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지혜운동의 시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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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0-07-25 | 조회수3,538 | 추천수1 | |
[김혜윤 수녀의 성서말씀나누기] 지혜 (4-6) : 지혜운동의 시작(1-3)
깨달음 통해 나타나는 지혜
지난주에 우리는 지혜문학이 가지는 문체적 특징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특별히 속담과 격언은 간결하지만 그 안에 매우 다양한 삶의 역설과 진실을 내장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지혜문학의 대표적 문체가 됨을 설명하기도 하였다. 이번 주에는 그러한 지혜문학의 문체가 어디에서 기원하였는지, 그 기원에 주목해 보기로 한다.
성서 연구가 가지는 공통 일반의 현상이지만, 지혜문학 역시 그 기원을 결정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지혜로운 삶을 살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 누구나가 가지는 본연의 욕구이고, 따라서 지혜적 움직임(지혜운동)은 인류가 시작된 태초부터 있어왔다고 해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지면에서 다루는 「지혜운동의 시작」이란 지혜로운 삶의 추구라는 차원이 아니라, 지혜문학적 문체, 그러한 정신 사조, 완성된 작품들의 기원에 대한 물음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1) 궁중 지혜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구약성서 지혜문학의 기원을 「여유로운 삶과 자리」라는 환경에서 찾고자 하였다. 너무 삶에 지쳐있을 때, 경제적 파탄, 무질서와 폭력, 전쟁, 고통, 기아, 질병 같은 상황 속에서는 삶의 지혜를 고즈넉이 숙고하고 그것을 담론 형식으로 주고받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저번 지면에서도 지혜문학적 문체의 발달은 노예나 농노에게 생업의 문제를 이양한 귀족-기득권 층에 의해 주도되었음을 밝힌 바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학자들이 모색한 가장 여유로운 곳, 시간의 여유, 마음의 여유, 경제적 여유를 확보하고 있어 삶과 우주의 진리를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자리라고 여긴 곳은 바로 「고대 궁중」이었다. 고대 사회 체제 안에서 궁중은 1) 가장 여유롭고, 안전이 보장된 곳이었으며 2) 인재, 지혜로운 자를 가장 필요로 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지혜운동이 전개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셈이다.
2) 가정 지혜
다른 쪽의 의견은 지혜문학의 시작을 「가정 공동체」로 보고 있다.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가장 먼저, 그리고 근본적으로 대하게 되는 곳은 가정이라는 테두리안에서이다. 따라서 원활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여러 기술들의 수록이라 할 수 있는 대부분의 지혜문학 작품들은 가정에서부터 기원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 이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적지 않은 지혜문학 작품들이 『내 아들아』라는 호격으로 시작된다는 데 있다(예, 잠언 1~9장).
이러한 작품은 이집트의 지혜문학 안에서도 자주 발견되는데, 여러 「세바이트」(sebayite, 이집트의 지혜적 내용을 모아 책으로 묶은 규범집)안에 보면 『누가 그의 아들 누구에게 저술하는 교훈의 시작』이라는 양식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지혜문학 연구의 대가라고 할 수 있는 롤랑 머피(R. Murphy) 역시, 세상사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지혜라면 이는 가정에서 부모들이 자녀에게 전하는 내용, 즉 삶은 어떤 것이며 그것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할 것인지를 통해 전달되었다고 본다.
지혜는 언제나 깨달음을 통해서 온다. 여러 깨달음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아마도 「자신에 대한 앎」일 것이다. 직위, 재력, 미모, 건강 등 현재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요인들을 점검하는 것도 물론 자신에 대한 앎이겠지만, 그런 것들이 때론 내게 「허물」이며, 언제 상실될 지 모를 가변적인 것임을 깨닫는 것 역시 자신에 대한 앎일 것이다.
아무튼 이 모든 허물을 떠난 「본연의 나」를 가장 잘 인식하게 하는 곳은 가정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가족은 내가 누구이며 누구의 딸, 아들인지를 「기억하게」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가정 지혜 기원설은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가진다고 보여진다.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이 많아지는 휴가철이다. 올 휴가는 내가 누구인지, 누구의 아내이며, 또 누구의 아빠인지를 깨닫는, 그리하여 삶의 조잡한 허물들로부터 온전히 풀려나 참된 지혜를 발견하게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가톨릭신문, 2003년 7월 20일, 김혜윤 수녀(미리내 성모성심수녀회, 광주가톨릭대 교수)]
하느님 지혜 개입돼야 ‘참 지혜’라 할 수 있어
시도해 보지 않고는 결코 발견할 수 없는 것, 그것이 바로 「지혜」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곳에는 보물이 없다」는 정보는 지도를 확인해 가며 그 곳을 샅샅이 찾아본 사람만이 갖게되는 지혜이다. 「그는 나쁜 사람」이라는 평가는 수고스럽게 그를 오랫동안 이해하고 사랑하려했던 사람만이 내릴 수 있는 명제이다. 이렇듯 지혜는 정직한 시간과 생명을 바침으로써만 확인될 수 있는 것이라는 이 진리를 깨닫는 것부터 지혜는 시작되는게 아닐는지….
