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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유대인 이야기63: 험난한 평화의 길 - 피로 물든 평화를 위한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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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0-06-06 조회수3,438 추천수2

[유대인 이야기] (63) 험난한 평화의 길


피로 물든 ‘평화를 위한 노래’

 

 

라빈 총리의 사망은 중동 평화의 사망선고였다. 라빈 총리 사후 지금까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는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진은 2006년 8월 4일 이스라엘 공군의 폭격으로 화염에 휩싸이고 있는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 남서부 지역.

 

 

“탕!”“탕!”“탕!”

 

세 발의 총성이 공기를 뒤흔들었다. 1995년 11월 4일, 이스라엘 최대 도시 텔아비브의 시청 앞. 아수라장이 됐다. 비명소리가 귀를 찢었다.

 

10만 군중이 모인‘중동평화 정착 계획 지지 군중대회’에서 연설을 마친 이스라엘 라빈(Yitzhak Rabin, 1922~1995) 총리가 시청 앞 계단을 내려와 막 차에 오르려던 순간이었다. 25세의 극우파 유대인 청년, 이갈 아미르(Yigal Amir)가 3m 거리에서 라빈 총리를 향해 9㎜ 베레타 권총을 발사했다.

 

첫 번째 총알이 라빈 총리의 등에 맞았다. 순간 한 경호원이 총리를 차 안으로 밀어 넣었고, 그 과정에서 범인이 이어 발사한 두 번째와 세 번째 총알이 경호원의 어깨를 관통했다. 라빈 총리는 곧바로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으나 1시간 만에 사망했다.

 

총리의 양복 윗주머니에서 피 묻은 쪽지 하나가 발견됐다. 쪽지에는 이스라엘 어린이들이 즐겨 부르는 ‘평화를 위한 노래’(A song for peace) 가사가 적혀 있었다. ‘평화를 위한 노래’의 가사에 피가 묻었다. 전 세계가 경악했다. 라빈 총리의 사망은 중동 평화의 사망선고였다.

 

당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및 아랍 국가들 사이에서 화해 분위기가 무르익던 시기였다. 이스라엘은 걸프전(1990~1991)에도 참전하지 않았다. 1991년 10월, 이스라엘과 시리아, 요르단, 레비논, 팔레스타인은 사상 처음으로 평화를 논의하기 위해 한 테이블에 앉았다.

 

1993년 9월에는 라빈 총리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Palestine Liberation Organization)의 야세르 아라파트(Yasser Arafat, 1929~2004)가 팔레스타인 자치협정에 조인했다. 이른바 오슬로 협정(Oslo Accords)이다. 이 협정에서 라빈 총리의 이스라엘은 PLO를 합법적인 팔레스타인 정부로 인정했다. 공존의 가능성을 모색한 최초의 평화 협정인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 협정을 통해 1967년 점령했던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의 60% 지역에서 군대를 철수시키겠다고 약속했다. 팔레스타인도 테러와 폭력을 근절하겠다고 했다. 이스라엘은 또 해당 지역의 사법권 입법권 경찰력 등을 팔레스타인 통치기구로 이전한다고 했다.

 

단순히 약속에 그친 것이 아니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내 군사기지를 팔레스타인 경찰에 이양했다. 이에 1994년 7월 아라파트 의장과 각료들이 예리코 자치지역에서 취임식을 거행하고 자치정부의 수립을 공식 선언했다. 이후 1995년 9월에는 양측간에 팔레스타인 자치 확대 협정이 체결됐다.

 

라빈 총리는 또 요르단의 후세인 국왕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45년 적대관계를 청산하기도 했다. 한 하늘을 함께 이고 살 수 없을 것으로 여겨졌던 이들이 공존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라빈 총리는 이 공로로 1994년 아라파트와 공동으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세계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이같은 화해 노력에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정작 적은 내부에 있었다. 이스라엘의 정치계와 종교 지도자들이 라빈을 비난하고 나섰다. 현 이스라엘 총리인 베냐민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 1949~)는 당시 “라빈은 배신자”라고 공공연히 비난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아리엘 샤론 전 총리, 에후드 올메르트 전 총리 등이 라빈을 공격했다. 라빈 반대파들은 “툭하면 테러를 일으켜 유대인들을 살상하는 팔레스타인과의 평화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라빈 총리를 살해한 아미르의 말에서도 잘 드러난다. 현재 종신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인 그는 “팔레스타인에게 땅을 내주고 평화를 구하려한 라빈 총리는 이스라엘 민족을 배반했다. 그를 죽인 것은 유대인을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이에 팔레스타인 내부에서도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1998년과 1999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대표가 오슬로 협정의 완전한 이행을 거듭 다짐했음에도, 진척이 빨리 이뤄지지 않았다. 라빈이 있었다면 문제가 달랐겠지만, 라빈은 사망하고 없었다. 이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실망을 하게 된다.

 

여기에 불을 지른 것이 샤론 전 이스라엘 총리다. 샤론은 총리가 되기 전인 2000년 9월, 예루살렘의 알 아크샤 사원을 방문해 “예루살렘을 팔레스타인에 양보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황금 돔, 알 아크샤 사원은 메카와 메디나에 이어 이슬람 제3의 성지다. 팔레스타인 사람들 그리고 이슬람 신자들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이 성지만큼은 양보하지 못한다. 그런데 문제는 사원이 세워진 곳이 유대인의 성지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유대 전승에 의하면 이곳은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려던 그 바위가 있었던 자리다. 그런데 현재 이곳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거주지역이고, 유대인들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고 있다. 그곳에 샤론이 들어간 것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분노했다. 결국 두 번째 안티파다가 시작된다.

 

분노와 흥분 속에서 평화 노력도 점차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2001년 9월 11일 미국에 대한 테러공격이 일어났다. 혼란은 가중됐다.

 

2005년 이스라엘 청년이 4명의 팔레스타인 주민을 살해했다. 그러자 예루살렘 시내에서 팔레스타인 주민이 식칼을 휘둘러 유대인 1명을 살해하고 다른 1명을 중태에 빠뜨렸다. 이스라엘 군대는 보복을 위해 팔레스타인 혐의자 5명을 사살했다. 죽이고 죽이는 악순환의 고리다. 지금도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는 이스라엘 정착촌에 대한 로켓포 공격을 가하고 있다. 그러면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 마을을 파괴한다. 팔레스타인의 무차별 자살 테러도 계속되고 있으며, 이에 이스라엘은 특공대와 헬기 등을 동원해 응징 대응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지금 요르단 강 서안지역과 가자 지구, 동예루살렘 등 팔레스타인 영토와의 경계선에 8m 높이의 장벽을 쌓고 있다. 국제사회의 비난이 크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절규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이렇게 말한다. “장벽 건설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삶의 질의 문제지만, 이스라엘 국민들에게는 삶 자체의 문제다.”

 

목소리와 목소리가 부딪친다. 팽팽하다. 한 치도 양보하려 하지 않는다. 얼마나 더 많은 젊은이들이 생명을 잃어야 이 반목이 멈춰질까.

 

하느님께서 유대인들에게 한 약속을 떠올려 본다.

 

“나 이제 평화를 강물처럼 예루살렘에 끌어들이리라. 민족들의 평화를 개울처럼 쏟아져 들어오게 하리라.”(이사 66,12)

 

유대인들의 하느님은 한 번도 약속을 어긴 일이 없다.

 

[가톨릭신문, 2010년 6월 6일, 우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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