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문화] 혼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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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9-07-16 | 조회수2,921 | 추천수0 | |
성서의 세계 : 혼인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한 몸을 이룬다”(창세 2,24).
우리는 여러 달에 걸쳐 출생과 이름짓기, 그리고 할례를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성서의 사람들이 어떻게 혼인하였는지 알아보기로 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혼인에 이르렀는지, 또 혼인식 자체는 어떻게 치렀는지 등과 관련해서 세세한 사항까지는 알지 못한다. 물론 성서에는 혼인 이야기가 적지 않게 나온다. 그렇지만 무슨 민속학 사전처럼 혼인의 전과정을 자세히 전해주지는 않는다. 성서의 저자들은 보통 혼인이 아니라 특별한 뜻을 지닌 혼인을, 그것도 자기들의 관심에 따라 필요한 부분만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성서에 나오는 대표적인 혼인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창세기 24장에 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사악과 리브가의 혼인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역시 특수한 경우이기는 하지만, 흥미롭게 전개되는 이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의 혼인을 살펴보고자 한다.
하느님의 명에 따라 가나안으로 이주한 아브라함은 늘그막에 아들을 얻는다. 이 아들이 크자 아브라함은 가나안 여자가 아니라, 고향 땅의 친족 여자 가운데에서 며느리를 맞으려 한다. 그러나 그는 친히 그곳으로 가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다. 그래서 자기가 가장 믿는 종에게 임무와 함께 전권을 주고, 많은 선물을 들려서 고향으로 보낸다. 그곳에 도착한 종은 곧바로 아브라함의 동생 집으로 가지 않고, 우물 곁에서 기다린다. 저녁때가 되면 동네 처녀들이 모두 물을 길으러 우물로 모여들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의 종은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면서 마음속으로 일정한 조건을 세우고, 그것을 채우는 처녀를 주인의 아들 이사악의 아내로 데려가기로 작정한다. 그런데 바로 이사악의 친족 처녀 리브가가 나타나서 그 조건을 훌륭히 채운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종은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 다음, 리브가의 집으로 가서 그의 오빠와 가족들에게 사정 이야기를 한다. 그들의 동의를 얻은 종은 크고 값진 선물들을 내놓는다.
이렇게 혼사가 이루어지는데, 가장인 라반이나 리브가의 어머니만 모든 결정을 내리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당사자 리브가의 의견을 묻는다. 흔쾌히 승낙한 리브가는 이사악의 아내가 되기 위해서 종과 함께 먼길을 떠난다. 아브라함이 머무르는 곳에 다 왔을 때, 리브가는 남편될 이사악을 멀리서 보고서는 너울을 꺼내어 얼굴을 가린다. 이 창세기 24장에는 혼인식에 관한 이야기가 직접 나오지 않지만, 이사악과 리브가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 부부가 된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어떻게 육촌 사이인 이사악과 리브가(창세 24,15)가 혼인할 수 있었느냐는 물음일 것이다. 우선 분명히 해두어야 할 사항은, 가까운 혈족끼리 혼인을 금지하는 것은 거의 모든 민족에게서 볼 수 있지만, 그 범위는 민족마다 다르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바로 우리 나라에서 실행되는 혼인 금지의 범위가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넓으리라는 점이다. 이웃 나라 일본만 해도 그 범위가 상당히 좁다. 옛날 이스라엘의 이웃 강대국 에집트에서는 오누이끼리도 혼인하였다. 물론 구약성서에서는 이런 풍속을 배척한다(레위 20,23 참조). 그래서 이스라엘에서는 분명한 범위를 정하고 그 안에 속하는 친척끼리의 혼인을 엄하게 금지한다(레위 18,6-18; 20,17-21 등). 이에 따르면 아브라함과 리브가 사이의 혼인은 정상적이었다.
