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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신학적이고 영성적인 복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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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05 조회수3,579 추천수1

[성서의 세계 - 신약] 신학적이고 영성적인 복음서

 

 

네 번째 복음서의 상징주의

 

네 번째 복음서는 예수의 기적들을 ‘표징’으로 제시하기 때문에, 그것을 이해하기 위하여 거기에서 드러나는 실재를 탐색하는 것은 당연하고 필요한 일이다. 우리는 태생 소경의 치유에서 예수께서 세상의 빛으로 나타나시고, 라자로의 부활은 어떻게 예수께서 부활이요 생명이신지를 입증한다는 것을 이미 암시했다. 표징과 의미하는 실재 사이의 이러한 연결에서 상징주의가 생겨난다. 그리스어 sun-ballo(함께 놓다)에서 이끌어 낸 상징주의는 두 가지 일(의향, 생각, 목적들)이 함께 놓이고 함께 제시된다는 것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한 다발의 꽃으로, 꽃만이 아니라 그 꽃의 상징인 사랑도 제공한다. 따라서 모든 상징주의에서는 그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네 번째 복음서를 상징적인 복음서라고 부르는 것은, 요한이 예수의 생애에 대한 순수한 보고나 그분의 가르침에 대한 단순한 평론을 우리한테 주고자 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일화가 가르침의 일부도 포함하도록 예수의 생애를 선별하고 정리하였다는 말을 뜻한다. 이 때문에 많은 묘사들은 더욱 심오한 가치를 갖고, 더욱 멀리 내다보도록 초대한다. 따라서 사람들과 사실들은 아마도 일독에는 나타나지 않는 더욱 높은 개념, 새로운 교리적 국면을 전하거나 밝혀 준다. 이러한 요한의 방식에 일단 확신을 가진다면, 신비스럽고 동시에 전형적인 그의 복음을 이해하기가 쉬워진다.

 

네 번째 복음서의 상징주의는 무엇보다도 일련의 일곱 표징에서 암시된다. 확실히 기적이란 말이 ‘표징’으로 대체된다는 것은 우리한테 따라야 할 길을 가리킨다. 나아가 일곱이라는 숫자는 거룩하고 상징적인 숫자이며, 그것으로 통상 풍부함이 드러난다. 이 완성된 표징들을 더욱 가까이서 고려해보면, 물이 술로 변하는, 덜 시끌짝한 표징으로 시작되어, 이미 죽은 지 나흘이나 되는 라자로의 부활이라는 더욱 웅장한 기적으로 끝난다. 따라서 처음부터 시작하여, 표징들이 상승선을 따라 계속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즉 표징에서든, 그것이 의미하는 교리에서든, 예수의 인격과 업적에 대한 소개에서든 점진적인 단계가 있다.

 

또한 이야기의 다른 부분들도 언뜻 보아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더욱 풍부한 내용을 드러낸다. 한번은 예수께서 11~12월 중에 있는 성전 봉헌 축제에 나타나셨다. 유다인들은 그분 앞에 무관심하고 쌀쌀한 태도를 보였다. 복음서 저자는 이러한 냉정함을 “때는 겨울이었다.”(10,22)는 단 한 행으로 표현하였다. 유다가 최후의 만찬 방을 배반자로서 떠나며 문을 닫았을 때는 “밤이었다”(13,30). 유다를 둘러싸고 있는 외적인 어둠에 대해서 밤일 뿐만 아니라 배반자의 마음속에서 만찬의 빛이 꺼졌기 때문에 밤이었다.

 

언젠가 사마리아를 지나가시는 길에 예수께서는 야곱의 우물가에 앉으셨다. 한 여인이 물을 길으러 왔고 그분은 여인한테 마실 물을 청하셨다. 서서히 이야기는 우물의 신선하게 샘솟는 물에서, 예수께서 당신의 가르침과 함께 주시는 살아 있는 물로 넘어갔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샘물처럼 솟아올라 영원히 살게 할 것이다”(4,14).

 

같은 식으로 많은 일화들은 거기서 더 찾아야 할 필요가 있는 다른 어떤 것을 암시한다. 성전에서 장사꾼들을 쫓아내시며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곧바로 복음서 저자는 이렇게 덧붙인다. “예수께서 성전이라 하신 것은 당신의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2,21). 성목요일에 발을 씻어 주시는 것은 하느님의 식탁을 위해 요구되는 내적인 청결과 동시에 섬길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랑을 가리킨다. “스승이며 주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13,14).

