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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바오로 서간 해설12: 고통받는 시대를 산 의인들의 신앙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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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0-07-24 조회수2,821 추천수1

[유충희 신부의 '바오로 서간' 해설] (12) 고통받는 시대를 산 의인들의 신앙체험

 

 

B.C 539년 페르시아 제국의 임금 키루스(B.C 551~529년 통치)가 바빌론을 멸망시키고 이듬해인 B.C 538년에 칙령을 내려 바빌론에 살던 유다인들에게 귀향을 허락하고 성전 재건을 명하였다.

 

그러나 B.C 333년 마케도니아 출신 알렉산드로스 대왕(B.C 334~323년 통치)이 23세의 나이로 이수스 전투에서 페르시아의 임금 다리우스 3세(B.C 336~331년 통치)를 물리치고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그리고 이집트를 점령하여 그곳에 알렉산드리아 도시를 세웠다.

 

B.C 323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바빌론에서 33세의 나이로 갑자기 죽자 팔레스타인은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차지가 되었다가 B.C 198년 시리아의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쿠스 3세에 의해 정복되었다.

 

이 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활은 매우 어려워졌다. 특히 B.C 175년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쿠스 4세가 왕위에 올라 자신을 ‘신의 현현’이라는 의미에서 ‘에피파네스(Epiphanes)’라 칭하고 유다인들을 몹시 박해했다.

 

B.C 167년 안티오쿠스 4세는 유다교를 금지시키고 이 금령을 어기는 유다인들을 박해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루살렘 북서쪽 벳호른과 리따 사이에 있는 ‘모데인’신전에서 그리스신들에게 제사를 바치라고 명령하였다.

 

안티오쿠스 4세의 치세야말로 이스라엘 역사에서 난세 중의 난세였다. 이러한 안티오쿠스 4세의 폭정과 박해가 이스라엘의 묵시문학을 탄생시킨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런 난세를 겪으면서 백성들 사이에서 역사의 의미는 점점 불투명해지고 역사에 대한 신뢰는 회의로 바뀌게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이 살아 계시다면 어떻게 의인들이 고통을 당하고 악인들이 흥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의구심을 품게 되었다.

 

묵시문학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 하에서 탄생한 종교문학이다. 묵시문학도들은 역사를 비관적으로 보면서 현재의 역사가 불투명하고 비관적인 것은 악의 세력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묵시문학도들은 시간을 두 시대, 곧 ‘현재의 시대’와 ‘앞으로 올 시대’로 구분하고 현재의 시대는 악이 지배하는 암흑의 시대요, 앞으로 올 시대는 하느님이 다스릴 빛의 시대라고 말한다. 따라서 현재의 시대에는 의인들이 고통과 핍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의 모든 진행과정은 하느님께서 미리 만들어 놓은 시간표에 따라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역사는 하느님께서 이미 정해놓은 시간표에 따라 종말을 향해 나갈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올 빛의 시대는 역사의 연장선상 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역사가 완전히 끝나는 종말에 도래하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정해 놓으신 종말의 때가 오면 하느님께서 친히 무장의 모습으로 오셔서 악의 세력과 우주적인 전쟁을 치루어 승리함으로써 현재의 역사는 종말을 고하고 새 하늘과 새 땅의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묵시문학도들은 하느님께서 ‘정하신 때’가 언제인지는 분명히 밝힐 수 없지만 임박했다고 한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통스러워도 세상 끝 날에 한 몫을 차지하게 될 때까지 참고 기다리라는 것이다(다니 12, 13).

 

묵시문학은 이승의 역사에 절망하고 오로지 미래 종말에만 희망을 거는 문학으로 하느님의 침묵이 계속되고 의인들이 고통 받는 시대를 살아간 신앙인들의 신앙체험이라 하겠다.

 

묵시문학도들은 여러 가지 상징과 이미지들을 사용하여 역사의 퇴행과정, 종말전조, 인자내림의 시기와 장소, 부활과 심판의 양상, 구원받을 사람들의 수효와 행복, 멸망 받을 사람들의 불행 등을 자세히 설명한다.

 

그러나 묵시문학에 나타난 다양한 표현들은 초월적 희망의 상징적 서술이지 결코 역사적인 정보가 아니다. 묵시문학에 나타난 표현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상징적으로 언표한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묵시문학에 나타난 표현들에 관심을 갖기 보다는 그 표현들 가운데 숨겨져 있는 복음, 곧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익히고 실천하는 일에 관심을 쏟아야 할 것이다.

 

[가톨릭신문, 2008년 5월 4일, 유충희 신부(원주교구 백운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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