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여호수아: 굳세고 용감해져라(여호 1,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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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9-07-21 | 조회수3,296 | 추천수1 | |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 굳세고 용감해져라(여호 1,1-7)
히브리 말로 여호수아는 ‘주님은 구원이시다.’라는 뜻이다. 성서에는 이 이름으로 불리는 인물이 다섯이나 나온다. 이 글에서 다루는 모세의 시종 여호수아, 사무엘 예언자 시대에 살았던 벳세메스의 주민 여호수아(1사무 6,14-18), 요시야 시절 유다의 한 성읍을 다스리던 성주 여호수아(2열왕 23,8), 하깨 예언자가 주님의 말씀을 전한 대사제 여호수아(하깨 1,1; 2,2; 즈가 6,11), 예수님의 족보에 나오는 엘리에젤의 아들인 여호수아(루가 3,29)이다. 이들 가운데 모세의 시종 여호수아와 하깨 시대의 대사제 여호수아가 가장 유명한데, 이 둘을 구별하려고 보통 나중 인물을 예수아로 옮긴다.
구약성서에서 여호수아가 처음 등장하는 상황은 이집트를 빠져나온 이스라엘이 시나이 산을 향하여 가던 도중, 시나이 반도 남쪽 르비딤이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였다. 네겝 지방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아말렉족이 이스라엘인들에게 싸움을 걸어오자 모세는 젊은 장수 여호수아를 시켜 그들을 치게 한다. 이후 여호수아는 그림자처럼 모세를 수행하며, 모세가 시나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올바로 이끌 수 있도록 충직하게 도운다. 아래 본문은 여호수아의 소명기(여호 1,1-9) 앞부분이다.
(구약성서 새번역) 여호 1. 1 주님의 종 모세가 죽은 뒤 주님께서는 모세의 시종인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2 “나의 종 모세가 죽었다. 그러니 이제 너와 이 모든 백성은 일어나 저 요르단을 건너서, 내가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주는 땅으로 가거라. 3 내가 모세에게 이른 대로 너희 발바닥이 닿는 곳은 다 너희에게 주었다. 4 광야에서 레바논을 거쳐 큰 강 유프라테스 강까지 그리고 헷 사람들의 온 땅과 해지는 쪽 큰 바다까지 모두 너희 엉토가 되리라. 5 네가 사는 동안 내내 아무도 너에게 맞서지 못하리라. 내가 모세와 함께 있어주었듯이 너와 함께 있어주며 너를 떠나지도 저버리지도 아니하리라. 6 굳세고 용감해져라. 내가 이 백성의 조상들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을 이 백성에게 상속 재산으로 나누어줄 사람은 바로 너다. 7 오직 너는 굳세고 아주 용감해져서 나의 종 모세가 너에게 명한 모든 율법을 명심하며 실천하고,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벗어나서는 안된다. 그러면 네가 어디를 가든지 성공하리라”
신명기는 모세의 죽음을 전하는 기록으로 끝을 맺는다(34장). 이스라엘의 가장 뛰어난 지도자요 예언자였던 모세는 느보 산 꼭대기에 올라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기로 한 땅을 바라보며 죽는다. 모세는 죽기 전에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여 그를 지혜의 영으로 가득 차게 하였다(신명 34,9). 이 안수는 모세가 그를 자신의 후계자로 내세웠다는 표시이다. 하느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직접 소명을 주심으로써 당신의 종 모세의 뜻을 인준하시는 동시에 여호수아가 사명감과 자신감을 갖게 하신다.
구약성서는 ‘주님의 종’이라는 칭호를 거의 대부분 모세에게만 붙인다. 반면에 모세오경에서 여호수아는 ‘모세의 시종’이라 불린다(출애 24,13; 33,11; 민수 11,28 등). 여호수아의 소명은 모세의 소명에 이어진다.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빼내어 가나안 문턱까지 인도하는 것이 모세의 소명이었다면, 가나안을 정복하고 땅을 분배하는 것은 여호수아에게 맡겨진 소명이다. 물론 이 두 사람의 소명을 잇고 주관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내가 모세에게 이른 대로 너희 발바닥이 닿는 곳은 다 너희에게 주었다.”(3절)는 과거형의 말씀은 ‘예언적 과거’라 불리는 특별한 문학 기법이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소유를 마치 과거에 일어난 사건처럼 여기는 것이다. 이는 하느님께서 이미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넘겨주셨으니, 이제 주저하지 말고 그곳에 쳐들어가 차지하라는 뜻이다. 그 땅은 남쪽으로는 이집트와 국경을 이루는 광야, 북쪽으로는 레바논, 동쪽으로는 유프라테스 강, 서쪽으로는 지중해에 이르는 ‘헷 사람들의 땅’(기원전 7세기 근동 문헌에서 시리아-팔레스티나를 가리킴)과 요르단 동쪽 지파들의 영토를 포함한다. 이 경계는 약속된 땅의 이상적 국경이다(창세 15,18; 출애 23,31; 신명 1,7: 11,24; 1열왕 5,1).
