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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물과 술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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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05 조회수2,840 추천수0

[성서의 세계 - 신약] 물과 술의 상징

 

 

가나의 혼인 잔치

 

많은 이들의 의견에 따르면, 요한 복음의 옛 가나로 알려진 갈릴래아의 산악 지방에 있는 작은 마을 케프르켄나(Kefr-Kenna)의 프란치스코 교회의 지하실에서는 작은 우물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샘이라기보다 한때는 멀리 떨어진 어떤 샘과 연결되어 있던 물탱크이다. 지방 전승에 따르면, 이 우물가에는 예수께서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술로 바꾸셨을 때(요한 2,1-11) 이미 그 우물 곁에 있던 질 항아리가 있다.

 

질 항아리는 역사적 사실 - 동방의 결혼, 마리아와 예수와 제자들의 참석, 포도주가 떨어짐, 여섯 개의 물 항아리, 눈에 보이지 않는 기적 - 을 환기시킨다. 지금도 있는 항아리는 앞서 말한 모든 특수성을 믿는 데 다소 확신을 줄 수 있으나, 초자연적인 관점에서는 질 항아리와 가능한 모든 것에 중요성이 덜 주어지며, 가나의 기적에서 가르치고자 하신 것이 무엇인가를 찾는 것이 유악하다. 모든 설교자와 성서 해석 학자는 결혼식에 대한 아주 짤막한 묘사에서 - 모두 11절밖에 안된다. - 그 이야기 전체의 어떤 가르침 그리고 무엇보다 근본적인 교의를 샅샅이 찾아내려고 애썼다. 그러나 결과는 다양하다. 어떤 이는 예수의 초자연적인 권능, 그분의 창조적 힘을 확인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예수에 의해 승인되고 축복받는 결혼을 확인하며, 어떤 이는 지극히 거룩한 마리아의 중재하는 힘을 확인하기도 한다. 모두는 고유한 믿음을 굳게 하거나 증대시키기 위한 논거를 거기서 발견한다.

 

네 번째 복음서에 대한 가장 현대적인 시각으로 볼 때, 첫 번째로 장엄하게 선포된 가나의 표정은 기적적인 사실보다 더한 어떤 것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즉 예수의 신성에 대해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어떤 것을 제공한다. 따라서 이 기적이 어떤 방향으로 자리 잡혀 있는지 그리고 그 표정에서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고자 했는지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열한 개의 절을 주의 깊게 읽어 보면 기적 자체에 그다지 중점을 두지 않는다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난다. 이야기는 물로 이루어진 일에 멈추고 잔치 맡은 이의 “이 좋은 포도주가 아직까지 있으니 웬일이오!”(2,10)라는 외침에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한다. 표징의 절정은 기적적인 포도주에 대한 찬사다.

 

이렇게 넘쳐 흐르는 찬사는 술이 특별한 의미를 띠고 있으며 다른 더 상위의 일을 상징한다는 가정을 불러일으킨다. 물은 술의 대구(對句)로서, 더 고상한 어떤 것으로 대체되어야 하는 덜 중요한 요소로 뚜렷이 드러난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더 나아가 물 항아리들이 “유다인들의 정결 예식을 위해 준비되어 있었다.”(2,6)는 것을 보게 된다. 이것은 옛 율법과 물의 유대를 나타낸다. 또한 요한 복음의 다른 곳에서도 율법과 물의 관계는 부각된다. 중풍 병자가 치유를 받기 위해 헛되이 도움을 기다리고 있는 베짜타 못의 물은 다섯 개의 행각으로 둘러싸여 있다(5,2). 그것은 모세 오경에 담겨 있는 율법에 대한 암시다. 사마리아 여인이 야곱의 우물에서 걷는 물은 옛 성조의 선물이라 일컬어지고 예수께서 당신이 주실 생명의 물에 대해 말씀하시자마자 여인이 질문한다. “선생님께서는 이러한 우물을 우리에게 주신 야곱보다 더 훌륭하시다는 말씀입니까?”(4,12) 달리 말해서, 네 번째 복음서에 나오는 물은 종종 옛 율법의 상징이 된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예수께서는 옛 율법의 상징을 새로운 상징, 술로 바꾸셨다. 이미 구약성서에서 우리는 술이 가르침과 교의를 표현하는 상징임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한 지혜서에서 “와서 내가 차린 음식을 먹고 내가 빚은 술을 받아 마시지 않겠소? 복되게 살려거든 철없는 짓을 버리고 슬기로운 길에 나서 보시오.”(잠언 9,5-6)라는 것을 읽을 수 있다. 공관 복음서에서 술은 그리스도의 새로운 교리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다. “낡은 가죽 부대에 새 포도주를 담는 사람은 없다”(마태 9,17; 마르 2,22; 루가 5,37). 따라서 성 아우구스띠노는 예수께서 옛 율법의 물을 복음의 더욱 높은 교리로 바꾸셨고, 그리스도께서 좋은 술, 즉 그분의 복음을 이제까지 보존하셨다고 결론 내린다.

 

물과 술의 상징과 관련하여 이야기의 몇 가지 요소들이 새로운 전망을 얻는다. 결혼식 자체는 하느님의 아들의 강생을 생각하게 한다. 이것은 예수에 대해 신랑이라고 말하는 복음서 본문으로 입증된다. 사도들이 참석했고 마리아가 거기서 으뜸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고 언급하는 것은 이유가 없지 않다. 게다가 어떤 해석들은 “포도주가 더 이상 없다.” 또는 그리스어 본문에 있듯이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마리아의 말씀에서 출발하여 옛 율법의 불완전성 또는 열등성을 강조한다, 즉 어머니는 물질적인 술을 배려해 달라고 아들한테 청하나 그것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한 가정은 그럴듯하다. 그러나 이야기에 비유적인 의미만을 주고자 한다면, 따라서 기적을 부정한다면 잘못이 될 수도 있다. ‘아마도 그럴 것’이라는 것은 문자적으로 분명하고 논외의 여지가 없는 것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과소평가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그러한 의미의 그럴듯한 다양성과 깊이는 왜 이 기적이 그렇듯 생생하게, 다른 기적들의 시작으로 묘사되었는가를 더 잘 이해하게 해준다.

 

이야기는 제자들의 믿음으로 끝난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를 믿게 되었다”(요한 2,11). 이 말을 그리스도를 향해 제자들 안에 이제 막 꽃피는 초보적 신앙으로 알아들어선 안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얼마 전부터 스승을 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결론으로 저자는 그리스도의 새로운 교리, 공표되기 시작하고 옛 율법을 대체하기 시작한 교리에 대한 제자들의 믿음을 암시한다. (L’uomo moderno di fronte alla Bibbia에서 박래창 옮김)

 

[경향잡지, 1994년 10월호, 베난시우스 더 레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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