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다윗: 나 주님은 마음을 본다(1사무 16,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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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9-07-17 | 조회수3,113 | 추천수1 | |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 “나 주님은 마음을 본다”(1사무 16,6)
다윗은 모든 이스라엘 임금을 평가하는 척도가 되었다. 열왕기 저자와 역대기 저자에 따르면, 다윗 이후 역대 임금들 가운데 다윗처럼 행동하거나 그가 걸어간 길을 따라 걸은 임금은 훌륭한 임금이고, 그렇지 않은 임금은 악한 임금이다. 그렇다고 다윗이 생전에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은 완벽한 인간이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성서는 다윗의 의로운 행동과 더불어 그의 인간적 약점과 죄를 숨김없이 드러낸다.
(구약성서 새번역) 6 그들(이새의 아들들)이 왔을 때 사무엘은 엘리압을 보고,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가 바로 그분 앞에 서있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7 그러나 주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겉모습이나 키 큰 것만 보아서는 안된다. 나는 이미 그를 배척하였다.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 8 다음으로 이새는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였다. 그러나 사무엘은 “이 아이도 주님께서 뽑으신 이가 아니오.” 하였다 9 이새가 다시 삼마를 지나가게 하였지만 사무엘은 “이 아이도 주님께서 뽑으신 이가 아니오.” 하였다 10 이렇게 이새가 아들 일곱을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였으나 사무엘은 이새에게 “이들 가운데에는 주님께서 뽑으신 이가 없소.” 하였다. 11 사무엘이 이새에게 “아들들이 다 모인 겁니까?” 하고 묻자 이새는 “막내가 아직 남아있지만 지금 양을 치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말하였다 “사람을 보내 데려오시오. 그가 여기 올 때까지 우리는 식탁에 앉을 수가 없소.” 12 그래서 이새는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왔다. 그는 볼이 불그레하고 눈매가 이름다운 잘생긴 아이였다. 주님께서 “바로 이 아이다. 어서 이 아이에게 기름부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판관직에서 물러난 사무엘은 말년에 고향 라마로 돌아와, 자기가 기름부어 임금으로 내세운 사울이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을 보고 몹시 슬퍼하며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님께서 슬퍼만 하는 사무엘을 꾸짖으시며 그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 보내셨다. 이새에게는 아들이 여덟 있었다. 사무엘은 키가 크고 장대한 엘리압을 보고 그를 임금으로 내세울 마음을 품는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된다고 하시면서 거절하신다. 사람들처럼 눈에 들어오는 대로 판단하지 않으시고 마음을 보시기 때문이다. 사울을 임금으로 내세울 때 이미 사무엘은 이를 충분히 터득하였을 법도 한데, 또다시 잘못 판단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보다 키가 어깨 위보다 더 큰 사울을 치켜세우며 사무엘은 “온 백성 가운데 이만한 인물이 없소.”(1사무 10,24) 하고 외쳤던 것이다.
이새의 집에 모인 아들 일곱을 다 보내고 나서 사무엘은 이새에게 남은 아들이 더 없는지 묻는다. 이새는 막내둥이가 남았는데, 들에서 양을 치고 있다고 대답한다. 사무엘은 그 아이를 데려오라고 이른다. 아버지 이새의 손에 이끌려 사무엘에게 다가오는 아이를 보니, 볼이 불그레하고 눈매가 아름다운 소년이었다. 소년은 온 이스라엘을 다스릴 임금으로 나서기에는 너무 약하고 작았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바로 이 아이다. 어서 이 아이에게 기름부어라.” 하고 분부하신다. 사무엘이 형들 앞에서 이 막내에게 기름을 붓자, 주님의 영이 들이닥쳐 죽는 날까지 줄곧 그에게 머물게 되었다. 사울의 경우와 달리 다윗에게 내린 영은 일시적으로 내려왔다 지나가는 영이 아니라 영구적으로 머무는 영이다.
사무엘서 저자는 다윗에 관하여 수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그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으로 둘을 고른다면, 다윗이 아직 임금이 되기 전에 불레셋인들의 장수 골리앗과 싸워 이긴 이야기와 임금이 된 뒤에 헷 사람 우리야의 아내와 간통을 저지르고 남편을 살해한 이야기이다. 두 이야기는 하느님에게 소명을 받은 이의 실체가 과연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온 이스라엘군의 사기를 꺾고 공포에 떨게 하는 불레셋 장수 골리앗은 엄청난 거인이다. 키는 2미터 80센티미터, 그가 입은 갑옷의 무게는 60킬로그램이요 창대는 베틀 용두머리만큼이나 굵었으며 쇠로 된 창날의 무게만도 7킬로그램이 넘었다. 이런 거인에게 맞서 나온 소년 다윗은 갑옷도 입지 않고 무기도 갖추지 않았다. 그는 개울가에서 매끈한 돌맹이 다섯 개를 골라 양치기 가방에 넣은 다음, 한 손에 양치기 막대를 들고 다른 손에는 무릿매끈을 든 채 골리앗에게 다가간다. 다윗은 자기에게 저주를 퍼붓는 골리앗에게 “너는 칼과 표창과 창을 들고 나왔지만, 나는 네가 모욕한 이스라엘 전열의 하느님이신 만군의 주님 이름으로 나왔다.”(1사무 17,45) 하고 맞대꾸한다. 그리고는 골리앗를 향하여 날쌔게 달려가면서 개울의 돌맹이를 양치기 가방에서 하나 꺼낸 다음, 무릿매에 메어 골리앗의 이마에 쏘았다. 돌이 정확하게 골리앗의 이마에 박히자, 그의 거대한 몸집은 얼굴을 땅바닥에 쳐박고 그대로 쓰러진다. 그것으로 상황 끝이다. 베들레헴 촌구석의 양치기 소년이 온 이스라엘군을 위협하던 불레셋 거인을 간단히 처치한 것이다.