지난주부터 지혜운동이 시작된 자리에 대하여 살펴보고 있다. 「궁중」 혹은 「가정」이 지혜문학을 배출하게 한 원상일 것이라는 가설들에 이어, 이번 주에는 인류 역사 상 가장 지혜로운 자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솔로몬과 지혜운동의 발전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솔로몬과 궁중지혜
솔로몬을 묘사하는 가장 대표적 키워드는 「지혜의 대왕」일 것이다. 이는 그의 개인적 지혜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가 시행했던 「지혜 정책」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솔로몬의 열정적인 「지혜(문화) 장려책」은 지난주에 언급한 바 있는 「궁중지혜」와 긴밀히 관련되어 있다. 우리는 여기서 그가 그토록 적극적으로 문예정책을 추진할 수밖에 없던 경위는 무엇이었는지, 화려하기만 했던 그의 영화 속에 감추어졌던 그의 정신적 갈증은 무엇이었는지, 그 속사정에 잠시 주목하고자 한다.
솔로몬의 지혜정책
솔로몬은 운이 좋은 인물이었다. 아버지 다윗으로부터 그 어느 때보다 안전하고 강력한 통일왕국을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기운 세고 카리스마 넘치는 아버지를 둔 탓에 별 걱정 없이 곱게 자란 솔로몬은 왕이 되자 선왕이 이루어 놓은 왕조의 분위기(거칠고 싸움 잘하는)를 고상하고 품위 있는 것으로 바꾸기에 전력을 다한다. 솔로몬은 왕권의 정신적 내실을 다지기 위해 현자(賢者)들을 대거 기용한다. 그의 궁궐에 있었다는 「왕실 학교」(일종의 엘리트 양성기관)는 이러한 인재 등용을 위한 제도적 장치였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솔로몬은 대규모 건축 사업에 착수한다. 주변국에 존재하는 그 어떤 건물보다 훨씬 큰집을 지어 왕조의 위상과 힘을 만천하에 공개하겠다는 의지였다. 아무튼 7년에 걸친 성전 건설과 13년에 걸친 작업으로 거대한 궁전 건축이 완성되는데, 1000여명에 달하는 궁전 여인들(후궁과 첩들)과 그 몇 배에 달할 시종들이 함께 살았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그 궁전의 규모를 가히 상상할만하다.
솔로몬의 지혜
그는 3000가지의 잠언, 1005편의 노래, 레바논의 백향목으로부터 벽에 붙어사는 우슬초에 이르기까지, 모든 초목과, 짐승들의 이름(조류, 물고기들)을 논할 정도로 뛰어난 백과 사전적 지식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명성은 주변국에까지 퍼져, 급기야는 이웃나라 여왕까지 찾아와 그의 지식을 확인할 정도였다. 이러한 솔로몬의 지혜적 소양은 지혜 장려책으로 마련된 궁궐의 대규모 도서관 덕택이었다. 솔론몬에 의해 등용된 인재들은 대대적인 문서작업에 들어가게 되고, 이들에 의해 야휘스트계 문서들과 몇몇 성서 전승들이 제작된다.
