중대한 역사적 오류들은 우리를 실망시킬 뿐만 아니라 책 전체의 역사적 성격에 대해서 심각한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러한 모순의 예로서 니느웨의 왕이라 일컬어지고 있고 이야기의 중요한 등장 인물 가운데 하나인 느부갓네살을 지적할 수 있다. 이 사람은 결코 아시리아의 수도 니느웨의 왕이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바빌론의 왕이었다. 이는 파리와 베를린을 혼동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기원전 850년에서 612년 사이에 니느웨가 광대한 제국의 수도였고 605년에서 562년 사이에 느부갓네살이 바빌론을 다스렸던 반면에 유딧이 살았던 세계는 이 제국에도 저 제국에도 집어넣을 수 없다. 실상 유딧이 출현하였을 때 히브리인들은 유배에서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했으며 한 대사제에게 통치를 받고 있었다. 그들의 나라는 북에서 남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정치적 단일체였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유딧의 업적은 대략 기원전 500년에서 300년 사이에 자리잡아야 한다.
그러므로 첫 번째 가정은 이야기가 역사적 내용이 없는 창작품이라는 것이다. 이 책의 신적 기원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가정이 아주 쉬운 해결책이 된다. 그러나 이 책이 영감을 받은 책임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이러한 어려움들을 고려해서 사려 깊은 태도를 지녀야 할 것이다.
사실 이 책은 여기저기서 분명한 역사적 성격을 제시한다. 시대적으로 명확한 기간을 지적하는 것을 넘어서 중요한 등장 인물들의 가계표를 언급하고 마지막으로 승리에 대한 연례 기념식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교 전승은 언제나 이 책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간직해 왔고 나아가 그리스도인 편에서는 그 역사적인 성격이나 의향에 대해서 결표 의심해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인 어려움들은 본래의 뜻으로 일컬어지는 역사 편찬을 배제한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중간 길을 생각하게 된다. 즉 350년경의 역사적 사실에서도 도시에 접근한 혹은 도시를 포위한 적에게 무장한 힘이라기보다는 하느님께 대한 신뢰로 획득한 승리를 통하여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자 했을 것이다. 과거에 하느님께서 언제나 우리를 도우셨듯이, 지금도 그분은 우리를 보살펴주시고 앞으로도 우리를 보살펴주시리라고. 그러나 단순한 말로 이것을 말하는 대신에 그는 하느님께서 해방시켜 주신 사람들과 이스라엘에 대한 다양한 공격을 한자리에 놓는다. 그는 그 시대의 적인 홀로페르네스와 함께 바빌론 시대의 느부갓네살과 훨씬 이전 시대의 아시리아 군대를 언급하고, 그들이 모두 하느님께 대한 신뢰로 격퇴되도록 한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전역사에 관한 전망이라기보다는 회고담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딧기도 역대기를 생각하게 한다. 유딧기 역시 자유로운 형태의 역사 편찬이며 그 안에 담긴 교훈적인 요소가 중요한 목표가 된다. 작은 일화 - 역사적인 핵 - 는 독자를 교화시킬 목적에서 개성적이고 예술적인 방식으로 작성된다. 이 이야기의 중심에는 역사적인 유딧이 있고, 그녀는 하느님께 대한 이스라엘의 신뢰를 대변한다. (L’uomo moderno di fronte alla Blbbia에서 박래창 옮김)
[경향잡지, 1991년 6월호, 베난시우스 더 레이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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