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바오로 서간 해설59: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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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0-07-24 | 조회수3,197 | 추천수1 | |
[유충희 신부의 '바오로 서간' 해설] (59)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
바오로가 언급한 자유는 다음과 같은 자유다.
첫째,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신이 아닌 세상의 정령들 아래에서 종살이를 하던 삶으로부터의 자유다(갈라 4, 3·8·10). 이는 우상숭배와 미신으로부터의 자유를 뜻한다.
둘째,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죄로부터의 자유다(갈라 5, 19-21). 바오로는 5장 19-21절에서 죄의 목록을 길게 언급한다. 즉 불륜, 더러움, 방탕, 우상숭배, 마술, 적개심, 분쟁, 시기, 격분, 이기심, 분열, 질투, 만취, 흥청대는 술판, 그밖에 이와 비슷한 것들이다. 바오로는 이런 행위들이야말로 저급한 육체적인 욕망의 지배 하에서 종살이를 하는 이들의 삶이라고 말한다.
셋째,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율법으로부터의 자유이다(갈라 3, 13 4, 5). 바오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기 이전에 인간은 율법의 속박 아래 있었다고 하면서, 진정한 자유는 인간이 이러한 종교적 율법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바로 율법의 끝이고 완성이기 때문이라고 한다(로마 10, 4).
넷째,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다(갈라 3, 20 로마 7, 5·6 8, 2). 인간은 누구나 죽음의 멍에에 종속되어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죽음으로부터 해방되어 진정한 자유와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사도 바오로가 언급한 그리스도인의 자유 가운데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는 가장 근본적인 자유라 하겠다.
바오로는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얻게 된 자유를 육을 위하는 구실로 삼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 섬기는 일에 사용하라고 권면한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자유롭게 되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다만 그 자유를 육을 위하는 구실로 삼지 마십시오. 오히려 사랑으로 서로 섬기십시오”(갈라 5, 13).
그리스도인이 자유를 자신이나 이웃을 위한 삶으로 인식해야 하는 이유는 율법의 완성이 곧 사랑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실 모든 율법은 한 계명으로 요약됩니다. 곧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 하신 계명입니다”(갈라 5, 14).
바오로는 그리스도인은 이미 이 자유를 누리기 시작했으며 모든 피조물 역시 마침내는 멸망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를 얻을 것이라고 선언한다.
“사실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피조물도 멸망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를 얻을 것입니다”(로마 8, 19·21).
그런데 이러한 자유는 인간 스스로 얻을 수 없고 오직 ‘하느님의 영’과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으로 말미암아 누릴 수 있다고 한다(2코린 3, 17; 로마 8, 2·9·11).
그리스도의 십자가 : 갈라 6, 11-18
바오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갈라 6, 14)라고 선언한다. 바오로는 과거에는 유다교 신자로서 율법을 공부하고 실천하는 일에 앞장섰던 바리사이였다.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은 나는 이스라엘 민족으로 벤야민 지파 출신이고, 히브리 사람에게서 태어난 히브리 사람이며, 율법으로 말하면 바리사이입니다”(필리 3, 5).
그러나 바오로는 그리스도를 알고 나서는 이 모든 것을 자랑으로도 유익한 것으로도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이런 것들을 “해로운 것”으로 여겼다고 한다(필리 3 ,7-8). 바오로는 자신이 이롭게 여기던 것들을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된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십자가에 못 박혔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갈라 6, 14).
[가톨릭신문, 2009년 4월 19일, 유충희 신부(원주교구 백운본당 주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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