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베드로: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루가 5,1-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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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9-07-17 | 조회수2,959 | 추천수0 | |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루가 5,1-11)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베드로만큼 그 개성과 성격이 신약성서에 뚜렷하게 드러나는 이도 드물다. 네 복음서의 일치된 증언에 따르면, 그는 안드레아의 동기로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고기를 낚다가 첫 제자 무리에 부름을 받았다. 공관복음은 좀더 구체적으로 그가 갈릴래아의 어촌 가파르나움에 살던 주민이었으며 독특한 갈릴래아 사투리를 구사하고 있었다고 전한다. 그는 결혼한 뒤에 뜻밖에도 장모를 모시고 살았다. 그의 이름은 본디 ‘바르 요나(요나의 아들) 시몬’이었으나(마태 16,17). 예수님께 소명을 받으면서 상징적인 이름인 ‘베드로’가 되었다(마르 3,16; 마태 10,2; 루가 6,14). 베드로는 ‘바위’라는 뜻인데, 아람말로는 케파이다. 아람말을 모국어로 쓰시던 예수님께서는 그를 이 아람말 이름, 케파로 부르셨을 것이다.
신약성서에서 베드로가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그물질을 하다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는 장면은 두 가지로 다르게 묘사된다. 하나는 예수님의 초기 선교활동과 연결된 장면으로 공관복음(마르 l,16-20; 마태 4,18-22; 루가 5,11)에 나오고, 다른 하나는 부활하신 다음의 발현 장면으로 요한 복음(21,1-19)에 나온다. 여기서는 공관복음, 그 가운데에서도 루가 복음의 기록을 바탕으로 베드로가 어떻게 소명을 받았는지 살펴보겠다.
5. 1(“공동번역”) 하루는 많은 사람들이 겐네사렛 호숫가에 서계시는 예수를 에워싸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2 그때 예수께서는 호숫가에 대어둔 배 두 척을 보셨다.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 그물을 씻고 있었다. 3 그중 하나는 시몬의 배였는데, 예수께서는 그 배에 올라 시몬에게 배를 땅에서 조금 떼어놓게 하신 다음 배에 앉아 군중을 가르치셨다. 4 예수께서는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쳐 고기를 잡아라.” 하셨다 5 시몬은 “선생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니 그물을 치겠습니다.” 하고 대답한 뒤 6 그대로 하였더니 과연 엄청나게 많은 고기가 걸려들어 그물이 찢어질 지경이 되었다. 7 그들은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짓하며 와서 도와달라고 하였다. 동료들이 와서 같이 고기를 끌어올려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두 배에 가득히 채웠다. 8 이것을 본 시몬 베드로는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에게서 떠나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9 베드로는 너무나 많은 고기가 잡힌 것을 보고 겁을 집어먹었던 것이다. 그의 동료들과 10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도 똑같이 놀랐는데 그들은 다 시몬의 동업자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시몬에게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이제부터 사람들을 낚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시자 11 그들은 배를 끌어다 호숫가에 대어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
겐네사렛 호숫가는 예수님과 베드로의 주요 활동 무대였다. 이곳에서 베드로는 먹고 살려고 고기 잡는 일에 열중한 반면, 예수님은 사람들을 구원하시려고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에 온 힘과 정성을 다 기울이셨다. 그날도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은 밤새도록 그물질을 하고 나서 다음 출어를 준비하며 호숫가에서 그물을 씻고 있었고, 바로 그 옆에서는 예수님이 많은 군중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계셨다. 군중의 수가 불어나자, 예수님은 시몬의 배에 올라 배를 뭍에서 조금 떼어놓게 하신 다음, 그곳에 앉으시어(유다의 스승들은 앉아서 가르친다.) 호숫가에 모인 많은 사람에게 말씀을 전하셨다. 고기를 낚는 시몬의 배를 사람을 낚는 강론대로 삼으신 셈이다. 그리고 이 배의 임자가 분명 시몬인 만큼, 이 순간 시몬과 예수님은 동업자가 된 셈이다.
군중에게 말씀을 전하시고 난 예수님은 시몬에게 갚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고 명하셨다. 시몬은 “선생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니 그물을 치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겐네사렛 호숫가에서 평생 그물질로 잔뼈가 굵은 시몬이 고기잡는 일에 문외한인 예수님을 선생님이라 부르면서 그분 말씀에 순종하겠다고 한다. 더구나, 낮에는 고기가 깊은 곳에 있지 않고 먹이를 찾아 물가 얕은 곳으로 나오는 법인데, 예수님이 이런 상식과 반대로 명령하시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결과는 전혀 예상 밖이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깊은 곳에 던진 시몬의 그물에 엄청나게 많은 고기가 걸려든 것이다. 시몬이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그들이 와서 두 배를 고기로 가득 채웠다.