 

또한 다른 복음서들에서는 어느 정도 현저한 성격으로 단순히 사람들이 구별되지만, 같은 인물들이 네 번째 복음서에서는 상징이 되는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출현 자체가 이미 메시지를 선포한다. 그래서 더욱 오래 된 복음서 저자들은 세례자를 비록 독특하긴 하지만 몇 가지 유대로 우리의 지상 생활에 결속되어 있는 설교자로 묘사한다. 그들은 그의 의복, 양식, 감금, 죽음 그리고 무덤을 묘사한다. 루가는 그의 잉태, 탄생 그리고 유년 시절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참으로 인간적인 이 모습은 네 번째 복음서에서 거의 배타적으로 하나의 소리가 된다.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요”(1,23).

 

마침내 예수께서 분명한 모습으로 하나의 상징이 되신다. 세례자는 그분을 잘 알려진 말로 지적한다. “하느님의 어린양이 저기 가신다”(1,29. 36). 그리고 계속해서 네 번째 복음서에 따르면, 하느님의 이 어린양은 성전에서 양들을 바치는 시간에 죽으신다(19,31). 그리고 예수의 옆구리에 난 상처는 파스카 어린양과 관련된 옛 규정 - “그의 뼈는 하나도 부러지지 않을 것이다”(19,36) - 의 성취라고 한다.

 

 

신학적인 복음서

 

초대 교부들 가운데 한 분은 네 번째 복음서를, 그 심오한 신학적 내용 때문에, ‘영성적인 복음서’라고 정의했다. 복음서 저자 요한을, 복음서 처음부터 지극히 높은 곳을 날며 그 눈길을 천상적인 것에 고정시키고 있는 독수리로 표현한 전승은, 그의 기록을 다른 세 복음과 명백하게 구분하였고 그러한 정의를 확증하였다. 서문은 의심의 여지없이 네 번째 복음서의 가장 심오하고 교리적인 부분이다. 첫머리의 말씀들은 하느님의 아들의 신성, 영원성 그리고 전능에 대한 승고하고 종합적인 단언을 통해 요한한테 신학자라는 칭호를 주기에 충분하다고 하겠다.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 모든 것은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다”(1,1-3).

 

그러나 신학적이고 영성적인 복음서 저자의 자격, 독수리의 강력한 비행은 다른 부분을 통해서도 충분히 드러난다. 그의 복음서 모든 곳에서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내려온 하느님의 아들이다. 그와 같이 그분은 그 업적으로, 그 담화로, 종합적이고 심오한 그 표현으로 계속해서 소개되신다. 요르단강에서 세례받으실 때, 세례자는 그분에 대해 이렇게 증언한다. “이분이 하느님의 아들이다”(1,34). 그는 니고데모와 나눈 이야기에서 분명하게 말한다.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의 아들 외에는 아무도 하늘에 올라간 일이 없다”(3,31). 유다인들과 담화에서 예수께서는 성부와 같은 선상에 계신다(5,17). 아버지처럼 그분도 죽은 이들을 살리신다(5,21). 아버지께서는 그분 안에 계시고 그분은 아버지 안에 계신다(10,38).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10,30). 고별 담화에서 아버지와 같다는 주제는 계속 반복된다.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14,9).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14,11). 이러한 신학적 견해들은 사제적인 기도에서 그 정점에 이른다. “이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 이 사람들도 우리들 안에 있게 하여 주십시오. 그러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될 것입니다”(17,21).

 

요한의 사상에 따르면, 아들은 하느님의 비밀을 사람들한테 드러내기 위하여 세상에 온다. “일찍이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다. 그런데 아버지의 품안에 계신 외아들로서 하느님과 똑같으신 그분이 하느님을 알려 주셨다”(1,18). 이러한 계시의 목적은 믿는 이들한테 생명을 전하는 데 있다. “영원한 생명은 곧 참되시고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 아버지를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17,3).

