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복음서 읽기의 새로운 방법6: 이야기의 장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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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9-08-03 | 조회수4,181 | 추천수2 | |
복음서 읽기의 새로운 방법 6 - 이야기의 장소
복음서의 이야기는 주인공이신 예수님이 다른 여러 사람들과 만나면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들로 이루어진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반대자들을 만나시고, 여러 작은 등장 인물들과도 만나신다. 예수님과 이들 사이의 만남은 특정한 장소에서 일어나는데, 이 곳들이 복음서 이야기의 공간적 배경이다.
복음서의 예수님은 어느 한 곳에만 가만히 머무르지 않으시고, 계속해서 움직이신다. 예수님이 다니신 여러 장소들과 길들은 복음서 이야기의 공간적 배경이 된다. 따라서 이 공간적 배경은 전체 복음서가 어떻게 구성되어있는지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갈릴래아와 예루살렘
공관 복음서의 전체 구성을 장소의 이동이라는 측면에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예수님은 갈릴래아에서 활동하시다가 예루살렘으로 가셨고 그곳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셨다. 공관 복음서의 각 권은 크게 보아 예수님의 갈릴래아에서의 활동과 예루살렘에서의 행적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서 이야기의 구성에서 갈릴래아와 예루살렘이 크게 대조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 두 장소의 대조를 더 자세히 살펴보자. 예수님 당시의 팔레스티나는 북쪽의 갈릴래아 지방, 남쪽의 유다 지방 그리고 그 사이의 사마리아 지방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예수님이 공적 활동을 시작한 곳이 바로 갈릴래아였다.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셨다.”(마르 1,14 병행) 이렇게 예수님이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신 곳이 갈릴래아이다. 갈릴래아에서 사람들은 예수님의 복음을 들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갈릴래아였다. 그곳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의 공동체가 시작되었다. 예수님은 갈릴래아에서 여러 기적을 행하시어 하느님의 나라의 현존을 드러내셨다.
갈릴래아와 인근 지역에서 활동하신 예수님은 이제 예루살렘으로 가신다. 예루살렘으로의 길은 복음서 이야기의 전환점을 이룬다. 예루살렘은 어떤 장소인가? 그 도시는 이스라엘의 중심이고 하느님의 집인 성전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동시에 예루살렘은 예수님의 반대자들이 있는 장소이다. 갈릴래아에서 예수님이 활동하실 때에 예루살렘은 이미 적대적인 곳으로 소개된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을 비판한다.(마르 3,22 이하 병행) 예루살렘은 예수님을 배척하고 죽인 장소이다. 갈릴래아가 나라의 변두리, 가난한 이들의 땅이라면 예루살렘은 나라의 중심이고 권력과 부를 가진 지배층의 도시이다. 예수님의 길은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복음서 이야기에서 갈릴래아와 예루살렘의 대조는 단순한 지리적, 정치적, 사회적 대조만을 의미하지 않고, 동시에 신학적인 대조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복음서의 이야기에서 장소, 즉 공간적 배경은 신학적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갈릴래아에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신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반대자들과 논쟁하신다. 갈릴래아에서 시작된 예수님과 제자들의 공동체는 결국 예루살렘에서 파국을 맞이한다. 예루살렘은 배반의 장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예수님의 길은 결국 십자가에로의 길이다. 그 길은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투신하시는 예수님의 길이다.
복음서의 이야기는 결국 예루살렘에서 끝나는가? 십자가의 죽음으로, 파국으로 끝나는가? 그렇지 않다. 복음서의 이야기는 다시 갈릴래아를 말한다. 빈 무덤에서 한 젊은이는 여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러니 가서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렇게 일러라. 예수님께서는 전에 여러분에게 말씀하신 대로 여러분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여러분은 그분을 거기에서 뵙게 될 것입니다.”(마르 16,10 병행) 예수님은 제자들을 갈릴래아로 다시 부르신다. 이것은 새로운 만남으로의 초대이다. 그 만남의 장소는 첫 만남의 장소였던 바로 갈릴래아이다.
