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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고 서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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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21 조회수3,451 추천수1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고 서 있느냐?

 

 

루가 복음과 사도행전은 두 권으로 된 한 책이다. 저자는 루가 복음에서 예수님의 길을 다루고 사도행전에서 교회의 길을 다루었다. 저자가 이 두 권의 책을 쓸 당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토록 기다리던 그리스도의 재림이 지연되는 바람에 몹시 당황하고 있었다. 루가의 공동체도 예외가 아니었을 것이다. 폭넓은 역사관을 가졌던 루가는, 임박한 종말 사상에 젖어 하늘의 징표만 바라보던 당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종말은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된 뒤에야 닥칠 것이라고 하며 선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예수님의 승천을 전하는 사도 1,6-11에 이런 분위기가 잘 드러나 있다. 이 대목에서 12사도단은 부활하신 예수님으로부터 그분에 관한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할 소명을 받는다.

 

(200주년 신약성서) 사도 1. 6 사도들이 한데 모인 자리에서 예수께 이렇게 물었다. “주님, 지금 이 때 이스라엘을 위하여 나라를 재건하시겠습니까?” 7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 때와 시각은 아버지께서 당신의 권능으로 정하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다. 8 그러나 너희는 너희에게 내릴 성령의 능력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뿐 아니라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들이 되리라.” 9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 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위로 올라가셨다. 그러자 구름이 그분을 감싸 그들의 시야에서 그분을 사라지게 하였다. 10 예수께서 올라가시는 동안 제자들은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마침 흰옷을 입은 사람 둘이 그들 곁에 다가와서 11 그들에게 말하였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고 서있느냐? 너희를 떠나 하늘로 올라가신 저 예수께서는 그분이 승천하시던 모습을 너희가 본 그대로 다시 오시리라.”

 

1,1-5의 머리말에 이어 저자는 예수께서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가시적 승천 기록을 전한다. 루가는 시청각 교육(?)의 효용성을 터득한 작가였기에 신약성서 저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그만이 두 번에 걸쳐 이런 기록을 남겼다(루가 24,50-53; 사도 1,9-11). 루가에 따르면 예수 승천으로 예수 시대가 끝나고 성령 강림으로 교회 시대가 열린다. 이 두 사건은 예수의 길과 교회의 길이 교차되는 예루살렘에서 일어나며, 예수의 길이 끝나는 예수 승천이 교회의 길이 끝나는 예수 재림을 예시한다는 점에서 서로 깊은 연관성을 갖는다. 그런데 루가가 볼 때 예수께서 재림하실 종말은 임박하지 않고 지연된다. 루가는 종말 때까지 교회의 역사가 상당 기간 동안 계속되리라고 예견하였다.

 

이스라엘 왕국 재건의 시각에 관한 사도들의 질문(6절)은 아버지의 약속인 성령의 강림을 전제로 한다(4-5절).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이 쏟아져 내려오는 현상을 세상 종말이 임박했다는 표지로 여겼다. 그리고 구약성서에는 종말이 되면 다윗의 왕국이 재건된다는 예언이 있다(예레 33,7; 시편 14,7; 85,2; 호세 6,1; 집회 48,10). 따라서 성령 세례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도들이 종말에 이루어질 다윗 왕국의 재건과 성령 강림을 연결시켜 죽음을 정복하고 다시 일어선 그분께 “지금 이 때 이스라엘을 위하여 나라를 재건하시겠습니까?” 하고 질문을 드린 것은 자연스럽다.

 

예수님은 사도들의 생각을 바로잡으신다. 종말은 그처럼 임박하지 않다. 땅 끝까지 복음이 선포된 다음에야 종말이 올 것이다. 그리고 종말의 시기는 하느님만이 아신다. 그러니 제자들로 대표되는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종말의 시기에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땅 끝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소명에 관심을 쏟아야 옳다. 루가는 임박한 종말 사상에 젖어있는 자신의 공동체를 위해서도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제자들은 성령의 능력을 받아 예수님의 증인이 될 것이다. 루가 복음에 따르면 성령과 능력은 동의어로 쓰인다. 그런데 누구의 성령이고 누구의 능력인가?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루가 1,35)이요 “높은 데서 오는 능력”(루가24,49)이라고 하듯 성령은 원래 아버지 하느님의 능력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부활하신 다음에는 그 영이 ‘예수의 영’(사도 16,7)도 된다. 루가는 이 표현을 초기 교회의 전통에서 빌려왔을 것이다. ‘예수의 영’, ‘그리스도의 영’이라는 표현은 그리 흔하지 않지만 서간집에 종종 나온다(로마 8,9; 필립 1,19; 1베드 1,11). 여기서 우리는 성령과 능력이 아버지에게도 속하고 아들에게도 속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실 요한 복음의 예수님은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임을 밝히신다(요한 17,11).

