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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지혜: 지혜문학의 문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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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0-07-25 조회수3,358 추천수1

[김혜윤 수녀의 성서말씀나누기]  지혜 (3) : 지혜문학의 문체

 

 

대조된 구절통해 삶의 진리 역설

 

『당신이 화장실에서 사색에 잠겨 있는 동안, 문밖의 다른 누군가는 사색이 되어간다』

 

얼마 전 학생들의 과제물을 검사하면서 발견한, 재미있으면서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던 문구이다. 화장실이 배경인 농담치고는 품위(?)가 있었으며, 「사색」이라는 말이 지니는 이중적인 의미를 통해 우리 안의 모순을 신랄하게 꼬집은 점에서 탁월함이 돋보였다. 자신에게 아무리 고상하고 좋은 「사색」(思索)이라 할지라도, 때로는 그러한 나의 수준높음(?)이 타인에게는 「사색」(死色)이 될 정도의 고통과 짜증일 수 있다는 재치와 경쾌함도 기발했다.

 

이 구절의 소개로 이 지면을 시작한 이유는 물론 그 내용이 재미있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구절이 지혜문학 작품의 기본적 문체를 현대적 느낌으로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서로 대조적으로 병치된 두 구절을 통해 삶의 진리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제 우리는 「지혜문학」이라고, 혹은 「지혜문학적」이라고 규정하게 하는 문학적 단초는 무엇인지, 그 문체에 주목해보고자 한다.

 

 

지혜문학 작품들 두 가지 유형

 

지혜문학 작품들을 살펴보면, 통상 다음 두 가지 문체로 구분됨을 알 수 있다.

 

1. 사회 과학적, 실용적 지혜

 

지혜문학 작품의 대표적 문체는 「속담 지혜」(Proverbial Wisdom)라고 하는 것으로, 경험에서 얻은 지혜를 요약하여 짧은 형태로 서술하는 기법을 말한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삶의 지혜들을 짧고 간결한 문체에 담아 표현해왔고, 우리는 이를 「격언」 혹은 「속담」이라 불러왔다. 이 격언-속담들은 고대지식인들에게 각광을 받으며 수집되기 시작하였고, 후에는 책으로까지 엮어지게 되면서, 각 왕국의 최고의 인텔리들을 양성하는데 참고서가 되기도 하였다. 특별히 고대사회의 학문은 주로 논쟁과 담론을 통해 발달하였는데 이러한 논쟁에서 단 번에 상대의 논의를 격침시킬 수 있는 간명하고 응축된 구절들에 지식인들은 관심을 모았고, 이는 「속담 지혜」가 고대 근동의 첨단 학문 기술로 부상하게 되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동양의 고사성어 역시 이와 비슷한 배경을 가지고 발달한 산물이었다.

 

이러한 「속담 지혜 화법」은 잠언 10~31장에서 쉽게 발견된다.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병행 비교 화법」으로 주로 동사를 포함하지 않은 문장을 단순하게 병렬시켜 놓고, 이러한 대비를 통해 강한 역설을 표현하는 점이라 하겠다. 대표적 예를 잠깐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다.

 

『여름에 추수하는 사람, 현명한 아들

추수기간에 자는 사람, 수치스러운 아들』(잠언 10, 5).

 

2. 영적, 철학적 지혜

 

지혜문학 작품에서 발견되는 또 다른 문체는 「사색적 지혜」(contem plative or speculative Wisdom)라는 것으로, 인간 존재에 깊이 파고드는 고통의 문제를 독백(monologue), 대화(dialogue), 평론(essays) 등의 양식으로 서술한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 지혜문학 유형들을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의미의 「철학적」 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 철학적 분석보다는 실제적이고 경험적인 차원에서 인간과 삶을 풀어간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욥기를 들 수 있다.

 

따뜻한 농담, 생산적인 풍자, 이런 기발한 문체들은 온갖 심각한 이데올로기의 홍수에 지쳐있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강력하게 어필할 수 있는 길일 수 있다. 그저 박제된 영웅주의를 조장하는 관념과 지식이라면 그것이 아무리 고급화된 이론이라 해도 죽은 지식에 불과하다.

 

이 한계에서 과감히 벗어나 삶의 진정한 정체성을 체험의 언어로 표현하고자 한 지혜문학의 문체는 이론이나 공식이 놓치기 쉬운 생생한 삶의 역동성을 풍요롭게 전달해 주고 있다고 하겠다.

 

[가톨릭신문, 2003년 7월 13일, 김혜윤 수녀(미리내 성모성심수녀회, 광주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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