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바오로 서간 해설60: 십자가를 통해 드러난 그리스도의 사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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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0-07-24 | 조회수3,048 | 추천수1 | |
[유충희 신부의 '바오로 서간' 해설] (60) 십자가를 통해 드러난 그리스도의 사랑
“나는 하느님을 위하여 살려고, 율법과 관련해서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갈라 2, 19).
바오로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십자가 사건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떠나서는 구원을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율법의 저주 아래서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었는데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써 인간을 “속량하셨다”(갈라 3, 13)고 바오로는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십자가 사건은 “멸망할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사건이나 구원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인 것이다”(1코린 1, 18) . 바오로는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으로 소개한다”(갈라 3, 1). 그는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지 않는다고 하면서(갈라 6, 14) 십자가 사건은 자신을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이라고 말한다(갈라 1, 4 2, 20). 그는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것은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믿는 믿음임을 일깨워 주면서(갈라 2, 16) 이웃 사랑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갈라 5, 6·13·14 6, 2).
바오로는 갈라티아서를 마감하면서 다시 한 번 적대자들의 의도를 공격하고(6, 12·13) 할례가 아닌 그리스도의 십자가에만 헌신하라고 권면한다. 왜냐하면 할례와 율법은 아무 의미가 없고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6, 14·15). 진정한 이스라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따라서 걷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유다인이나 이방인 사이에 차별을 두지 않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인간과 화해한 하느님의 사랑을 믿음으로 받아들인다. 바오로는 스스로 고통을 당했으며, 그로써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할 수 있었다고 하면서(6, 17) 마지막으로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이 여러분의 영과 함께 하기를 빕니다”라는 축복으로써 편지를 끝맺는다.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 편지
테살로니카 1서와는 달리 테살로니카 2서는 19세기 초부터 학자들에 의해 바오로가 직접 쓴 서간이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왔다. 물론 테살로니카 2서는 바오로가 직접 쓴 친서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많다. 휴고 그로티우스(Hugo Grotius)와 맨슨(T.W.Monson) 같은 학자는 일찍부터 테살로니카 2서가 사도 바오로의 친서이며 심지어 테살로니카 1서보다 먼저 기록되었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아직도 두 서간 사이에 나타나는 구조와 내용, 어휘와 문체 그리고 신학적인 내용 등의 차이점들을 들어 테살로니카 2서는 바오로가 직접 쓴 서간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선 테살로니카 1서에서는 바오로가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을 강조하는데(4,15·17 5, 1-5), 반면에 테살로니카 2서(2, 1-10)에서는 종말이 오기 전에 먼저 일련의 사건들, 곧 배교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무법자가 나타난다고 함으로써 임박한 종말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야 온다고 한다. 또한 테살로니카 1서에서 사용된 “하느님”이라는 표현이 테살로니카 2서에서는 “주님”으로 바뀌고 있다(2테살 2, 13·16 3, 1·5·16). 그리고 테살로니카 1서 1장 4절의 “하느님께 사랑받는”이라는 말씀이 테살로니카 2서 2장 13절에서는 “주님께 사랑받는”으로 바뀌고 있는데 이는 바오로 시대 이후에 나타나는 전례적인 표현을 반영하는 것이라 하겠다. 더욱 두드러진 차이는 테살로니카 1서에 나타나는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주제가 테살로니카 2서에는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령”이라는 낱말 역시 테살로니카 2서에는 거의 나타나고 있지 않다. 한편 테살로니카 3장 17절에 나오는 “이 인사말은 나 바오로가 직접 씁니다. 이것이 내 모든 편지의 표지입니다”라는 표현 역시 테살로니카 2서의 바오로 친저성을 의심케 한다. 왜냐하면 여기에 나오는 “모든 편지”라는 표현은 바오로가 테살로니카 2서를 쓸 때 이미 여러 통의 편지를 썼다는 의미인데, 사실 바오로의 서간들 가운데 테살로니카 1서가 가장 먼저 쓰인 것을 감안한다면 이 표현은 어딘가 어색하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가톨릭신문, 2009년 4월 26일, 유충희 신부(원주교구 백운본당 주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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