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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불타는 떨기와 모세(탈출 3,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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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16 조회수3,233 추천수0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 불타는 떨기와 모세(탈출 3,2-12)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가장 탁월한 지도자로 추앙을 받는 인물은 단연 모세이다. 그가 받은 소명은 에집트에서 종살이하는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탈출시켜, 시나이 광야에서 자유와 존엄성을 지닌 민족으로 성장시키는 것이었다. 에집트 종살이의 해방은 실로 이스라엘 정신사의 바탕이라 할 수 있으며, 이를 이끌어낸 모세의 파란만장한 생애는 다른 예언자들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는 레위 가문의 부모에게서 태어났지만, 에집트 임금 파라오의 명령에 따라 나일강에 버려졌다가 파라오의 딸에게 발견되어(모세는 ‘건져올리다’라는 뜻) 그의 양자로 채택되었다. 에집트 왕궁에서 편안한 청년 시절을 보내던 어느 날, 모세는 강제 노역에 동원된 동족 히브리인을 학대하는 에집트 현장 감독을 때려죽이고 아카바만 동쪽 지역에 살던 미디안족에게 피신하여 유목민들의 낯선 땅에서 떠도는 이방인이 되었다. 모세가 하느님을 만난 것은 장인의 양떼를 몰고 아카바만 서쪽 지역인 시나이 광야의 호렙산에 이르렀을 때였다.

 

3. 2 주님의 천사가 떨기 한가운데로부터 솟아오르는 불꽃 속에서 모세에게 나타났다. 그가 보니 떨기가 불에 타는데도, 그 떨기는 타서 없어지지 않았다 3 모세는 ‘내가 가서 이 놀라운 광경을 보아야겠다. 저 떨기가 왜 타버리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였다. 4 모세가 보러 오는 것을 주님께서 보시고 떨기 한가운데에서 “모세야, 모세야!” 하고 그를 부르셨다. 그가 “예, 제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5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리 가까이 오지 말아라. 네가 서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6 그분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네 아버지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그러자 모세는 하느님을 뵙기가 두려워 얼굴을 가렸다.

 

7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에집트에 있는 내 백성이 겪는 고난을 똑똑히 보았고, 작업 감독들 때문에 울부짖는 그들의 소리를 들었다. 정녕 나는 그들의 고통을 알고 있다. … 10 내가 이제 너를 파라오에게 보낼 터이니 내 백성 이스라엘의 자손들을 에집트에서 이끌어내어라.” 11 그러자 모세가 하느님께 아뢰었다. “제가 무엇이라고 감히 파라오에게 가서 이스라엘의 자손들을 에집트에서 이끌어낼 수 있겠습니까?” 12 하느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이것이 내가 너를 보냈다는 징표가 되리라. 네가 이 백성을 에집트에서 이끌어내면 너희는 이 산 위에서 하느님에게 예배를 드리리라.”

 

성서에서 흔히 ‘주님의 천사’는 인간에게 무엇인가를 계시하시는 하느님 자신을 가리킨다. 모세의 소명 이야기에서도 주님의 천사는 하느님 자신과 동일시된다(4절 이하 참조). 떨기는 팔레스티나와 시나이 광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시덤불이다. 이 메마른 한줌의 잡초에 불이 붙으면 어떻게 될까? 사막의 건조한 열풍에 힘입어 불은 순식간에 잡초를 삼켜버릴 것이다. 그런데 지금 모세의 눈앞에서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벌어진다. 대낮에도 불꽃이 보일 만큼 강한 열기를 지닌 불이 떨기를 감싸고 타오르는데도, 떨기는 전혀 손상을 입지 않고 있다.

 

지상의 하찮은 잡초가 파괴되지 않고도 천상의 신성한 불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하느님께서 평범한 유목민 모세를 통하여 에집트에서 비천하게 종살이하는 잡초 같은 이스라엘을 만나시겠다는 것이다. 그들을 불로 정화시키시되 상처를 입히지 않으시고 당신 백성으로 받아들이시겠다는 것이다. 흙먼지로 뒤덮인 신발을 신은 유목민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한다. 하느님께서는 불타는 떨기 가운데서 모세의 이름을 부르시며, 그 자리가 거룩하니 신발을 벗으라고 명하신다. 힌두교와 회교 등 동양종교에서는 신전에 들어갈 때, 신발을 벗게 한다. 더러운 것을 벗어던지고 거룩한 곳에 맨발로 들어서야 한다.

