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바오로 서간 해설30: 신령한 언어 현상을 성령 은사로 인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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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0-07-24 | 조회수3,382 | 추천수1 | |
[유충희 신부의 '바오로 서간' 해설] (30) 신령한 언어 현상을 성령 은사로 인정
성령과 은사(恩賜) : 1코린 12~14장
1) 코린토 교회의 은사 문제
성령의 은사는 오늘날 교회에서 큰 관심사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루기가 퍽 어려운 주제다. 그것은 은사가 교우들의 신앙체험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은사 중 개신교에서 방언이라고 칭하는 신령한 언어은사는 가톨릭교회에서도 급속히 퍼지고 있다. 교회 내에는 이 은사에 심취한 이들이 있는가하면, 반대로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사실 신령한 언어 현상은 코린토 교회에서 시작된 것이다. 코린토 교우들은 본디 이교(異敎)에서 그리스도교로 넘어온 개종자들이었다. 그들은 아폴로신전?아프로디테 신전에 드나들면서 제사를 드리던 사람들이었다.
특히 코린토만(灣) 하나를 끼고 코린토와 인접해 있는 델포이 아폴로 신전에서는 신탁(神託)이 행해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영험한 신탁을 받으려고 델포이 아폴로 신전에서 점을 치는 여자 점쟁이(Pythia)에게 몰려가곤 했다.
사도 바오로가 언급한 신령한 언어를 말하는 은사와 신령한 언어를 해석하는 은사를 살펴보면 델포이 신전의 신탁현상 및 그 신탁해석 현상과 매우 비슷하다. 이 델포이에서 행해진 신탁현상 및 신탁해석 현상이 코린토 교회에까지 흘러 들어와서 많은 혼란을 야기시켰던 것이다.
코린토 교우들은 델포이 신탁의 영향을 받아 신령한 언어를 말하는 은사에 탐닉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서 교회 내에 분열이 생겼다. 신령한 언어를 말하는 교우들은 우쭐대며 이를 구사하지 못하는 교우들을 깔보았다. 반면에 신령한 언어를 말하지 못하는 교우들은 열등감에 사로잡히기도 했지만 이를 행사하는 교우들을 미쳤다고 하면서 배척했다.
이런 분열로 인하여 코린토 교우들은 혼란을 겪게 되었고 마침내 바오로에게 이 은사에 대해서 질문을 했던 것이다. 1코린 12, 8~10에는 ‘은사목록’이, 12, 29~30에는 ‘교회직무목록’이 나온다. 하지만 교우들이 이 모든 은사들과 직무들에 대해서 질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어느 한 가지 은사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질문했을 것이다. 아마도 교회 공동체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은사, 곧 신령한 언어를 말하는 은사가 거론되었을 것이다. 바오로는 신령한 언어를 말하는 은사를 성령의 은사로 간주했으나 은사목록에서는 맨 끝에 열거했다(12, 10. 28).
그리고 바오로는 14장에서 신령한 언어 은사와 예언은사를 대조시켜 설명함으로써 신령한 언어 은사의 가치를 약화시켰다. 바오로는 14장에서 신령한 언어은사와 예언은사를 평가하고 그 사용에 대한 지침을 내렸다.
▲ 바오로가 신령한 언어를 말하는 은사에 대해 내린 평가는 다음과 같다.
① 신령한 언어는 성령의 작용으로 인해 행해지는 말이지만, 이성을 잃은 상태에서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다(14, 2. 14. 15. 16).
② 신령한 언어는 흡사 분명한 소리를 내지 못하는 악기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다(14, 7. 8).
③ 신령한 언어를 말하는 경우 이는 마치 뜻은 모르고 소리만 들리는 외국어와 같은 인상을 준다(14, 11. 21).
④ 신령한 언어는 그것을 말하는 개인에게는 유익할 수 있으나 공동체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초심자들이나 믿지 않는 이들이 교회에 와서 신령한 언어를 말하는 이들을 목격한다면 미쳤다고 할 것이다(14, 4. 16. 17. 19. 23).
▲ 바오로는 신령한 언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힌 후에 이 은사 사용에 대한 지침을 내렸다.
① 신령한 언어를 말할 경우, 한 번에 둘이나 많아야 셋이서 차례로 해야 한다(14, 27).
② 신령한 언어를 말할 경우, 해석하는 이가 없다면 신령한 언어를 말하는 이는 교회 안에서 잠자코 혼자서 하느님께만 말해야 한다(14, 28).
③ 신령한 언어를 말할 경우, 반드시 해석의 은사를 받은 이가 해석해야 한다(14, 27b. 28a).
④ 초심자들이나 믿지 않는 이들이 있을 경우 신령한 언어를 행사하지 말아야 한다(14, 23).
[가톨릭신문, 2008년 9월 14일, 유충희 신부(원주교구 백운본당 주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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