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미사] 온 마음을 모아 바치는 봉헌의 노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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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4-10-29 | 조회수3,849 | 추천수0 | |
온 마음을 모아 바치는 봉헌의 노래
빨래를 해보았는가? 요즈음은 대부분 세탁기로 빨래를 한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것을 보면, 신기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세탁할 옷가지와 물과 세제를 넣고 돌리면 옷가지들이 한가운데로 모인다. 신형 세탁기는 가운데로 모이지 않게 만든 것도 있다고 한다. 옷가지들이 ’가운데로 모이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구심력 때문이다. 또 탈수를 시킬 때 옷가지들이 가장자리로 흩어지면서 물기는 모두 원통 밖으로 튀어나간다. 세탁물의 수분이 바깥으로 튀어나가듯이 ’밖으로 확산되는 현상’은 원심력 때문이다.
세탁기를 돌리는 데에도 이렇게 과학적인 원리가 적용된다. 변화는 운동을 필요로 한다. 움직이지 않고는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구심력과 원심력이라는 물리적인 원리가 적용된 ’움직임’이 ’세탁’이라는 변화를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발전 또는 성장이라는 변화를 위해서도 어떤 ’움직임’이 필요하다. 우리 신앙이 성장하고 교회가 발전하는 데도 이처럼 구심력과 원심력의 두 방향에 의한 운동이 있다.
① 교회는 먼저 믿는 이들이 모여야 한다. 모여서 친교를 나눈다. 친교는 공동체의 모습이다. 교회가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이때, ’친교를 나누는 공동체’란 말은 신약성서에서 ’Koinonia’라고 한다. 함께(koi) 모인 것(nonia)이란 뜻이다. 교회 모습의 구심적 움직임이다.
② 교회는 또한 나누어야 한다. 확산되고 흩어져야 한다.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 필요한 이들에게 모든 것이 되어주고 영향을 미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곧 ’봉사하는 공동체’이다. 성서에서 이것을 가리켜 ’Dia-konia’라 한다. 확산하여(dia) 나눈 것(konia)이란 뜻이다. 교회 모습의 원심적 움직임이다.
이렇게 교회의 모이는 모습과 확산하는 모습, 두 가지 방향의 운동은 미사 전례 안에서도 잘 드러난다. 성찬 전례를 시작하는 예물 준비, 특히 봉헌 예식에서 이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느님의 백성이 모여서 주님의 말씀을 들었고 화답하였다(말씀 전례). 성찬 전례를 시작하면서 예물을 준비한다. 예물을 준비하는 것은 봉헌의 의미도 있지만, 식탁을 차리고 준비하는 것이 원래의 의미이다.
그렇다면 ’예물 준비’에서 ’예물 봉헌’의 의미가 더 강조되었을까? 처음에는 그리스도께서 최후 만찬에서 행하셨듯이 ’빵과 잔을 들고’ 감사기도를 드리신 것에 따라, 빵과 포도주와 물을 제대로 가져갔던 동작이었다.
그러다가 4세기경부터는 교우들이 많아지고, ① 빵과 포도주뿐 아니라 ② 가난한 이들을 돕고 ③ 성직자 생활 부양과 교회 운영에 필요한 예물을 갖고 오게 되었다. 그래서 예물 준비 행렬이 길어지고 봉헌의 의미가 점차 강조되기 시작했다.
11세기 이후부터는 화폐제도가 발달하여 예물 봉헌이 헌금으로 바뀌고 심리적인 이유와 신학자들의 가르침에 따라 ’예물 준비’를 ’제물 봉헌 행사’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17세기에는 아예 ’봉헌 예식’이라고 불렀다.
그렇다고 예물 준비의 뜻만 있고 ’봉헌’의 의미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예물을 준비하면서 바치는 제물은 교우들이 봉헌하는 예물이 아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이다. 그것은 뒤따라오는 감사기도에서 십자가의 제물로 축성되어 ’봉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물 준비에서 신자 각자의 위치에서는 ’봉헌을 준비하고 참여’하는 것이다.
미사에 참석한 교우들은 ’예물 준비’ 예식에서 예물(헌금)을 드림으로써 ’봉헌하게 될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자기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것을 나타낸다. 봉헌은 자기 자신을 전부 바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나의 ’온몸’을 다 드릴 수 없기 때문에, 예물을 드림으로써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봉헌에 동참한다. 자신을 바친다는 정성과 마음을 표시하는 것이다. 또한 마음을 모아 봉헌하기 위해 예물 준비 동안 ’봉헌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이렇게 마음을 모아 드리는 신자들의 (예물) 봉헌은,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① 빵과 포도주를 드림으로써 그리스도의 봉헌에 참여하고, 헌금을 함으로써 ② 가난한 이들을 돕고 ③ 성직자 생활 부양과 교회 운영을 위한 것이 된다.
여기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이다. 교회는 모이는 일, 모여서 주님을 찬미하고 감사하며 ’친교’를 나누지만, 이 나눔의 공동체는 결국 ’봉사’하는 교회임을 말해준다. 교회 운영이 우선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를 돕는 일’이 먼저 해야 할 일임을 말해주고 있다.
’가난’이란 표현은 물질에 관한 것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어떤 무엇을 필요로 하는 이들 모두’를 가리키기도 한다. 교회가 모여서 친교를 나누는 구심적인 움직임뿐 아니라, 이웃에 봉사하고 나누는 ’원심적인 노력’들이 필요하다.
예물을 준비하는 동안 봉헌 노래를 부르면서 ’봉사하는 교회’가 되기를 다짐해 보자. 이 시대가 이 점을 필요로 하는 때이다.
[경향잡지, 1998년 8월호, 나기정 다니엘 신부(대구 효성 가톨릭 대학교 교목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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