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유다교에서 해방되는 그리스도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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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9-07-05 | 조회수2,699 | 추천수0 | |
[성서의 세계 - 신약] 유다교에서 해방되는 그리스도교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시오
마티아 사도 축일에 아사시의 프란치스꼬는 마태오 복음의 한 구절을 들었다. 그는 그 구절에 깊이 감동하였고, 예수의 그 권고에서 개인적인 계획을 얻었다. “가서 하늘 나라가 다가왔다고 말하며 선포하시오. 병든 이들은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은 일으키며 나병환자들은 깨끗이 해주고 귀신들은 쫓아내시오. 여러분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시오. 여러분은 전대에 금도 은도 동전도 지니지 마시오. 집을 떠날 때에 자루도 속옷 두 벌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시오. 사실 일꾼은 마땅히 제 양식을 얻을 만합니다”(마태 l0,7-l0). 프란치스꼬가 이 말씀에 감동된 순간부터 교회는 가난한 맨발의 ‘작은 형제회’를 알게 된다.
이 구절은, 마태오가 예수의 입을 통해 말하고 있고, 산상 설교와 연결되어 있는 두 번째 담화의 일부이다. 다시 말해 이 산상 설교에서 새로운 나라의 시작이 선포되었고 청중들은 그 메시지를 기쁨과 열광 속에 받아들였다. 나라의 현존을 사실로 드러내었던 연속되는 아홉 가지 기적은 더욱더 열광을 불러일으켰다. 어느 곳에나 큰 새로운 스승과 새로운 가르침에 관한 소식이 알려지게 되었다. 게다가 예수께서는 바로 당신의 메시지를 더욱 광범위하게 유포시키기 위해 제자들을 파견하셨다. 이것은 마태오 복음에서 볼 수 있는 예수의 성공의 정점이다.
복음서 저자는 사도들의 사명에 관한 예수의 담화를 통해 열두 사도에게 맡겨진 임무를 포함시킨다. 사도는 파견된 자, 사절을 뜻한다. 따라서 마태오는 사명에 관한 담화 바로 앞에 ‘열둘의 선택’을 자리잡게 한다.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온갖 질병과 온갖 허약함을 고쳐 주게 하셨다”(마태 10,1). “예수께서는 이 열두 사람을 파견하시면서 그들에게 이렇게 멍하셨다……”(마태 사도 10,5). 루가가 선택을 산상 설교 이전에 배치하기 때문에 우리는 마태오가 사명에 관한 담화를 특별히 돋보이게 하려고 - 담화를 짜맞출 때 기울인 배려에서 나오는 강조 - 분명히 선택을 적절한 순간에 자리잡게 했다는 인상을 지워 버릴 수 없다.
또한 담화의 내용에서도 복음서 저자의 이례적인 배려가 드러난다. 마르코는 사도들의 사명에 대해 말하면서, 예수께서 열둘에게 부여하시는 임무를 짤막하게 몇 마디 말만으로 보고한다(마르 6,7-11). 흔히 예수의 말씀을 폭넓게 재생하는 루가도 마찬가지로 사도들의 사명에 관해서는 얼마 안되는 구절을 선택한다(루가 9,1-5). 그는 그러나 “열둘”이 아니라 72명의 제자들에 대한 두 번째 사명을 묘사한다. 그리고 이 기회에 예수께서는 부분적으로 첫 번째 담화와 조화를 이루지만 새로운 요소들도 담고 있는 다른 담화를 선포하신다. 마태오가 사명에 관한 담화를 재생하는 38개의 구절은 따라서 신중하게, 즉 예수께서 두 번째 사명 때에 혹은 또 다른 기회에 사도들에게 하신 말씀들로 배합되어 있다는 인상을 준다.