이 때문에 부르거만 같은 학자는 창세기 에덴 이야기(2~3장)와 다윗 계승설화(2사무 9, 20; 1열왕 1~2) 등을 지혜운동의 산물로 보고있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해본다. 지혜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솔로몬이었지만, 그가 정녕 지혜로웠다면, 그의 죽음 이후 쿠데타로 즉시 양분된 이스라엘의 부실함은 누구의 탓으로 돌려져야 하는 건가? 그를 「지혜」롭다고 하는 이유는 어쩌면, 모든 「지혜」정책을 다 써보아도 그 안에서 하느님의 「지혜」가 부재 한다면 그것은 결코 「지혜」가 될 수 없다는 「지혜」를 깨달았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가톨릭신문, 2003년 7월 27일, 김혜윤 수녀(미리내 성모성심수녀회, 광주가톨릭대 교수)]
“야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
『참말 주님께서 여기 계셨는데도 내가 모르고 있었구나』(창세 28, 16). 원고를 준비하던 중 만난 성서 구절이다. 참된 지혜는 「자각과 기억」에서부터 시작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기억」하고, 지금 그런 나와 함께 계시는 주님을 「자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두 주에 걸쳐 지혜운동의 시작에 주목해 왔다. 「궁중」, 혹은 「가정」이 지혜문학 태동의 자리가 될 수 있음을 살펴보았고, 이스라엘 지혜운동의 제도적 형성은 솔로몬의 지혜정책에 의존한 것임을 살펴보았다. 이제 우리는 이스라엘 밖으로 관심을 옮겨보고자 한다.
이스라엘의 지혜가 예루살렘 왕실학교에 근거를 두고 발전한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 학교의 자료들 안에는 당시 외국에 만연해 있던 지혜 전통이 통합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집트의 지혜
이집트의 「지혜 문화」란 수천 년 내려온 이집트의 거대한 관료체제를 움직여온 단초였다. 우리나라의 행정고시, 사법고시, 각종 고시를 거친 인재들이 정부 핵심 부서에 스카우트 되듯이, 이집트 궁정학교는 인재를 등용하는 가장 기본적 관문이었던 것이다. 이들이 궁중학교에서 배우게되는 문헌들은 약 2500년 간에 걸쳐 전해져 온, 가르침과 교훈을 수록한 작품들이었다. 일반적으로 「세바이트」(규범집, instruction)이라고 불리는 이 교재들로는, 현재 파타호테프의 교훈, 아멘엠오페트의 교훈, 메리카레의 교훈 등이 전해져 오고 있고, 모두 구약 잠언서와 유사한 근면, 정직, 책임성, 자기 통제력, 시의 적절한 언어와 행동, 상관, 여인, 친구와의 관계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 옛 지식인들이 보던 서적들(사서삼경을 비롯한)이 담고 있던 책들의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이 같은 이집트의 지혜문학은 솔로몬 시대에 이스라엘 궁중에 유입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잠언 22, 17~24, 22은 아멘엠오페트의 30개 교훈을 반영하고 있다.
바빌론의 지혜
이집트의 경우처럼 메소포타미아의 지혜운동도 기원전 3000년경에 이미 만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훈-교양적 내용을 주축으로 삼고 있던 이집트의 지혜문학과는 달리, 메소포타미아의 지혜 전통은 마술적-주술적 행위와 관련되어 있었다. 즉, 바빌론의 학자(지혜자)들은 제의적-마술적 지식의 전문인들이었던 것인데, 이는 당시 엘리트들의 사유방식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이 추구한 가장 절대적 지혜는 신의 지혜였기 때문이다. 즉 신의 지혜를 얻는 것 보다 더 확실한 지혜를 터득하는 것은 없으며, 이러한 신의 지혜는 「주술」이라는 기술을 통해 인간에게 통교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이스라엘의 지혜운동이 이러한 외국 지혜 전통과 어떤 차별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물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특징은 그 안에서 뿌리박고 있던 강한 「종교적 신념」이라 하겠다. 「야훼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잠언 1, 7)이자 「지혜의 근본」(잠언 2, 6)이라는 것이 이스라엘 지혜의 가장 기본적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즉, 다신교적 사고를 갖고 있던 외국의 지혜운동을 이스라엘은 「야훼이즘」이라는 그들 고유의 신앙으로 용해시켜 토착화하였던 것이다. 인간이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을 때, 온갖 대상과 세계 자체를 이해할 수 있는 바른 지혜를 소유하게 된다는 것, 이스라엘이 추구한 지혜의 참 모습이었다.
『자기가 물 속에서 헤엄치고 있다는 것을 아는 물고기는 드물다』. 의식적으로 자신의 현재를 기억하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단적으로 제시하여주는 문장이다. 이처럼 지혜(하느님)는 물, 공기처럼 우리 주변에 늘 「드러나」 있는 「친숙한」 것이지만, 이를 자각하고 기억하지 못하는 자에게는 언제나 「드러나 있지 않은」, 「낯선」 것일 뿐일지도 모른다. [가톨릭신문, 2003년 8월 3일, 김혜윤 수녀(미리내 성모성심수녀회, 광주가톨릭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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