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베드로와 요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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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9-07-10 | 조회수3,150 | 추천수0 | |
[성서의 세계 - 신약] 베드로와 요한
로마 교회는 온 세기에 걸쳐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에 대한 특별한 존경심을 지녀왔다. 가톨릭 전례는 그들을 사도들의 으뜸이요 로마 교회의 창설자로 기린다. 그러므로 그들을 따로 떼어놓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바오로 기념일에 베드로를 공경하듯이 베드로 축일에 바오로도 기억한다. 두 사도는 역사에 쌍둥이처럼 등장한다.
그러나 사도행전은 다른 태도로 기록하고 있다. 비록 그 책을 한마디로 요약하여 ‘베드로와 바오로의 행적’이라 할 수 있을지라도 실제로 이 두 사도는 함께 짝지어 나타나는 일이 거의 없다. 오히려 그 반대로 드러난다. 책의 첫 부분은 주로 베드로의 활동을 다루고 두 번째 부분은 거의 배타적으로 바오로의 선교여행을 다룬다. 두 영응은 그렇게 따로 간주되고 묘사된다.
어떤 순간에 베드로의 활동이 베드로만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 눈에 띈다 하더라도 그의 곁에는 ‘쌍둥이’ 요한이 자주 등장한다. 성전 입구에서 앉은뱅이를 치유하는 일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는 두 사도를 동시에 언급함으로써 시작한다. “베드로와 요한은 오후 세시 기도시간에 성전으로 올라갔다”(3,1). 그리고 앉은뱅이는 두 사도 모두한테 동시에 말을 걸고, 마찬가지로 치유 뒤에 두 사람한테 매달린다. 군중이 달려오자 베드로와 요한은 붙잡히고 둘 다 법정에서 심문을 받고 처벌의 위협을 당한다. 그러나 둘 다 처벌받지 않고 그들의 형제들 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보다시피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는 두 사도를 균등하게 다룬다.
일곱 부제와 만남, 그리고 그들의 선교활동에 대해 묘사한 다음에 루카는 베드로와 요한의 활동에 관해 보고한다(사도 8,14-25).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말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그리로 보냈다”(8,14).
두 사람은 새로 개종한 이들한테 안수로 성령을 내렸다. 그리고 마술사 시몬을 만났고, 거기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였으며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이 두 가지 보고에서 베드로와 요한을 함께 말하고 있음에도 주요인물은 베드로라는 인상을 받는다. 마술사 시몬에 대해서는 오직 베드로만 힘있게 앞으로 나가 그를 꾸짖는다(8,20-23). 앉은뱅이 치유에서 말을 하고 그를 일으킨 것은 베드로이다(3,6-7). 마찬가지로 백성들에게 나서는 것도 베드로이다(3,12-26). 오직 그만이 법정에서 변호한다(4,9-12). 중요한 순간들에 요한은 그늘에 머무른다. 진실을 말하자면, 요한은 주연이 아니라 오히려 조연으로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요한에게 유보된 이 부분 때문에 어떤 해석학자들은 저자의 의도로 요한이 이야기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 입증은 약간 이상한 사도행전 3장 4절의 독특한 구조에서 발견된다. “베드로는 요한과 함께 그를 눈여겨보며 ‘우리를 보시오.’ 하고 말했다.” ‘요한과 함께’라는 표현은 주체인 베드로와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다른 주장에서는 아무런 어려움 없이 ‘요한’을 지워버릴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아마도 각별한 인식을 바탕으로 루카 자신이 이미 있었던 보고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요한의 이름을 첨부했을 가능성이 었다. 그렇지 않으면 루카 이전에 어떤 다른 사람이 이야기가 확장되는 동안에, 비록 실제로는 요한이 그 사실에서 소박하고 부수적인 역할밖에 하지 않았음에도 두 번째 이름을 끼워 넣었을 것이다.
사실 사도행전의 어떤 부분에도 요한에 대한 특별한 관심은 기록되어 있지 않고, 그 때문에 루카 자신이 이 이름을 그의 작품 안에 첨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추론할 수 있다. 아마도 베드로-요한이라는 짝은 루카 이전에 알려져 있었고 기록되어 있었어야 하며, 그는 그것을 충실히 보존하였을 것이다.
더 오래된 세 복음서에서 우리는 종종 베드로, 야고보 그리고 요한의 결합을 발견하는 한편, 오직 루가 복음 22장 8절에서만 베드로와 요한이 짝지어 나온다. 반면에 네 번째 복음서는 종종 베드로-요한의 짝을 분명히 언급한다. 예컨대 최후의 만찬 때 베드로는 물어보라는 눈짓을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에게 보낸다(요한 13,24). 올리브 동산에서 예수께서 사로잡히신 뒤 베드로는 다른 제자와 함께 대사제의 저택까지 예수를 따라간다(요한 18,15-26). 마지막으로 부활 소식을 들은 뒤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던 제자는 둘 다 무덤으로 뛰어간다(요한 20,2-10).
베드로보다 좀더 사랑받던 제자 - 사실 예수의 품에 기대듯 자리잡고 있던 제자는 그였고 대사제의 저택에 베드로가 데려간 이도 그였다. - 였을지라도 그는 무덤으로 들어갈 때 베드로한테 우선권을 양보하고 있다. 그는 비록 자기가 먼저 도착했으나 베드로 뒤에 들어가기로 하였다. 분명히 그는 베드로 앞에서 아주 겸손하게 처신한다.
결론으로 네 번째 복음서에서 베드로와 요한에 대한 표현이 더 폭넓게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전승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루카는 이 전승을 알았고 그의 복음서에나 사도행전에 그것을 부수적으로 집어넣었다. (L’uomo moderno di fronte alla Bibbia에서 박래창 옮김)
[경향잡지, 1996년 3월호, 베난시우스 더 레이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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