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바오로 서간 해설13: 종말에 죽은 자 부활하고 산 자 승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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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0-07-24 | 조회수3,061 | 추천수1 | |
[유충희 신부의 '바오로 서간' 해설] (13) 종말에 죽은 자 부활하고 산 자 승천
주님의 재림 : 1테살 4, 13~5, 11
사도 바오로가 코린토에서 선교하고 있을 때 제자 티모테오가 테살로니카 교회에서 코린토로 내려와 유다인들이 신자들을 설득하여 복음을 버리고 유다교로 돌아가게 만들려고 했지만 신자들이 외부의 협박과 회유에 굴하지 않고 믿음을 잘 지켰다는 기쁜 소식을 바오로에게 전하였다.
“그런데 이제 여러분에게 갔던 티모테오가 돌아와 여러분의 믿음과 사랑에 관한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또 여러분이 우리를 늘 좋게 생각하고, 우리가 여러분을 간절히 보고싶어 하듯이 여러분도 우리를 그렇게 보고 싶어 한다는 소식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래서 형제 여러분, 우리는 이 모든 재난과 환난 속에서도 여러분의 일로 격려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 때문입니다.”(1테살 3, 6~7)
하지만 테살로니카 교회는 아직 미성숙한 교회였기에 신자들 가운데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너무 집착하여 재림시기만 기다리며 무위도식 하는 이들이 있었는가 하면, 예수님 재림 전에 죽은 이들이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 때문에 혼란에 빠진 신자들도 있었다.
신자들은 예수님이 재림하시더라도 이미 죽은 이들은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몹시 낙담했던 것이다. 당시 신자들은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했다는 재림 임박사상에 젖어 있었으며 바오로 역시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자신이 살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1테살 4, 15).
이에 바오로는 신자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종말과 구원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심어주기 위해서 자신의 생각을 적어 보냈던 것이다.
바오로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언급하면서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믿다가 죽은 이들 역시 부활시키고 데려가신다고 하였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음을 우리는 믿습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죽은 이들을 그분과 함께 데려가실 것입니다.”(1테살 4, 14)
또한 바오로는 예수님 재림 전에 죽은 이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신자들에게 “주님의 재림 때까지 남아있게 될 우리 산 이들이 죽은 이들보다 앞서지는 않을 것입니다”(1테살 4, 15)라는 말씀으로 먼저 죽은 이들이 결코 손해를 보는 일이 없을 것임을 강조하였다.
종말 때 살아있는 이들이라고 해서 그 전에 죽은 이들보다 결코 나을 게 없다는 말씀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죽은 이들이 먼저 부활하여 그 때까지 살아있는 이들과 함께 구원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오로는 1테살 4, 16~17에서 종말에 예수님이 재림하는 모습을 묵시문학에 나오는 시나리오를 사용하여 묘사하였다.
“명령의 외침과 대천사의 목소리와 하느님의 나팔 소리가 울리면, 주님께서 친히 하늘에서 내려오실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이들이 다시 살아나고, 그 다음으로 그때까지 남아있게 될 우리 산 이들이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들려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맞이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늘 주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4, 16~17)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역사가 끝나는 종말 때 하느님께서 역사 종말 명령을 내리시면 대천사가 그 명령을 받아 복창하고 이어서 하늘의 나팔소리가 힘차게 울린다.
이때 주님께서 친히 구름에 싸여 하늘에서 내려오신다. 그러면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이들이 다시 살아나고 그 다음으로 그때까지 살아있는 신자들이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들려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주장하는 공중 들림인 휴거사건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사실 여기에 나오는 명령, 소리, 나팔, 구름 등은 유다교 묵시문학에서 종말과 심판을 묘사할 때 사용되는 표현들로 상징이요, 그림이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들을 수 있을 만큼 울려 퍼지는 나팔은 없다. 옛날 땅이 세상의 중심이고 그 위에 하늘이 있다고 생각했을 때 하늘에 올라가고 땅으로 내려오고 하는 표현이 가능했지 오늘날의 우주관에서는 위로 올라가고 아래로 내려온다는 표현은 성립하지 않는다.
[가톨릭신문, 2008년 5월 11일, 유충희 신부(원주교구 백운본당 주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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