 

사도들은 하느님의 영 또는 예수님의 영을 받아야 예수 사건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뿐 아니라 땅 끝에 이르기까지” 증언할 수 있다. 루가는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유다인들의 땅과 사마리아인들의 땅을 거쳐 온 세계로 퍼져 나가야 함을 강조한다. 이 지리적 구도는 실제 팔레스티나의 지리적 구도(유다, 사마리아, 갈릴래아)와는 다른 신학적 구도(사도 9,31 참조)이다.

 

사도행전의 저자는 특히 사도들의 목격 증언을 중요시하였다. 첫째, 목격 증언은 사변적 증언과는 달리 나자렛 예수님의 인격과 메시지와 관련 사건들에 직접 몸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둘째, 목격 증언은 사도직을 취할 자격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된다(루가 24,48; 사도1,22). 셋째, 목격 증언자들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선정된다. 예수님은 12제자를 뽑으시기 전에 하느님께 기도하셨다(루가 6,12). 그렇다면 루가가 이방인 선교의 영웅으로 흠모하는 바오로 사도는 어떠한가? 그는 예수님의 지상 삶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였다. 그런데도 그를 사도라 하는 이유는 그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직접 뵙고 그분의 말씀도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보고 들은 바를 이방인들에게 증언하였다(사도 22,15; 26,16).

 

사도행전은 목격 증인들의 증언 활동을 모은 책이라 할 수 있다. 곧 증인들이 종교의 중심인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유다/갈릴래아와 사마리아를 거쳐 마침내 세계의 중심인 로마에 이르기까지 두루 다니며 예수 사건을 증언한 것을 서술한 책이다. 그리고 예수에 관한 증언은 로마에서 끝나지 않고 교회를 통하여 땅 끝까지 계속해서 추진될 것이다. 교회가 예수에 관한 증언을 땅 끝까지 전한 뒤에 승천하시는 모습과 똑같이 구름에 싸여 다시 오실 것이다. 구름은 하느님이 나타나실 때(출애 13,21-22; 24,15-18; 40,34-38)와 예수님이 모습을 바꾸실 때(마르 9,7 병행 루가 9,34-35) 등장한다. 묵시문학에서는 종말이 오면 인자가 구름을 타고 온다고 기대하였다(다니 7,13).

 

제자들은 예수님이 올라가시는 동안 내내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때에 흰옷 입은 사람 둘이 그들 곁에 다가와서 왜 하늘만 쳐다보고 서 있느냐고 그들을 나무랐다. 하늘에서 내려오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기에 앞서 제자들은 복음 선포라는 중요한 과업을 수행해야 한다. 그리고 이 일을 올바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그래서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더러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승천을 목격한 사도들은 예루살렘 시내로 돌아와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전통적인 해석에 따르면 그들이 다락방에 모인 이유가 유다인들이 무서워 숨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이는 루가 24,53의 “그들은 언제나 성전에서 하느님을 찬양하며 지냈다.”는 표현과 상충된다. 성전에서 기도하는 일은 공적 장소에 자신들을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루가가 여기서 전하고자 한 내용은 제자들이 유다인들의 기도 · 예배 시간에는 성전에 갔지만, 그 밖의 시간에는 다락방에 모여 기도에 전념하였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 때에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다른 부인들, 예수님의 형제들도 함께 있었다. 마르코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형제들을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으로 소개한다(마르 6,3).

 

그런데 성령을 받기 전에 유다의 죽음으로 결원이 된 사도단의 보충이 먼저 이루어져야 했다. 그래서 사도들은 백이십 명 가량 모인 자리에서 예수님의 공생활에 참여한 요셉과 마티아를 내세우고 제비로 하느님의 뜻을 물어 마티아를 선출했다. 루가는 12라는 숫자를 중요시하였다. 백이십 명은 열두 사도와 관련된 수이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와도 연결된다. 성령을 받아 창립될 교회는 옛 이스라엘 백성을 계승한 새 이스라엘이라는 생각이 암시된다. 이스라엘에서는 남자 120명이 모여야 지방의회를 구성하고 합법적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따라서 마티아의 사도 선출은 합법적이다.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 선포로 이미 시작된 종말이 완성에 이르기까지는 아직 상당한 세월이 흘려야 한다. 종말의 완성은 복음이 세상 구석구석까지 전해진 다음에야 올 것이기 때문이다. 루가의 승천기는 그리스도인들의 보편적 소명을 일깨운다. 세상에 하느님 나라에 관한 복된 소식과 예수님의 길을 전파해야 할 사명은 종말을 살고 그 완성을 기다리는 우리 모두의 몫이다.

 

[경향잡지, 1999년 5월호, 정태현 갈리스도 신부(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총무 / 사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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