시몬은 이를 보고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청하였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에게서 떠나주십시오.” 시몬과 그의 동료들이 체험한 놀라운 광경은 하느님의 위업을 드러내고, 그분의 현존과 직결된 것이다. 하느님의 영역을 체험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의 거룩하심 앞에서 자신이 부당한 죄인임을 느끼고, 그 놀라운 능력 앞에서 자신의 초라함을 깨달으며 두려움에 사로잡힌다(이사 6장 참조). 복음서 여러 곳에서 드러나듯 베드로의 성격은 직선적이고 솔직하다. 그는 예수님보고 떠나달라고 요청하였다. 갈릴래아 어촌의 순박한 어부로서는 그분의 존재를 감당하기에 너무 벅찼을 것이다.
놀란 것은 시몬뿐이 아니었다.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비롯한 다른 동료들도 똑같이 놀랐다. 그들은 시몬과 더불어 고기를 낚는 어부였다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사람들이었다. 지금 시몬은 이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만, 나중에는 이들이 시몬의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자기를 떠나달라고 요청하는 시몬에게 예수님은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이제 사람들을 낚을 것이다.” 하시면서 그를 안심시키시고 새로운 소명을 주셨다. 그분은 부당함과 무기력함을 넘어서서 시몬을 부르신다. 시몬에게 주어진 소명은 시몬의 자격과 능력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예수님의 자유로운 선택과 의지에 달려있다. 시몬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동료들과 더불어 모든 것을 버리고 그분을 따라나섰다. 이는 가브리엘 천사에게 “제가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200주년 기념성서”, 루가 l,34) 하고 질문을 던졌다가, 성령의 힘으로 그런 일이 가능하리라는 천사의 대답을 듣고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가 l,38) 하고 대답한 성모 마리아의 믿음과 맥을 같이한다. 믿음은 자신의 부당함과 무능함을 넘어서서 전달되는 하느님의 뜻을 온몸으로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이후 시몬 베드로는 사도들의 대표요 대변인 구실을 한다. 베드로는 열두 사도의 명단 첫머리에 나온다(마르 3,16; 마태 10,2; 루가 6,16). 그는 예수님이 다볼산 위에서 당신의 모습을 갑자기 바꾸셨을 때, 다른 제자들을 대표해 그분과 모세와 엘리야에게 초막 셋을 지어드리겠다는 제안을 한다(마르 8,29; 마태 16,16; 루가 9,20). 부자 청년이 재산을 포기하고 당신을 따르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않았을 때, 베드로는 열두 사도의 대변자로 나서서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하고 말하며 이에 대한 보상의 말씀을 주님에게서 얻어낸다(마르 10,28-31; 마태 19,27-30; 루가 18,28-30).
그는 주님을 극진히 섬기고 따르는 일에서 다른 제자들의 추종을 불허했지만 동시에 그분을 이해하지 못하고 심지어 그분을 배반하는 나약함에서도 다른 제자들을 앞질렀다. 예수님의 수난 예고를 듣고 그래서는 안된다고 했다가 예수님에게서 “사탄아 물러가라.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는 호된 질책을 듣는다(마르 8,32-33). 예수님은 당신에 대한 그의 열정과 더불어 나약함도 잘 알고 계셨다(마르 4,29-31). 그래서 그를 위하여 미리 기도하셨다. 그것은 그가 다시 그분께 돌아와 믿음이 약한 다른 형제들을 도와주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시몬아, 시몬아, 들어라. 사탄이 이제는 키로 밀을 까부르듯이 너희를 제멋대로 다루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네가 믿음을 잃지 않도록 기도하였다. 그러니 네가 나에게 다시 돌아오거든 형제들에게 힘이 되어다오”(루가 22,31-32). 이런 뜻에서 과연 그는 열두 사도의 바위요 그들을 기둥삼아 건설될 교회의 반석이었다.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그물질을 하다 예수님께 부르심을 받은 베드로는 결코 깨끗하고 완전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예수님이 보여주신 놀라운 위업 앞에서 자신의 부당함과 무력함을 충분히 체험하고 그분께 떠나주시도록 청하였다. 그러나 결국 그분의 부르심을 받고서 자기를 도와준 동료들과 함께 모든 것을 버리고 그분을 따라나섰다. 그것은 믿음의 결단이었다. 그렇다고 주님의 부르심 그 자체가 결점과 나약함에서 베드로를 완전히 해방시켜 주는 보증은 아니었다. 부르심을 받잡은 다음에도 그에게는 주님의 기도와 도움이 필요하였다. 그리고 베드로에 대한 이 주님의 도움은 다른 동료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였다. 주님께서는 그가 다시 강하게 될 때에 다른 약한 동료들의 든든한 바위가 되어주기를 바라셨기 때문이다.
[경향잡지, 1998년 5월호, 정태현 갈리스토 신부(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총무 / 사도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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