어린 소년 다윗은 칼과 표창과 커다란 창을 들고 나온 불레셋 최고의 전사를, 만군의 주님 이름에 의지하여 무릿매끈과 개울가에서 주운 돌맹이 하나로 무찔렀다.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는 작고 가난한 한 인간이 하느님의 크신 능력을 믿으면서 자기의 모든 능력을 총동원하여 최선을 다할 때 상상을 초월하는 큰 결실을 얻을 수 있다는 진리를 깨우쳐준다.
성서 저자는 하느님께 의지하였을 때에 큰 힘을 발휘했던 이 다윗이 얼마나 약한 인간이었는지도 숨김없이 전한다. 사울 가문과 오랜 싸움을 끝내고 이스라엘의 왕권을 손에 넣은 다윗은 외부의 적들도 대충 평정한 다음, 모처럼 예루살렘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던 중이었다. 유혹은 언제나 한가한 틈을 노리기 마련이다.
어느 날 저녁, 다윗은 왕궁의 옥상을 거닐다가 아름다운 여인이 목욕하는 광경을 내려다보게 된다. 하필 임금이 거니는 옥상 바로 밑에서 옷을 벗고 목욕하는 여인의 속셈이 무엇일까? 더구나 이 여인은 나중에 사람을 보내어 자신이 임신했음을 다윗에게 알리기까지 하였다.
다윗은 사람을 보내어 그 아름다운 여인이 헷 사람 우리야의 아내라는 것을 알아내고는 데려다 함께 잔다. ‘멀리 전쟁터에 나가있는 외국인 용병의 아내이니 그 여인과 한 번쯤 잠자리를 같이 한다 해서 크게 문제될 것이 없겠지.’ 이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단순한 생각이 자신뿐 아니라 온 나라를 뒤흔드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자신의 부정을 감추려고 이런 저런 방법을 쓰다가 다윗은 마침내 여인의 남편 우리야를 살해하기에 이른다. 우리야가 죽고 난 다음 애도기간이 끝나자마자, 다윗은 아예 여인을 궁으로 불러들여 아내로 삼고 부정의 씨앗을 정식 아들로 둔갑시킨다. 일이 감쪽같이 잘 처리되었다. 하지만 성서 저자는 짧은 한마디 말로, 치밀하고 은밀하게 이루어진 다윗의 부정을 날카롭게 고발한다. “그러나 다윗이 한 짓이 주님의 눈에 거슬렸다” (2사무 11,27).
나단 예언자가 나서서, 부자가 가난한 이의 하나밖에 없는 암양을 가로챈 이야기를 다윗에게 들려준다. 다윗은 그 부자에 대하여 몹시 화를 내며 그런 짓을 한 자는 죽어 마땅하다고 선언한다. 그러자 나단이 다윗에게 “임금님께서 바로 그 사람입니다.”(2사무 12,7) 하고 지적한다. 내가 저질렀을 때는 이무렇지도 않던 잘못이 남이 저질렀을 때는 죽어 마땅한 큰 죄악이 된다. 다윗이 지은 죄, 곧 하찮은 외국인 용병의 아내와 간통하고, 나아가 그 사실을 숨기려고 남편을 죽이고 그의 아내를 자기 아내로 삼은 행위는 ‘주님을 무시하고’(2사무 12,10) ‘주님을 몹시 업신여긴’(12,14) 큰 죄였다.
주님께서는 다윗과 다윗 집안에게 재앙을 내리시겠다고 선언하신다. 또 다윗이 은밀하게 저지른 일을 모든 백성 앞에서, 태양이 지켜보는 가운데 되갚으시겠다고 하신다. 이 말을 들은 다윗은 나단에게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소.” 하고 고백한다. 구차한 변명이나 남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않은 깔끔한 고백이다. 이런 다윗의 태도를 보시고 하느님께서는 다윗의 목숨만은 치지 않기로 하신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대로 죄악의 씨앗인 아들이 죽고 다윗의 살붙이들 사이에서 왕위를 둘러싼 칼부림이 일어나며, 그의 친자식 압살롬이 밝은 대낮에 백성이 지켜보는 가운데 다윗의 소실들을 욕보인다.
주님께서는 외모나 능력이 아니라 마음을 보시고 사람을 고르신다. 주님께 의지하는 한 사람은 누구나 어린 시절의 다윗처럼 하찮은 힘과 방법으로도 위대한 일을 해낼 수 있다. 반면 온갖 부와 권력을 다 누리던 시절의 다윗 임금처럼 사악한 마음으로 부정을 저지르고 가난한 이의 아내와 목숨을 빼앗는다면 그것은 하느님을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큰 죄를 짓는 것이다. 그 죄가 아무리 은밀하게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시는 주님의 눈을 피할 수는 없다. 인간의 약함은 하느님께서 보충해 주실 수 있지만, 사악한 마음은 그분의 심판을 자초할 뿐이다.
[경향잡지, 1998년 8월호, 정태현 갈리스도 신부(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총무 / 사도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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