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인물]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의로운 사람, 요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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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9-07-22 | 조회수5,257 | 추천수3 | |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의로운 사람, 요셉
영국이 자랑하는 엘리자베스 여왕과 대처 수상의 공통점을 꼽으라면 빠지지 않는 것이 훌륭한 남편의 외조라고 한다. 크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남편들의 보이지 않는 외조가 그들의 활동을 더 빛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수없이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성서에도 부인의 명성과 빛이 너무 화려해 상대적으로 불리한(?) 평가를 받는 인물이 있다. 그 대표적 인물이 요셉이 아닐까. 하다못해 오늘날 신자 가정의 성물 배열에서도 요셉 성인은 예수님과 성모님과 비교해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요셉은 결코 구세사 안에서 과소평가할 인물이 아니다. 요셉은 성모 마리아 못지않은 신앙의 소유자이고 하느님의 구원역사의 협력자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성서의 세계로 침잠하여 그 옛날 요셉 성인의 삶과 신앙을 되새겨보자. 요셉 성인도 우리와 똑같은 약한 인간으로서 그분이 받은 고통과 상처를 묵상하는 것이 오히려 우리에게는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줄 것이다.
요셉의 고뇌, 선택, 결단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요셉은 다윗의 자손으로 중류 계급의 목수였다. 자신의 기술로 땀 흘려 벌어먹고 사는 평범한 유다인인 그에게 큰 시련이 다가왔다. 우리네 인생처럼 위기의 순간이 아무도 예기치 못한 시간과 방법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것도 가장 중요하고 인생의 기쁨이 되는 결혼이 고통의 시작이 되리라고는 아마 상상할 수 없었을 게다.
요셉이 나자렛에 살고 있는 처녀 마리아와 약혼한 것은 결혼을 앞둔 반년 전의 일이었다. 부인이 될 마리아는 신앙심이 깊은 집안의 처녀였다. 유다인의 일반적인 관습에 따르면 약혼은 결혼과 동등한 법적인 효력을 갖고 있었다. 약혼기간은 대략 일년이고, 약혼한 다음 일년 뒤에는 자연스럽게 혼례를 치렀다. 청년 요셉은 부모님들이 맺어주신 배필 마리아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자신의 평생 반려자를 맞이한 요셉의 마음은 기쁨으로 충만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요셉은 해괴망측한 소식을 접하고 아연실색했다. 마리아가 아이를 가졌다는 것이다. 마리아가 아이를 가졌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마치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요셉은 혼이 나간 사람처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거짓말이라고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요셉은 한편으로는 배신감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가도 착하고 얌전한 마리아가 불륜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아 가슴이 저렸다. 깊은 밤이 되어도 잠을 청할 수 없고, 아무리 생각해도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신앙심이 깊은 의로운 사람, 요셉. 그의 아버지도 이스라엘의 성조 요셉의 깊은 믿음과 착한 심성을 닮으라고 요셉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셨다. 의롭다는 것은 정의와 사랑을 겸비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요셉은 실제로 살아오면서 율법을 잘 지켰고 인간적으로도 사려 깊이 행동하였다.
며칠 동안 자신의 약혼자 문제를 곰곰이 생각하던 그는 조용히 파혼하려고 마음먹었다. 그때의 율법은 약혼기간에 부정이 드러나면 간음으로 취급하여 돌로 쳐죽이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마리아는 마땅히 쳐죽임을 당해야 했다. 요셉은 무엇보다 모세의 율법을 존중하는 사람이었지만 법에 따라 마리아를 죽게 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 보면 마리아의 임신 소식은 드러나봐야 자기에게도 이득은 없을 거라 판단했을 수도 있지만, 조용히 파혼하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이라 선택했다.
요셉은 이 고통의 시간에서 어서 벗어나기만을 바랐다. 마리아가 어떻게 되는 것은 그녀의 일이라 생각했다. 심사숙고한 다음 결정했지만 이미 회복하기 힘든 큰 상처를 받은 것은 사실이었다. 어쨌든 자신의 손에는 피를 묻히고 싶지 않았다. 큰 결심을 하고 겨우 잠자리에 들었는데 주님의 천사가 꿈에 나타났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그리고 마리아를 네 아내로 맞이하여라.”
“마리아는 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가졌습니다. 그러니 모세 율법으로는….”
“그 아이는 하느님의 성령으로 잉태된 아이다. 아들을 낳을 터이니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 아이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인물이다.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여라.”
꿈에서 깨어난 요셉은 더욱더 혼란에 빠졌다. 어렵게 결정을 내렸는데, 다시 모든 것이 헝클어졌다. 솔직히 천사의 말씀을 다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요셉은 다시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섰다. 때로는 어떤 선택이 자신의 일생을 결정하는 경우가 있다. 요셉 앞에 놓여있는 선택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그는 다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인생이 원망스러웠다. 왜 이런 시련을 겪어야 하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결국 모든 것을 신앙으로 받아들으려고 노력했다. 천사의 발현을 새로운 삶에 대한 계시로 수용했다. 어쩌면 하느님께서 자신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깨달음을 어렴풋이 갖게 되었다.
‘그래, 지금은 이해할 수 없지만 하느님의 깊은 뜻이 있을 거야. 천사의 말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자.’
이런 의미에서 요셉은 신앙인의 전형이다. 그의 선택은 자신을 온전히 버림으로써 이루어졌다. 자신의 생각과 결정을 버리고 나서야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내어줄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요셉은 진정으로 의로운 사람이었다. 과연 요셉은 이후에도 자신의 피가 섞이지 않은 아들 예수를 바라보며 가끔씩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 마음을 짐작할 수는 있다.
성서는 요셉의 고뇌, 선택, 결단에 대해 짧게 기록하고 있다. 이 짧은 이야기는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이다. 요셉의 이야기는 우리 삶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요셉의 이야기는 바로 우리의 이야기이고, 인생 여정에서 어디서든 마주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인간적으로나 신앙적으로나 사려 깊은 신앙인 요셉의 삶은 무척 인상적이다.
오늘날에도 부인 마리아의 명성(?)에 가려있지만 요셉은 마리아에 못지않은 신앙적인 인물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싶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신앙의 삶을 묵묵히 걸어가는 수없이 많은 요셉들…. 그들이야말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의로운 사람들이다.
[경향잡지, 2002년 3월호, 허영엽 마티아(서울대교구 ‘성서 못자리’ 전담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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