담화의 인위적인 구조, 각 부분들 사이의 연결의 결여 그리고 내용은 이러한 인상을 확인하게 해준다. 예컨대, 닥쳐오는 박해를 다루는 부분(마태 10,17-25)은 예수께서 생애의 마지막 순간에 선포하신 담화처럼 보인다. 또한 성령이나(마태 10,20) 사람의 아들(마태 10,23)이 오신다는 약속도 예수의 마지막 날들에 선포된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이 더욱 논리적일 것 같다. 그러므로 마태오는 뼈대뿐만 아니라 구성 자체를 세워 놓았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는 누구나 즉각적으로 열둘의 사명이 예수의 생애에 있어서 중요한 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나아가 산상 설교에 정점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사명에 관한 담화의 핵심은 마르코와 루가와 병행하여 마태오의 복음에서도 발견된다. 그리고 중세에는 한 사도의 축제일에 복음으로 낭독하였다. 프란치스꼬는 이 말씀에 귀기울였고 글자 그대로 예수의 초대를 실천에 옮겼다. 그와 그의 형제들은 돈도(양식) 자루도, 신발이나 지팡이도 없이 선교하러 떠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임무가 문자대로 실천되어야 하는지, 어느 사도나 개개의 금지 사항을 따라야 했는지 물어 볼 수 있다. 확실히 그렇지 않다. 사실 마태오는 선발과 지팡이를 금지하고 있는 반면에 마르코는 지팡이와 샌들을 허용한다(마르 6,8). 그것은 분명히 파견(별리, 이탈)의 정신 혹은 더 낫게는 신뢰의 정신과 관련 있다. 주님께 초대받은 이는 누구나 전능하신 분이 그를 동반하시리라는 신뢰를 지녀야 한다. 이 신뢰에 장애가 되는 모든 것은 거부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장애가 때때로 다른 방식으로 극복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장애를 피하는 것이 엄격하게 필수적이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지된 모든 것에 대한 전적인 포기는 한층 근원적이고 더욱 확실한 길이다. 그리고 어느 시대에나 사명에 관한 담화를 그 문자적인 의미로 실현하는 하고자 하는 사도적인 마음이 있을 것이다.
적의를 품은 바리사이파 사람들
정통파 히브리인들과 하는 대화에서 우리는 흔히 그들이 예수의 인격에 대해 상당한 연민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들은 예수가 설교한 쇄신과 탐구를 하나의 아름다운 일로 간주한다. 그리고 실제로 성부께 대한 예수의 사랑과 구약에 대한 존경심은 유다교와 합치점을 이룬다. 그러나 예수에 대한 이러한 인식에는 늘 바오로에 대한 거부가 따라온다. 예수의 교리를 유다적이 아닌 새로운 이상으로 삼으면서 변형시키고 가꾼 것은 바오로다. 그러나 나는 예수께 대한 거의 이의 없는 찬양에 강조를 두었다. 이러한 이상에 따라 살 목적으로 율법의 모든 규정을 준수하고자 한 한 히브리 청년이 어느 날 내게 이렇게 말했다. “허약한 이들과 눈먼 이들의 고통을 자비롭게 굽어 보셨던 예수의 온화하고 인간적인 모습이 ‘눈먼’ 바리사이파 사람들 앞에서는 비인간적으로 완고해진다”고. 이러한 사실은 - 율법에 충실한 그러한 히브리인은 - 혹은 이 말들은 나로 하여금 예수의 말들이 아니거나 혹은 예수는 더 이상 예수가 아니라는 함정에 빠지게 한다.
