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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바오로 서간 해설52: 필리피 교우들의 영적 물적 도움 입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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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0-07-24 조회수2,989 추천수1

[유충희 신부의 '바오로 서간' 해설] (52) 필리피 교우들의 영적 · 물적 도움 입다

 

 

필리피에는 유다인들이 많이 살지 않아 회당이 없었기 때문에 유다인들은 주로 강가에 있는 기도처에 모이곤 했다.

 

바오로는 동족인 유다인들을 상대로 선교하기 위해서 안식일에 성문 밖 강가로 나가 그곳에 모여 있는 여자들에게 말씀을 전했는데, 터키 티아티라 시 출신 리디아라는 부인이 바오로의 설교를 듣고 그리스 땅에서 첫 번째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리디아는 자색 옷감 장수로 핏줄로는 이방인이었지만 이미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이었다(사도 16, 12~15). 리디아의 고향인 티아티라, 곧 지금의 아키사르는 자색 옷감 생산지로 유명했다. 당시 지중해 문화권에서는 자색 옷감이 매우 비쌌다고 한다.

 

바오로는 선교여행을 하면서 교우들의 물질적 도움을 사양하고 스스로 노동을 해서 선교비와 생활비를 마련했는데(1테살 2, 9 1코린 9, 4~18 사도 18, 3) 필리피 교우들의 물질적 도움만은 기꺼이 받아들였다(필리 4, 10~20 2코린 11, 9). 필리피 교우들 중 바오로를 돕는 데 앞장섰던 사람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리디아 부인이었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필리피 교우들 중 리디아 가족 말고도 바오로를 도와 열성적으로 복음을 전한 여교우들인 에우오디아와 신티케(필리 4, 2), 바오로가 자신의 협력자라고 부른 남교우 클레멘스(필리 4, 3), 필리피 교회의 대표이며 심부름꾼인 에파프로티토스(필리 2, 25 4, 18)가 눈에 띈다. 바오로는 필리피에서 선교하다가 시민들과 관청의 방해로 옥고를 치렀는데 그 기회에 간수와 그의 온 가족에게 세례를 줬다(사도 16, 16~34). 바오로는 3차 선교여행 중 57년 말경 에페소에서 코린토로 가는 길(사도 20, 1~2), 58년 코린토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과월절을 맞아(사도 20, 6) 필리피에 들렀다.

 

 

편지

 

바오로는 제3차 선교여행(53~58년)중 그리스도 신앙 때문에 에페소에서 감옥에 갇힌 적이 있었다(필리 1, 7·13·14·17). 이 감옥이 어느 도시에 있는지에 관해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나 에페소 감옥이라는 설이 학계의 통설이다. 바오로는 감옥에서 석방돼 필리피 교회를 방문할 생각을 가졌지만(필리 2, 24) 살아서 출옥할 가망이 보이지 않았다(필리 1, 12~26 2코린 1, 8~9). 바오로는 수감 중 필리피 교우들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다. 필리피 교우들이 바오로의 수감소식을 듣고 옥중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마련해 에파프로티토스를 시켜 바오로에게 전달하고 옥바라지를 하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에파프로티토스가 바오로와 함께 지내다 향수병과 중병을 앓게 되자 바오로는 서둘러 그를 필리피로 돌려보내면서 편지를 써 보냈다(필리 2, 25~30). 이것이 곧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으로 옥중서간 또는 수인서간이라 불린다.

 

바오로는 감옥에서 필리피 교우들로부터 받은 영적·물적 도움에 감사하고 에파프로티토스의 쾌유 소식을 전하기 위해 편지를 써서 필리피 교회로 보낸 것이다(필리 2 ,25~30 4, 10~20). 필리피서가 바오로의 친서임에는 분명하나 이 편지가 한 통의 편지가 아니고 두 통의 편지를 하나의 편지로 모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적지 않다. 필리피서를 두 통의 편지로 보는 이들은 필리피서를 감사의 편지(1, 1~3, 1ㄱ 4, 2~23)와 이단경고 편지(3, 1ㄴ~4, 1)로 나누는데, 그것은 3장 1~2절사이의 연결이 내용상 매끄럽지 못하고 감사편지와 이단경고 편지의 내용 및 문체가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바오로는 에페소 감옥에서 필리피서를 쓰면서 죽어도 여한이 없지만 교우들의 형편을 생각하면 좀 더 살아서 그들을 돌보고 싶다는 심경을 토로한다. “사실 나에게는 삶이 곧 그리스도이며 죽는 것이 이득입니다. 그러나 내가 육신을 입고 살아야 한다면, 나에게는 그것도 보람된 일입니다. 그래서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이 둘 사이에 끼여 있습니다. 나의 바람은 이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 편이 훨씬 낫습니다. 그러나 내가 육신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 여러분에게는 더 필요합니다”(필리 1, 21~24).

 

[가톨릭신문, 2009년 3월 1일, 유충희 신부(원주교구 백운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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