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프롤로그: 복음의 시작(마르 1,1-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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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0-07-25 | 조회수3,304 | 추천수1 | |
[최혜영 수녀의 성경말씀나누기] 마르코 복음서 (5)
I. 프롤로그: 복음의 시작 (마르 1, 1~13)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1, 1~8 세례자 요한의 활약)
인생에서 삶을 바꿔 놓을 만큼 획기적인 사건이나 깨달음의 순간을 체험하고 나면 이전과는 보는 눈이 달라진다. 똑같은 사건도 의미는 사뭇 다르다. 마르코 복음사가(공동체)에게도 예수님에 대한 깨달음은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바꿔 놓았다. 천지창조에 비견할 만한 새로운 ‘시작’(창세 1, 1)이다. 복음서 안에는 구약 성서에서 인용된 대목들이 많이 나오는데, 예수 사건은 그들이 이제까지 알고 있던 성경의 내용들을 깨달을 수 있는 명오를 가져왔고, 또 한편 성경의 말씀들은 한 마디 한 마디 예수 사건을 풀이하는 잣대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이스라엘 공동체가 간직하고 있던 모든 역사의 기억들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고 ‘기름 부음을 받은 메시아,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에 대한 체험에 의해 새로 읽혀진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이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도록 마련하신 세례자 요한에 대한 예언이었다고 확신하였다.
세례자 요한은 서기 27년경 요르단강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상대로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베풀다가 헤로데 안티파스에게 살해되는데(6, 16~29), 그를 따르던 무리들이 꽤 많아 서기 150년경까지는 세례자교가 번창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예수의 제자들은 세례자 요한을 이스라엘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구원의 시대를 준비하는 예언자로 이해한다. 낙타털 옷과 허리의 가죽 띠, 메뚜기와 들꿀의 소박한 식사는 영낙없는 예언자의 모습이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8절) 하느님의 통치가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저마다 맡은 바가 있다.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것이 없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사자(使者)로서 맡겨진 일에 충실하면 그만이다. 참된 겸손은 자신의 사명을 알아 “예” 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으면 된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의 활동을 위해 멋진 무대를 준비한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1, 9~11 세례)
새 역사의 여명이 밝아오는 ‘그 무렵에’ 예수님께서 요르단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다. 요르단강은 약속의 땅에 들어서기 위해 건너야했던 출애급의 여정을 기억하게 한다. 이스라엘 시대에서 예수님의 시대로 넘어서는 경계에 서 있다.
마르코는 예수님의 메시아로서의 준비를 세례 사건과 유혹 사건에서 시작한다. 예수님의 내밀한 신체험이 공적으로 장엄하게 소개된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셨을 때,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당신께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10절)고 한다. 이제 천지가 상통하여 하느님과 인간이 서로 통교하는 순간이다(에제 1, 1; 요한 1, 51).
“아, 당신께서 하늘을 찢고 내려오신다면!”(이사 63, 19)하던 이스라엘 민족의 종말론적 염원이 실현될 것이다. 이 염원은 예수님께서 큰 소리를 지르며 숨을 거두셨을 때,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갈래로 찢어지며 하늘과 땅이 하나로 만나고, 유다인과 이방인의 경계가 무너지는 것으로 완성될 것이다(마르 15, 38).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내려오셨다”는 표현에서 어둠의 심연을 감싸셨던 ‘하느님의 영’(창세 1, 2)과 노아의 홍수 때 등장했던 비둘기(창세 8, 8~12)를 기억하게 한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1, 12~13 유혹)
성령께서는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을 광야로 내보내신다. 광야는 모세나 엘리야처럼 하느님의 명을 받은 이들이 하느님의 계시를 받는 장소이기도 하고 통과의례처럼 거쳐야 하는 시험의 장소이기도 하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유혹자인 사탄에게 흔들리는 분이 아니시다. 예수님께서는 사십일 동안 계속하여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지만,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며 천사들의 시중을 받았다고 한다. 들짐승들은 광야의 적막함을 느끼게 하지만, 첫 번째 창조(창세 1, 28; 2, 19~20)와, 새로운 창조의 희망을 동시에 보여준다. 이상적인 메시아 시대가 오면 사나운 들짐승들이 유순하게 되어 사람들과 함께 평화로이 지내리라는 기대가 있었던 것이다(이사 11, 6~8; 65, 25).
이제 메시아의 길을 떠날 예수님의 여행 채비가 끝났다. 우리도 세례 때의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여 예수님의 제자답게 여행 채비를 갖추자. 우리가 따르고자 하는 그분은 사탄의 유혹에 흔들리는 분이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이시다.
[가톨릭신문, 2006년 2월 5일, 최혜영 수녀(성심수녀회, 가톨릭대 종교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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