 

성서에 자주 나오듯이, 이 문맥에서 ‘안다는 것’은 동양적인 방식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즉 어떤 사람을 선택하는 것 또는 더 낫게는 생명의 공유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언어에서, 특히 “어떤 이를 무시하다”는 부정적 표현에서 만나 볼 수 있는 의미다.

 

교리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서술적인 부분 같은 요한 복음의 다른 부분들은 이 ‘하느님을 앎’, 그분과 살아 있는 접촉을 유포하는 목적을 지닌다. 이러한 동기 때문에 요한의 복음은 합당하게 신학적인 복음, 신중하게 숙고하여 그리스도에 관한 폭 넓은 교리를 제시하는 복음이라 한다. 어떤 이들에 따르면, 그러한 교리는 다소 편파적이고, 고대 그리스도교의 영지주의적 경향으로 어떤 식으로든 영향받은 교리다. 즉 교회 밖의 환경에서 형성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러한 가설에 따르면 네 번째 복음서는 아주 뒤늦게, 적어도 2세기경 사도들 이후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 기록되어야 한다. 그리고 엄밀하게는 팔레스티나 밖에 있는 영지주의의 어떤 핵심부에서 비롯되었어야 한다. 그러한 가정은 분명히 성 요한 사도를 네 번째 복음서의 저자로 보지 않고 동시에 팔레스티나 그리스도교의 영향을 거부한다.

 

그러나 바로 몇 십 년 전, 아주 우연히 네 번째 복음서의 기원에 관한 새로운 빛이 밝혀졌다. 1955년부터 1956년 제네바에 있는 보드메르 도서관에서 요한 복음의 완전한 본문을 담고 있는 사본이 발견되었다. 그것은 2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가는 사본이었다. 공관 복음서들이 요한 복음보다 먼저 이루어지긴 했지만, 바로 이것은 가장 오래된 사본이 전해진 것이다. 그리고 복음서의 단편적인 사본들 가운데서도 언제나 네 번째 복음서가 그 숫자나 고대성에서 첫자리를 차지한다.

 

맨체스터에 있는 존 릴란드의 도서관에서 1935년에 요한 복음 18장 본문으로 양면이 꽉 차 있는 양피지가 발견되었다. 그것은 125년경에 이집트에서 기록되었고, 요한의 완전한 복음이 실린 한 페이지임이 분명했다. 나아가 복음서 자체가 그러한 파피루스들이 발견된 이집트에 그 기원을 두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그리고 수입된 - 고대에는 오늘날보다 더 시간이 요구되었다 - 것이라는 사설이 납득되었다. 그것으로 ‘신학적이고 영성적인’ 복음서가 삼사 세기의 것이 아니고 또 사도 시대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기록된 것이 아니라, 전통적 명제에 상응하여 2세기 전에, 아마도 최후의 사도들이 생존했던 시대에 그 기원을 둔다는 것이 충분히 그리고 반박할 여지없는 논거로 입증되었다.

 

그리고 사해 근처에 있는 쿰란의 두루마리들이 예수 시대의 종교 생활에 대해 새로운 면을 밝혀 준 이래, 오늘날 우리를 저 멀리 떨어진 팔레스티나적인 생각으로 더욱 깊이 뚫고 들어가게 한다는 것은 네 번째 복음서 교리의 팔레스티나 기원을 과거보다 더 합당하게 해준다. 결정적으로 그것이 옛 전승이 바라듯이 다른 곳에서, 어쩌면 에페소나 안티오키아에서 구성되었다 할지라도, 네 번째 복음서의 어떤 묘사와 논의들이 사해에서 살던 종교 공동체 안에 잘 알려져 있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게다가 거기서 유래하는 기록들의 어떤 본문들은 요한 복음에 나오는 것과 문자적으로 동일한 표현과 개념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요한이 자신의 생각들을 팔레스티나 밖의 환경에서 이끌어 냈다는 것을 지지할 필요가 없다. 네 번째 복음서는 그 교의나 내용이 1세기말경 팔레스티나의 품속에서 기원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으로 전통적인 관점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신학적 복음서에 반대하는 의심들은 사라진다. 그리고 네 번째 복음서를 통해 사도의 사상, 그리스도의 사상 자체를 잘 되짚어 볼 수 있다. (L’uomo moderno di fronte alla Bibbia에서 박래창 옮김)

 

[경향잡지, 1994년 8월호, 베난시우스 더 레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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