이와 같이 갈릴래아와 예루살렘이라는 공간적인 배경은 복음서 사건들의 기본 틀을 제공한다. 그런데 갈릴래아와 예루살렘의 의미에 관하여 각 복음서들이 강조하는 점은 조금씩 다르다. 예를 들어 루카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저자에게 있어 예루살렘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예루살렘은 구원의 역사의 중심이다. 예루살렘은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곳, 성령 강림이 일어난 곳, 복음 전파가 시작되고 교회 공동체가 시작된 곳이다. 그리고 갈릴래아와 예루살렘의 관계에 있어서 공관 복음서와 요한 복음서 사이에는 몇몇 차이점이 있다. 공관 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이 공생활 중 단 한번 파스카 축제 때 예루살렘으로 가시지만, 요한 복음서에서는 세 번이나 예루살렘에서 파스카 축제를 지내신다. 이와 같이 복음서의 전체 구성에서 갈릴래아와 예루살렘은 기본적으로 큰 대조를 이루고 있지만, 각 복음서 마다의 특수성도 동시에 존재하게 된다.
장소의 분류
복음서 이야기의 장소에는 자연적인 장소, 일상적인 장소, 종교적인 장소가 있다. 이외에 또 다른 분류로는 공적인 장소와 사적인 장소가 있다. 예수님의 활동 공간 중에는 집, 마을, 호숫가, 회당, 성전 등 공개된 장소가 있다. 이들 장소에서 예수님은 사람들을 가르치시고 여러 가지 기적을 행하시기도 하며, 반대자들과 갈등을 일으키고 그들과 논쟁을 하신다. 한편 예수님의 활동 공간 중에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 있던 집 안, 산, 예루살렘의 어느 이층 방, 겟세마니 등 사적인 장소도 있다.
복음서 이야기의 장소 중에는 과거 이스라엘의 역사와 구약 성경의 이야기를 회상시키는 곳이 있는데, 요르단 강, 광야, 바다(=호수), 산 등을 들 수 있다. 에집트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요르단 강을 건넜다. 그 요르단 강에서 세례자 요한은 메시아의 도래를 준비하는 세례를 베풀었다. 광야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시험의 장소인 동시에 준비의 공간이었다.
그들의 40년 광야 생활은 시련인 동시에 약속의 땅을 위한 준비를 의미했다. 복음서에서도 역시 광야는 시험과 준비의 의미를 가진다. 광야에서 예수님은 사탄의 유혹을 받으셨고(마태 4,1-11 병행) 공생활을 준비하셨다. 구약 성경에서 바다는 혼돈과 파괴의 장소이다. 하느님의 능력은 혼돈에서 질서를 만들고 갈대 바다를 갈라 놓았다. 이처럼 예수님도 호수의 풍랑을 가라앉히셨고(마르 4,35-41 병행) 물 위를 걸으셨다.(마르 6,45-52 병행) 구약 성경에서 산은 하느님 현현과 계시의 장소이다. 그리고 산에서 모세에게 율법이 주어졌다. 복음서에서도 예수님은 산에서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모하시고(마르 9,2-10 병행), 새로운 가르침을 주신다.(마태 5-7장의 산상설교)
이야기의 장소와 독자
이상에서 우리는 복음서 이야기의 장소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이제 우리는 복음서를 읽을 때 사건의 공간적인 배경인 장소를 주의 깊게 보아야 한다. 그 장소가 이야기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장소의 의미를 잘 파악할 때 본문의 의미는 더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우리가 읽는 본문의 공간적 배경은 갈릴래아인가 예루살렘인가? 자연적인 장소인가 일상적인 장소이나 종교적인 장소인가? 공적인 장소인가 사적인 장소인가? 그리고 그 장소의 신학적 의미는 무엇인가?
[월간 빛, 2009년 6월호, 송창현 미카엘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성서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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