예수의 격렬한 많은 말씀들을 사실로 보지 않고 복음서 저자들의 의도로 돌리는 것은 참으로 곤란한 일이다. 그러나 예수의 미묘한 선(善)에 제한을 두는 것이 어쩌면 우리에게는 더 곤란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의 설명을 찾거나 적어도 가능한 희석화를 시도해 본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후기 유다교에서 고유한 종교 집단을 이루었다. 그들의 기원은 아마도 기원전 2세기로 추정된다. 여하튼 다음 세기에 그들은 종교 분야에서 첫자리를 차지했고 특히 모세법과 성조들의 전승에 대한 연구에 전념하였다. 그들은 율법의 명성 있는 해설자로서, 규정들 특별히 안식일 휴무, 의식의 정화 그리고 십일조 납부를 문자 그대로 실천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들은 주로 평신도 신분에 뿌리를 두었고, 그들의 권한의 근거를 출생이나 언어가 아닌 그들의 박식함에 두었다. 이 때문에 그들은 대사제들과 사두가이파 사람들과 대립하였는데, 후자들은 그들의 출생으로 사제 귀족에 속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복음서에 나타나자마자 일종의 혼란이 일어나고 격렬한 비난이 따른다. 확실히 독자들을 이에 대비시키기 위해 어떤 판단과 심지어 안내조차 필요지 않다. 비난의 내용은 충분히 설명된다.
마태오는 이미 예수의 현현 이전에 요르단강의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장면에 넣어 요한에게 질문하게 한다. “요한은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사두가이파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그의 세례를 받으러 오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독사의 족속들아, 닥쳐올 진노를 피하라고 누가 너희에게 일러주더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너희끼리 우리는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모신다는 말은 아예 할 생각도 말아라’”(마태 3,7-9). 그들의 태도는 거기서 베일을 벗었다. 율법에 대한 그들의 충실성의 결실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거부되었던 것이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에 대한 예수의 견해는 산상 설교에서 처음으로 알려진다. “여러분의 의로움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의로움보다 더 넘치지 않으면 여러분은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마태 5,20). 그들이 겉으로 드러내 보이는 정의는 사람들의 마음을 뚫고 들어가지 않았다.
그런데 예수의 성공 이후에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비로소 무대에 나타났다. 우선 그들은 그분의 제자들을 공격한다. “어찌하여 당신네 선생은 세리들과 죄인들과 어울려 음식을 먹는가?’(마태 9,11). 그리고 예수의 기적들에 대한 그들의 비열한 의견을 듣게 된다. “그가 귀신 두목의 힘을 빌려 귀신들을 쫓아낸다”(마태 9,34).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직접적인 공격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공공연한 싸움은 초대받은 사도들이 예수의 이름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을 때 시작된다. 이것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겐 참을 수 없는 것이었고, 따라서 그들은 공공연하게 싸움에 착수했다. “예수께서는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걸어가셨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굶주린 나머지 밀이삭을 뜯어 먹기 시작했다. 그러자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보고 예수께 ‘보시오, 당선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고 말했다”(마태 12,1-2). 조금 뒤에 마태오는 말을 잇는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나가서 예수에 대한 모의를 하여 그분을 없애 버리기로 하였다”(마태 12,16). 불화는 절정에 달했고, 치명적인 투쟁으로 바뀐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이러한 투쟁은, 마태오 복음에서 예수의 명백한 패배로 바뀐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그들의 영향력으로 어쩌면 군중들을 위협했는지도 모른다. 예수는 사실상 몸을 피하고, 군중이 이해하지 못하는 비유로 말씀하시면서 처음에는 당신의 가르침을 드러내지 않으셨다. 나중에는 당신이 뽑은 이들을 따로 불러,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지력에 마지막으로 저주를 내리기 위해 사도들에게 두 번째 담화를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돌아가신 다음날 투쟁은 절정에 달했다.
“그 이튿날, 곧 준비일 다음날 대사제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빌라도에게 몰려가서 말하였다…….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했다. ‘여러분에게 경비대가 있으니……’ 그들은 가서 돌을 봉인하고 경비대로 하여금 묘소를 지키게 하였다”(마태 27,62-66). 이것이 과연 그들의 결정적인 승리였는가?
진정한 승리는 다마스커스의 문 앞에서 사울이라는 한 바리사이파 사람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무릎을 꿇고 “주님, 제가 어떻게 할까요?”(사도 22,10) 하고 질문할 때 이루어진다. 그가 유다교에서 그리스도교를 해방시킬 것이다. (L'uomo moderno di fronte alla Bibbia에서 박래창 옮김)
[경향잡지, 1992년 10월호, 베난시우스 더 레이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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