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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교회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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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10 조회수2,578 추천수0

[성서의 세계 - 신약] 교회의 봄

 

 

베드로의 오순절 담화 뒤에 사도행전은 “그날에 믿는 사람들이 삼천 명 가량 늘어났다.”(2,41)고 단언한다. 베드로의 두 번째 담화는 같은 방식으로 끝난다. “그런데 말씀을 들은 이들 가운데서 많은 사람들이 믿게 되었으니 장정 수효만도 오천 명 가량이나 되었다”(4,4). 루가는 확실히 편애를 가지고 때때로 교회의 상황에 대해 총계적인 일람(一覽)을 제공한다(5,14; 6,7; 11,26 등). 그러한 수치들은, 특히 ‘그날에’라고 말하는 첫 번째 상황에서는 정말처럼 보아지 않는다. 그러나 ‘그날’은 그 이후의 날들에 완결되는 회개의 움직임의 원인 또는 시작을 뜻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인용된 예들은 루가가 이 평론에서 외적 측면에 대하여, 정확하게는 숫자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중요한 일이 수치와 통계인가? 다행히도 사도행전에는 다른 요약들이 있다. 그것들은 신자들의 젊은 공동체에 대한 더욱 깊고 한층 올바른 이상을 우리한테 제공한다.

 

젊은 교회의 내적 삶에 관한 올바른 이상을 제공하는 더욱 의미심장한 요약들은 처음의 5장에서 상세하게 발견된다. 가장 중요한 시작인 오순절 사건 뒤 방대한 평론(사도 2,42-47)이 따라나온다. 그것은 단편의 시작과 끝에 되풀이되고, 한 사람 이상으로 구성되었거나 더 많은 정보 제공자들한테서 유래했다는 인상을 준다. 아나니아와 삽피라의 이야기 서문으로 루가는 다시 한번 교회의 삶에 관한 평론을 제공한다(4,32-35). 그리고 참으로 비범하고 인상적인 이 이야기 뒤에 사건이 만들어낸 깊은 인상에 다소 관련되는 세 번째 평론이 나온다(5,11-16).

 

첫 번째 평론은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내적 삶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보인다. 그래서 사도들의 가르침과 일치에 대한 대단한 열의를 언급한다. 교리를 이해하는 심려가 사도들의 마음 안에 생생했고 이것이 사도들의 말을 정신차려 듣도록 밀어붙였다는 것은 분명하다. 나아가 이 교리를 외부로 전하기 위해서는 삶의 쇄신이 필수였다. 또한 일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필요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과 재물을 팔아서 모든 수확물 가운데서 “모든 사람에게 각자 필요한 만큼” 나누어주었다(사도 2,44-45). 따라서 그들 가운데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밭과 집을 소유한 이들 모두가 그것들을 팔아 그 판매대금을 사도들의 발치에 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저마다 필요한 만큼 각자에게 나누어졌다”(사도 4,34-35).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고 언급하는 본문(4,32)은 때때로 최초의 공산주의를 가리키는 것으로 잘못 해석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방금 전에 언급된 자료에 비추어볼 필요가 있고, 교회의 더 오래된 핵심은 어떤 공산주의적 작은 세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순간에도 자기들의 재물을 이웃의 필요에 넘겨줄 준비가 되어있는 이상주의자들의 모임이라는데 있다. 이러한 형식으로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에 대하여 사도들은 체계화하는 역할을 맡았다.

 

내적인 삶에 대한 그러한 묘사 뒤에 얼마 안되는 행이지만 더 오래된 전례에 대한 암시가 따라나온다. “그들은…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사도 2,42). 이것은 더욱 폭넓게 설명된다.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집집마다 돌아가며 빵을 떼었다”(2,46). 유다교로부터 막 회개한 그리스도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커다란 존경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성전에서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관습을 따르고 있었으며, 이때 시편을 노래부르고 율법서와 예언서의 독서를 들었다. 우리가 미사 시작 때 말씀의 전례로 알고 있는 그것을 그들은 성전에서 따로 된 예식으로 거행했다. 성전의 이 옛의식에 곁들여 그들은 각자의 집에서 빵을 떼어 나눔으로써 그리스도를 기념하였다. 이 성찬의식이 늘 공동식사를 수반했는지 또는 따로 떨어진 의식으로 거행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전례의 이 의식이 분명히 성장해 간다는 것이며, 그것은 성전 밖에서 거행되었고 빵을 떼어 나누는 일을 축으로 하였다.

 

우리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성전에서 서로 갈라져있었으며 거기서 그들의 고유한 집회를 열었다는 인상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모두 한마음으로 솔로몬 주랑에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누구도 그들 가운데 감히 끼어들지 못했다. 백성은 이를 두고 그들을 찬양하였다”(5,12-13). 젊은 교회는 독특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었으며, 다른 종교집단들과 충돌의 계기가 되어 솔로몬 주랑과 성전으로부터 추방당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처음 순간에 이러한 내적인 삶의 묘사와 강하게 대비되는 것처럼 보이는, 수치로 된 평론은 더 가까이서 살펴보면, 정확한 계산을 주장하는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영적인 평가로 쉽게 해석할 수 있다. “주님께서는 그 모임에 구원받는 사람들을 날마다 늘려주셨다”(2,47). 누구에게 모여든 것인지 말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추측할 수 없다. 다른데서 루가는 “믿는 남녀의 무리가 더욱 늘어나 주님께로 인도되었다.”고 언급한다. 사도행전 11장 24절에는 “그래서 수많은 군중이 주님께로 인도되었다.”고 말한다. 군중의 수, 즉 수치가 우선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가치있는 것은 주님께로 모여든다는 것이다. 이미 봄을 맞고 있는 초기교회는 주님께서 생생하게 함께하심을 느끼고 있었다. (L’uomo moderno di fronte alla Bibbia에서 박래창 옮김)

 

[경향잡지, 1996년 2월호, 베난시우스 더 레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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