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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유대인 이야기54: 게토 - 사라지지 않는 서로 간의 장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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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0-04-06 조회수4,515 추천수2

[유대인 이야기] (54) 게토(Ghetto)


사라지지 않는 서로 간의 ‘장벽’

 

 

중세기에 전 유럽으로 확산된 게토는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유대인들에 대한 차별 철폐와 더불어 하나 둘 사라졌지만 러시아와 폴란드, 체코 등지에서는 20세기 들어서까지 그 명맥을 유지했다. 사진은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를 둘러싸고 있던 담장의 일부.

 

 

2002년 한일 월드컵 16강전에서 대한민국이 이탈리아를 연장 접전 끝에 기적적으로 이긴 그날(6월 18일)이었다. 한국인들에게는 축제였던 그날, 유대인들의 나라 이스라엘에서는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다.

 

출근시간, 예루살렘 시가지 도로는 차로 가득했다. 학생 등 출근 시민을 가득 태운 버스 한 대가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서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쾅!”

 

버스는 큰 폭발음과 함께 산산조각 났다. 버스 지붕이 떨어져 나갔다. 차체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부서졌다. 타고 있던 유대인들은 대부분 사망했다. 시신을 수습하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이틀 전(6월 16일) 이스라엘이 요르단 강 서안지역과 가자 지구, 동예루살렘 등 팔레스타인 영토와의 경계선에 8m 높이의 장벽을 쌓는다고 선언한데 따른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의 항의 테러였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어떤 민족인가. 협박이나 테러에 순순히 머리를 숙일 사람들이 아니다.‘벽 쌓기’를 계속 밀어 붙였다. 2020년께 준공될 것으로 보이는 장벽은 2010년 초 현재 500여㎞ 구간이 완성됐으며, 최종 완공시에는 810㎞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국제사법재판소는 2004년 이 장벽이 국제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판결했지만 이스라엘은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며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 이로 인해 팔레스타인 지역은 현재 거대한 감옥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유대인들의 ‘담 쌓기’는 유대인 스스로도 500여년전에 직접 당했던 일이다. 자신들이 당했던 일을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되갚음하고 있는 셈이다. 500년전 유럽 사회는 유대인들을 격리시키고 담을 쌓았다.

 

게토(Ghetto)가 그것이다.

 

게토라는 말의 어원에 대해선 아직도 불분명하다. 사실 유대인 격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행되고 있었다. 1280년 모로코에선 이슬람교도들이 유대인을 격리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킨바 있다. 1300년대 중반 페스트가 유럽을 휩쓸자 그리스도교인들은 별도의 지역을 정하고, 유대인들을 그곳에서만 거주토록 했다. 유대인들의 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한다는 명목이었다. 특히 당시 이탈리아에선 유대인 거주지역을 담장으로 둘러싸 다른 지역과 분리시켰다.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암마인, 체코의 프라하 등지에서도 유대인 격리 지역이 생겨났다.

 

그러나 게토라는 말이 직접 사용된 것은 1516년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서다. 베네치아의 귀족 ‘돌핀’에 의해 제안된 게토는 곧 대다수 시민들의 호응을 얻었고, 일사천리로 처리된다. 그해 3월 29일 반포된 베네치아 시의회의 포고령을 보자.

 

“유대인은 모두 게토에 있는 집단거주지에서 공동으로 살아야 한다. 문은 아침에 열리며 자정에 보초병이 닫아야 한다. 자정 이후에 유대인은 밖을 다닐 수 없다. 보초병에 대한 급료는 유대인들이 지불해야 한다.”

 

유대인들이 격리된 곳은 한때 주물공장이 있던 곳으로, 섬이었다. 그래서 학자들은 게토라는 말이 주물을 뜻하는 라틴어 게타레(Gettare)의 베네치아 말 ‘기센’‘기세라이’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게토에 장벽이 세워졌다. 밖으로 연결된 2개의 통로에는 각각 2명씩 모두 4명의 보초병이 배치됐다. 섬 주위에는 6명이 감시용 선박을 타고 수시로 순찰했다. 이들 10명의 급료는 모두 유대인들이 지불해야 했다. 게토에 수용된 인원은 2412명이었다. 100년 후에는 게토 공간을 넓혀 총 5000여 명의 유대인들을 수용했다.

 

유대인들은 이를 받아들였다. 저항하지 않았다. 자신들에게 좋은 점도 있었기 때문이다. 게토에 머무르는 동안은 타 민족의 폭력으로부터 안전했다. 율법 준수 및 회당에서의 모임도 보장받을 수 있었다. 유대인들로부터 그리스도교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게토는 동시에 그리스도교인들로부터 유대인들을 보호하는 기능을 했다. 게토는 또 이슬람교도들의 인신매매에서도 안전할 수 있었다. 당시 이슬람교도들은 유대인 납치에 적극 나섰는데 이는 납치당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유대인 사회가 많은 돈을 지불했기 때문이다.

 

게토의 효용성(?)이 베네치아에서 증명되자, 유럽 각국은 게토 설치에 적극 나섰다. 이후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유럽 각지에 있던 게토는 유대인들에 대한 차별 철폐와 더불어 하나 둘 사라졌다. 하지만 러시아와 폴란드, 체코 등지에서는 20세기 들어서까지 그 명맥을 유지했다.

 

그중 유명한 것이 나치 독일이 폴란드 바르샤바에 설치한 게토다. 높이 3m, 길이 18km의 담장으로 둘러싸인 3399㎡의 게토 안에는 50만 명의 유대인들이 수용됐다. 이때 유대인 젊은이들은 ‘유대인 투쟁조직’(Jewish Fighting Organization)을 결성, 1943년 게토 안에서 50여 명의 독일군을 사살하고 강제 수용소로 이송될 예정이었던 수많은 유대인들을 구출했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 뿐이었다. 보복에 나선 독일군은 그해 파스카 축일에 게토에 진입, 5만 6000여 명의 유대인을 체포하고 7000여 명을 처형했다. 당시 바르샤바 게토의 처참함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가 2002년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The Pianist)다.

 

이와 관련, 가톨릭교회는 유대인들이 받았던 박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통탄했다.

 

“누구를 박해하든지 간에 박해라면 무엇이나 다 교회가 배격한다. 교회는 유대인들과의 공동 유산을 상기하며, …유대인들에게 대한 온갖 미움과 박해와 데모 같은 것을 언제 누가 감행하였든지 간에 차별 없이 통탄하는 바이다.”(제2차 바티칸공의회 ‘비그리스도교에 관한 선언’4항)

 

유대인을 대상으로 하는 게토는 오늘날 사라졌다. 하지만 게토는 또 다른 모습으로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지금 팔레스타인 지역을 게토화하는 작업에 진력하고 있다. 2016년 하계 올림픽 유치에 성공한 브라질도 2010년 초부터 빈민가 판자촌 둘레에 담을 치는 공사에 나섰다. 작업이 마무리되면 빈민가 13곳이 80㎝~3m 높이의 콘크리트 장벽에 둘러싸이게 된다.

 

[가톨릭신문, 2010년 4월 4일, 우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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