이어지는 말씀은 신명기의 사상으로 가득하다. 주님께서는 먼저 여호수아에게 아무도 그와 맞서지 못하리라고 단언하신다(신명 7,24). 그것은 당신이 그를 지켜주시겠다는 약속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분은 당신이 모세와 함께 계셨듯이 그와 함께 계시며 그를 떠나지도 저버리지도 않으실 것이라고 약속하신다(신명 2,7; 31,8). 이 약속은 신명기계 역사가의 편집을 거친 예레미야의 소명 이야기에도 나온다(예레 1,19).
다음으로 주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굳세고 용감해져라”(신명 31,7. 23) 하고 격려하시며, 그가 바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된 땅을 상속 재산으로 나누어줄 사람이라고 지적하신다. 이 지적에서 여호수아의 소명이 밝혀진다. 그의 소명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의 땅을 차지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소명은 이미 신명 31,23에 주어졌다. ‘너는 굳세고 용감해져라. 내가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주겠다고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데리고 들어갈 사람은 바로 너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그 다음, 주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율법을 명심하여 실천하라고 당부하신다. 율법은 하느님께 똑바로 가는 길과 성공하는 길을 가르쳐준다. 하느님께 가는 길에서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벗어나지 않으면 성공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이다. 이 사상은 신명 5,32-33에서 이미 드러났다.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것들을 명심하여 실천해야 한다. 너희는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벗어나서는 안된다.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길을 따라 걸어야 한다. 그러면 너희가 차지할 땅에서 너희가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잘되고 오래 살 것이다.”
마지막으로 주님께서는 다시 한번 여호수아를 격려하신다. “굳세고 용감해져라. 무서워하지도 말고 놀라지도 마라. 네가 어디를 가든지 주 너의 하느님이 너와 함께 있어주리라”(9절). ‘무서워하지도 말고 놀라지도 마라.’는 표현도 신명기에 자주 나온다(1,21; 7,21; 31,6. 8).
이처럼 주님께 약속과 당부와 격려와 더불어,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나누어주라는 소명을 받은 여호수아는 곧바로 정복사업에 착수한다. 그 당시 가나안은 수세기 동안 이집트의 지배를 받아오다, 이집트가 약해진 틈을 타 수많은 도시 국가 형태를 이루어 그 지배에서 완전히 독립하였다. 튼튼한 요새로 이루어진 도시 국가들은 외부의 적이 침입할 때는 서로 협조하였으나, 자기들 내부에서는 적잖은 분쟁과 갈등에 곧잘 휘말려들었다. 여호수아는 이 취약점을 이용하여 가나안의 도시 국가들을 하나하나 공략하기 시작하였다. 평지에서의 싸움은 승산이 없었다. 평지의 도시 국가들은 튼튼한 요새로 방비되고 말이 끄는 강력한 전차 부대를 갖추고 있었다. 고고학 발굴에서 게젤의 석벽은 폭이 4미터나 되고, 예리고의 이중 벽돌 성벽은 바깥쪽 성벽이 1.8미터, 안쪽 성벽이 3.6미터나 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고대인들이 튼튼한 요새 성읍을 공략하는 방법은 거대한 쇠망치나 기둥으로 성벽을 헐어내거나 뚫는 것, 성벽 아래로 땅굴을 파서 들어가는 것, 아니면 오랜 기간 동안 성을 포위하여 굶주리게 하는 것 등이었다. 여호수아는 이런 방법을 쓰기에 충분한 무기도 병력도 없었다. 그래서 평지보다는 산악지대에 흩어져있는, 인구가 적은 성읍들을 골라 공격하고, 평지의 성읍들은 계략과 야간 기습을 이용하여 공략하였다. 그는 병사들에게 무기와 병력의 열세를 주님께 대한 믿음과 약속된 땅을 차지하겠다는 불굴의 의지, 시나이 광야에서 길러온 전투력으로 극복하도록 격려하였다. 이런 격려는 전투에 임하는 병사들에게 한 여호수아의 여러 설교에 잘 나타나 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인들과 치른 전쟁은 성전(聖戰)이다. 그것은 단순히 이스라엘과 가나안족 사이의 싸움이 아니라 야훼와 이방신들 사이의 싸움이다. 그리고 이 전쟁에서 얻은 포로와 노획물은 모두 전쟁의 승리자인 하느님 차지이므로 하느님께 ‘완전봉헌물’로 바쳐야 한다. ‘완전봉헌’은 포로는 죽이고 물건은 완전히 파괴시킨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런 대량 학살과 파괴가 있었을까? 여호수아 이후에도 가나안인들의 성읍과 풍습과 우상숭배가 계속해서 존재한 것으로 미루어 ‘완전봉헌’이 말 그대로 실천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가나안 땅을 모두 정복하고 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열한 지파에게 각 지파의 수에 맞추어 땅을 분배하고 레위 지파에게는 각 지파가 내놓은 성읍들과 거기에 딸린 목초지를 나누어주었다. 이렇게 가나안의 정복과 분배가 끝나자 여호수아는 모든 지파를 세겜에 불러모은 다음, 그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내시어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하신 주님만을 충실히 섬기라는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파란 많은 전사로서 생을 마감한다.
‘주님의 종’ 모세의 뛰어난 영도력이 이스라엘의 종교적 기초를 마련하였다면, ‘모세의 시종’ 여호수아의 헌신적인 삶은 그 정치적 기초를 마련해 주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경향잡지, 1999년 7월호, 정태현 갈리스도 신부(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총무 / 사도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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