혼담은 보통 신랑 될 사람의 아버지가 발기하고, 또 그가 주관하여 아들의 신부감을 찾는다. 아브라함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종은 아브라함을 대신해서 그의 이름으로 일을 할 뿐이다. 그리고 혼담의 상대는 신부 될 사람의 아버지이다. 리브가의 집에서는 아버지가 이미 죽은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리브가의 오빠가 가장으로서 어머니와 함께 신부댁을 대표한다.
그렇다고 가장들끼리만 자녀들의 혼사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창세기 24장에서 보듯이, 리브가는 처녀의 몸으로 우물가에서 외간남자와 거리낌없이 말을 주고받는다. 이러한 사실을 미루어볼 때, 그 옛날에도 일종의 연애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아가 참조). 때로는 총각이 직접 어떤 처녀를 지명하면서 아내로 얻어달라고 아버지에게 청하기도 한다(창세 34,4). 또 리브가의 경우처럼, 드물기는 하지만 여자가 자기의 혼사에 발언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
옛날 이스라엘에도 약혼이 있었다. 특별한 의식은 없이 양쪽 집안이 혼사를 결정함으로써 약혼이 이루어진다. 이때에 중요한 것은 신랑 집안에서 신부 집안에 이른바 ‘신부 몸값’을 치르는 일이다(창세 34,12). 시대와 장소와 사회적 지위에 따라 달라지는 이 값은 돈이나 물건만이 아니라, 노동으로도 지불할 수 있다(창세 29장). 이로써 약혼자는 약혼녀의 ‘주인’이 되고, 약혼녀는 그야말로 ‘임자 있는 몸’이 된다. 법적으로도 이미 이때부터 남편과 아내가 된다. 이러한 약혼 기간이 얼마나 지속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스라엘에서는 늦어도 기원전 6세기부터 이혼할 때에 남편이 ‘이혼장’을 써서 아내에게 주었다(신명 24,1.3; 예레 3,8). 그래서 비록 성서에는 직접 나오지 않지만, 약혼이나 혼인 때에 이른바 ‘혼인 계약서’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사실 고대 근동 전역의 법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 함무라비 법전에는, 계약없는 혼인은 무효라고 되어있다. 그리고 유다인들이 모여 살던 에집트의 엘레판틴에서 ‘혼인 계약서’가 발견되었다. 이 계약서에서 결정적인 문구는, 신랑이 자기와 신부가 이제부터 영원히 부부 관계임을 선언하는 말이다.
본격적인 혼인식은 혼례 복장을 한 신랑이 들러리들을 비롯하여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는 이들과 함께 성대한 행렬을 지어 처가로 가서, 온갖 치장을 하고 친구들을 대동한 신부를 데려오는 일로 시작한다. 이때 신부는 첫날밤을 지낼 때까지 계속 너울로 얼굴을 가린다. 리브가가 이사악을 멀리서 보고서 바로 얼굴을 가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첫날밤에 신부를 바꿔치기하는 일도 벌어질 수가 있었다. 바로 이사악의 아들 야곱이 그러한 경우를 당한다(창세 29,23-25).
혼인 잔치는 예외적인 경우에는 신부 집에서(창세 29,22; 판관 14,10; 토비 7,14),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신랑 집에서 벌어진다. 잔치는 보통 이레 동안 하는데(창세 29,27), 때로는 다시 이레가 연장되기도 한다(토비 8,20). 그 동안 사람들은 춤추고 노래하면서, 또 놀이를 하면서(예레 16,9; 판관 14,12) 신랑 신부를 축하한다.
이렇게 혼인은 특별한 종교 의식 없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성서의 사람들은 혼인이 하느님의 창조 질서 한가운데에 굳건히 자리잡고 있음을 명심하였다(창세 2,24). 이러한 사실은, 위에서 본 것처럼, 이사악의 혼사가 기도로 시작하여 감사와 찬미로 맺어진다는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경향잡지, 1998년 2월호, 임승필 요셉 신부(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총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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