 

맨발인 모세에게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으로 소개하신다. 모세의 조상들과 계약을 맺으시고 그들을 한결같이 돌보아주시던 하느님! 400여 년 전에 마지막으로 야곱에게 나타나시어 “에집트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그곳에서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리라. 나도 너와 함께 에집트로 내려가리라. 그리고 내가 그곳에서 너를 다시 데리고 올라오리라.”(창세 46,3-4)고 하신 바로 그 하느님께서 약속을 지키시려고 야곱의 먼 후손에게 다시 나타나신 것이다. 하느님의 존재를 확인한 모세는 그분을 뵙지 않으려고 즉시 얼굴을 가렸다. 그분을 보고도 살아남을 자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탈출 33,30; 판관 6,22; 1열왕 19,13; 이사 6,2).

 

이제 주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신 이유를 밝히시고, 두려워 떠는 모세에게 소명을 주신다. 그분이 이름없는 잡초 사이에서 타는 불로 나타나신 까닭은 당신 백성 이스라엘이 에집트인들에게 억압을 당하며 괴로워 울부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주님께 도와달라고 정식으로 기도하지도 않았다. 다만 고통에 짓눌려 신음소리를 냈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주님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하였다. 그 옛날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을 결코 잊지 않으시고, 이국 땅에서 종살이하며 무명의 잡초처럼 살아가는 그들의 후손들을 구원하시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드러내신 것이다.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소명을 주신다. “내가 이제 너를 파라오에게 보낼 터이니, 내 백성 이스라엘의 자손들을 에집트에서 이끌어내어라.” 모세의 소명은 두 가지 내용을 포함한다. 하나는 하늘을 찌를 듯 높은 권세를 지닌 파라오를 설득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느님의 백성을 무사히 에집트에서 탈출시키는 것이다. 파라오의 궁중에서 자란 모세는 에집트 임금이 얼마나 완고하고 자존심이 강한지 잘 알고 있다. 더구나 그를 설득하거나 위협하여 히브리 노예들에게 해방령을 내리게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 당시 파라오가 가장 중요한 국책사업으로 추진하던 피라미드의 석축 작업은 히브리인들의 강제 노역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모세는 주님께서 맡기시는 소명이 자신의 능력을 턱없이 뛰어넘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자신의 소명에 이의를 제기하며 뒷걸음치려 한다.

 

그러나 주님의 의지는 확고하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이것이 내가 너를 보냈다는 징표가 되리라.” 이 두 번째 말씀을 좀더 히브리 본문에 가깝게 옮기면, “너를 보낸 이가 바로 나라는 사실이 너에게 징표가 되리라.”가 된다. 이 말씀으로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믿음을 요구하신다. ‘네가 그토록 두려워하는 파라오에게 너를 보내면서, 내가 너를 그대로 둘 것 같으냐?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너를 보내는 내가 바로 천상천하의 권능을 모든 한 손에 쥐고 있는 절대자이다.’ 모세는 이제 자신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에집트의 강력한 군주를 제압하시려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모세가 파라오 앞에 나서고 못 나서고는 하느님의 절대적 존재와 능력에 대한 그의 믿음에 전적으로 달려있다.

 

이렇게 파라오 앞에 나서는 문제는 주님께서 함께 해주시겠다는 약속으로 해결되었다. 다음 문제는 동족을 설득하는 것이다. 에집트 종살이에 젖어있는 동족을 탈출시키려면 그들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한데, 모세는 그들을 설득할 때 자신이 어떤 신에게서 그런 소명을 받았는지 설명해야 한다. 이스라엘은 에집트에서 종살이하는 동안 자기 조상들의 하느님뿐 아니라 에집트의 여러 신들도 함께 섬겼다(신명 26,7; 여호 24,14; 에제 20,5-13).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하느님의 이름을 무엇이라고 소개해야 하는지 묻는 모세에게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신다. “나는 있는 나다. … 너는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신 야훼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이것이 영원히 나의 이름이며, 이것이 대대로 불릴 나의 칭호이다”(탈출 3,14-15).

 

하느님께서 당신 이름으로 밝히신 ‘야훼’라는 말은 ‘나는 있는 자이다’ 또는 ‘나는 -이다’는 뜻이다. 전자는 그분께서 사람들 손으로 만든 우상들과 달리 스스로 존재하시며 모든 이에게 생명을 주시는 절대자이심을 강조하고, 후자는 다시 반복되는 조상들의 하느님 칭호와 더불어 그분께서 이스라엘 곁에서 그들에게 도움을 주신 구원자이심을 강조한다. 따라서 이름 같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이 ‘야훼’라는 칭호는 하느님의 절대성과 내재성을 동시에 증언한다.

 

이 세상에 인간의 구원과 상관없는 소명이란 없다. 또 성서에서 소명을 받는 사람치고 하느님의 소명 앞에서 두려움과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 이도 없다. 소명을 받은 이들은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부족한 내가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는 확신을 가져야 할 것이다.

 

[경향잡지, 1998년 3월호, 정태현 갈리스도 신부(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총무 / 사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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